[헤럴드광장] 의료산업 AI, 풀어야 할 숙제 많다
의료분야는 인공지능(AI)이 가장 활발하게 도입 및 활용되고 있는 분야 가운데 하나다.
신약 개발을 위한 각종 후보물질의 탐색이나 임상데이터 분석을 위해 AI를 적극 도입함으로써 장기간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되는 신약 개발의 효율화를 도모하고 있다. 또한 질병 진단을 위한 의료 영상의 판독 및 분석에 AI 기반 소프트웨어들을 사용, 판독시간 및 탐지율을 높이고 있다. 수술용 로봇 등 다양한 형태와 기능의 의료기기에도 AI기술이 접목돼 그 성능 및 기능의 고도화에 일조하고 있다.
AI가 의료기술에 접목될 때 질병 치료와 수명 연장 등 생로병사 극복의 혁명적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의료AI는 앞으로 어느 분야보다 빠르게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막대한 자본이 바이오 및 의료기술의 혁신에 투입되고 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의료 스타트업과 제약, 의료기기 분야의 대기업이 혁신적인 기술과 서비스를 치열하게 연구·개발(R&D)하고 있다.
하지만 AI를 통한 의료 분야의 보다 지속적이고 의미 있는 혁신을 위해서는 극복하고 고민할 과제들도 적지 않다.
우선 데이터의 문제다. AI 서비스에서 데이터가 핵심이라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의료 분야에서 AI를 통한 혁신을 가장 기대하는 주된 요인 역시 데이터다. 의료 분야는 수많은 임상, 역학데이터의 분석과 검토를 통해 발전하므로 AI를 기반으로 이러한 데이터 분석 및 처리의 효율화를 달성할 수 있다면 더욱 고도화된 의료 분야 서비스가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다.
하지만 현실은 우리의 기대와 다소 차이가 있다. 여전히 진료기록 등 다량의 의료데이터가 의료법 등에 따른 엄격한 규제를 받고 있고, 의료기관 외부로 반출 및 공개되는 데에 많은 제약이 존재한다. 활용가치가 높은 다량의 공공 및 민간 의료데이터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공유되고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의료데이터는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른 환자의 개인정보, 특히 민감 정보에 해당할 수 있다(법 제23조). 개인정보보호법은 민감 정보를 처리하기 위해서 일반 개인정보와 별도로 동의를 받도록 하는 등 민감 정보를 엄격하게 보호하고 있다. 민감 정보 보호의 필요성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AI 기반 의료 서비스 개발 및 개선을 위한 의료데이터 처리에는 상당한 제한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의료 서비스의 책임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의료행위는 사람의 생명과 신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 점에서 잠재적 위험의 범위와 책임 문제는 무엇보다 우선해 고려돼야 하는 이슈다. 의료인에게 사람의 생명, 신체에 중대한 위해를 야기할 수 있는 의료행위에 대한 엄격한 설명 의무를 부과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AI기술 및 서비스의 복잡성, 불투명성, 불확실성 등의 본질적인 특성은 의료행위의 당사자인 의료인들이 의료행위 과정에서 AI 서비스의 도입을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AI기술이 근본적으로 내포하는 불확실성으로 인한 잠재적 책임이 그 기술을 활용한 의료행위 주체인 의료인에게 귀속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AI는 이미 다양한 적용 분야에서 놀라운 혁신을 만들어내고 있다. 단지 기존 기술의 개선 또는 발전의 수준이 아니라 기존의 방법론이나 패러다임 자체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현재 인류의 창작활동의 방법론을 새롭게 제시하고 있다고 평가되는 생성형 AI가 대표적이다. 의료 서비스 분야에서도 내원환자들에 대한 안내, 의무기록 정리 및 요약, 상담 내용을 기초로 의무기록 초안 생성 등 생성형 AI가 활용될 영역이 적지 않다.
의료 분야는 AI의 파괴적 혁신이 인류의 번영과 행복에 기여할 가능성이 가장 큰 분야다. 하지만 의료정보에 대한 접근 제한 및 폐쇄성 때문에 의료AI는 그 잠재력을 펼치기 위한 충분하고 가치 있는 원료에 대한 접근이 어려운 상태다. 의료 서비스나 의료기기 등과 관련된 의료인이나 의료기관의 책임 문제도 AI 서비스가 의료 분야의 혁신을 가져오기 위해 풀어야 할 숙제다. AI기술이 더욱 고도화되고 발전하더라도 이러한 요소들에 대한 의미 있는 변화 없이는 우리가 기대하는 의료AI의 혁신은 당분간 요원할지도 모른다. 좀 더 건설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노태영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jakme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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