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 갈림길, 골든타임] 뇌졸중과 싸우는 신경과 의사들 "언제까지 버틸지 의문"

권지현 울산의대 신경과 교수 2023. 7. 10. 10:0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⑤권지현 울산의대 신경과 교수

(지디넷코리아=권지현 울산의대 신경과 교수)지디넷코리아는 ‘생사 갈림길, 골든타임’ 연재를 시작합니다. 관련 국내 전문가들이 직접 필자로 참여해 우리나라 응급심뇌혈관 치료 시스템의 문제와 분석, 이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을 제시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Time is brain? Stroke doctor is brain!"

#이제 겨우 26살인 박씨는 식물인간 상태다. 꿈 많은 청년이었던 박씨의 일상생활을 앗아간 것은 6개월 전 갑자기 발생한 뇌경색 때문이다. 동료들과 저녁 회식 중 발생한 의식저하와 온 몸이 굳는 증상으로 1시간30분만에 인근 종합병원 응급실을 방문했지만 처음에는 경련·발작 의심으로 대학병원 응급실에 전원됐다.

하지만 박 씨의 실제 원인은 뇌간과 시상 등 의식을 관장하는 영역에 발생한 뇌경색 때문이었고, 안타깝게도 대학병원의 신경과 의사가 뇌경색으로 진단한 때는 정맥혈전용해술을 시행 받을 수 있는 4시간30분이 훨씬 지난 시간이었다. 박 씨의 어머니는 첫 병원 방문 당시 혈전용해술이라도 받을 수 있었다면 지금보다는 박 씨의 상태가 좋지 않았을까 하며 원망한다.

그래픽=이희정

박 씨의 사례는 첫 응급실에서 빠른 시간 내 신경과 의사에 의한 뇌졸중 감별이 이뤄져야 하는 이유를 보여준다.

인구 고령화로 인해 심뇌혈관 질환과 함께 뇌졸중 환자가 늘어나면서 사회적 부담 역시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고령화에도 불구하고 뇌졸중과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신경과 뇌졸중 전문가들이 숫자가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는 데 있다.

사람은 누구나 삶의 질과 정당한 대우가 보장되는 직업을 갖고 싶어 한다. 그러나 신경과 뇌졸중 의사의 현실은 후배 의사들에게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 지금 현재 선배 뇌졸중 전문가들의 삶은 젊은 의사들이 추구하는 삶의 방향과 궤를 달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뇌졸중이 발생하면 분 단위로 뇌신경세포 수백만 개가 소멸되면서 그로 인한 후유증도 증가해 예후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때문에 치료까지의 시간을 1분이라도 단축하기 위해 뇌졸중 관련 의료진들은 지금도 현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더욱이 분초를 다투는 뇌졸중 치료는 뇌졸중 확진 이전 이미 시작된다.

매일 수많은 환자들이 다양한 원인의 의식저하·발음 장애·편마비 등을 호소하며 종합병원 응급실을 방문한다. 대부분의 응급실에선 위 증상 중 뇌졸중과 유사한 뇌졸중 의증(Stroke Mimics)과 진짜 뇌졸중 환자를 감별하기 위해 바로 신경과 의사를 호출한다. 이 뇌졸중 의증 환자들도 분초를 다투며 정맥내 혈전용해술·동맥내 혈전제거술·코일색전술·혹은 개두술의 잠재적 대상 환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수술 등 치료 방향이 정해지기 전부터 뇌졸중 관련 인력들은 시간에 대한 심적 압박을 받으며 긴장하면서 24시간 7일 내내 365일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 의료수가체계에서는 이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하지 않고 있지 않다 보니 병원 경영진 입장에서 수익이 많지 않은 이 분야에 인력을 추가 배치하기가 쉽지 않다.

권지현 울산의대 신경과 교수

초응급 뇌졸중은 말 그대로 초응급으로 관련 의료진이 반응해야 한다. 의료진의 심적·체력적 부담으로 인해 타 직역 대비 피로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같이 일하는 동료 의사라도 많다면 짐을 나눌 수 있겠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대부분의 병원엔 50 넘어 환갑을 바라보는 지친 뇌졸중 전문가들만 남아있으며, 후배 의사들은 이미 워라벨이 보장되는 분야로 탈출하고 없다. 수도권도 위태위태하지만 지방은 둑이 무너진 지 오래다.  전공의 감원 정책으로 전공의 확보도 쉽지 않고, 원활하지 않은 전공의 수급은 전문의 이탈로 이어지고 남아있는 전문의가 독박을 쓰고 있는 악순환의 반복이다.

뇌졸중 의심 증상의 중증도 분류부터 응급실 내원까지, 그리고 응급실부터 뇌졸중 환자의 치료, 입원까지 이뤄지는 모든 행위에는 24시간 뇌졸중 전문가의 개입이 필수적이다. 뇌졸중 전문가가 될 후배들에게도 사명감과 열정을 갖고 일하면서 삶의 질 또한 보장될 수 있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뇌졸중처럼 중증환자를 보는 의사들에게 업무에 대한 정당한 대우가 보장돼야 필수 인력이 확보될 것이고, 그래야 제대로 된 뇌졸중 안전망을 구축할 수 있다. 의료진의 피로도와 환자 안전을 고려한 적정 인력이 보장되기 위해선 병원 경영진을 설득할 수 있는 입법·행정부의 지속적이고 시기적절한 정책 지원이 절실하다. 늦은 결정은 사후약방문 밖에 되지 못한다.

현재의 필자는 후배 의사들의 미래다. 뇌졸중을 치료하는 필자가 적정한 대우를 받으며 삶의 질을 유지해야 후배들도 이 길을 걸어올 것이다. 뇌졸중을 전공한 것을 후회하진 않지만, 지금과 같은 삶이 지속된다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권지현 울산의대 신경과 교수(ttae35@gmail.com)

Copyright © 지디넷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