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걸프법인 나와 스타트업 중동진출 돕는 남자
"중동은 기회…문화차이 이해해야"
"중동 랜드마크, 3D로 구현할 것"
한용경 '아들러' 중동·아프리카지역 총괄이사는 2015년부터 9년가량 코트라(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두바이 무역관, LG전자 중동지역본부, 삼성전자 걸프법인 등을 거쳐 스타트업에 합류한 이색 경력을 가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에서 'UAE IT 컨설턴트'로도 활동한다. 국내 기업이 현지에 진출할 때 컨설팅을 지원하면서, 영국 맨체스터대 MBA(경영대학원, 두바이센터)에도 진학하는 등 입력과 출력을 동시에 해내고 있다.
이런 배경으로 올해 초 윤석열 대통령이 UAE를 국빈방문할 때 열린 '한·UAE 비즈니스 포럼'에 '현지 진출 기업인'으로 초대를 받아 참석하기도 했다.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김종윤 야놀자 대표를 행사장에서 만나기도 했다.
한 이사는 지난달 말 은행권청년창업재단 디캠프가 개최한 세미나 '중동 비즈니스, 아는 것이 힘이다'의 연사로 참여하며 한국에도 방문했다. 최근 판교에서 그를 만나 중동시장과 아들러의 중동 진출 계획 등을 물어봤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정부 고위 관계자, 왕족이 잇따라 분당·판교를 방문해 네이버·카카오 등 국내 사업자와 협력 기회를 찾고 있는 상황에서 그는 어떤 얘기를 내놓을까.
'판교에 부는 모래바람'…"중동 진출 않을 이유 없다"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분당·판교에 중동의 모래바람이 거세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정부 고위 관계자, 왕족 등이 잇따라 네이버·카카오 등을 방문해 사업 기회를 찾고 있어서다. 가장 큰 주목을 받는 국내 기업은 네이버와 카카오 등 국내 대표적 플랫폼 기업들이다.
지난해 말 사우디 자치행정주택부 장관 일행이 분당에 있는 네이버 신사옥 '1784'에 방문했고, 이들은 올 3월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서 관련 업무협약까지 체결했다. 네이버 신사옥엔 지난달 12일 UAE 샤르자에미리트의 셰이크 사우드 술탄 빈 모하메드 알 카시미 왕자 등 UAE 샤르자 왕실 일행도 찾았다.
카카오 판교 오피스는 지난 5월 사우디 관광청 아시아태평양지역(APAC) 최고책임자, 최고기술책임자(CTO) 일행을 맞았다. 이들은 사우디 관광 활성화를 위한 모바일 인프라 구축 협력 논의를 진행했다. 판교에 본사가 있는 게임사 위메이드도 지난 4월 사우디 투자부와 MOU를 체결하고 게임·블록체인 분야에서 협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런 사례들은 청사진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 한용경 이사는 긍정적 측면을 먼저 제시했다. 중동지역이 한국 기업의 우수한 기술력을 경험해봤다는 점이다. 한 이사는 "중동 지역은 한국의 기술력, IT 성숙도 역시 높게 평가한다"며 "80년대 중동 붐에서도 검증된 역사도 한몫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우디 국부펀드(PIF)가 넥슨, 카카오 등에 투자한 이유는 IT와 관광분야에서 협업할 부분이 많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며 "이들은 '탈석유 정책'을 추진하면서 한국 기업에 투자를 하고, 또 기술을 전수받으려는 측면도 있다"고 했다.
PIF는 넥슨재팬, 엔씨소프트, 카카오엔터테인먼트에 잇따라 '조 단위' 규모로 투자해 업계 관심을 모은 바 있다. 넥슨 지분을 사는데만 2조5000억원 가까이 쓴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는 5000억달러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스마트시티 프로젝트 '네옴시티' 외에도 국가 차원에서 디지털 전환을 위해 거침없이 돈을 풀고 있다.
한 이사는 "사우디는 2017년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책봉되면서 개방하기 시작했고, 이후 네옴시티 시티 규모의 프로젝트가 사우디 지역마다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사우디뿐만 아니라 UAE는 미국이나 유럽 등 다른 국가 대비 성장률이 높은데다 돈이 몰리고 신사업 기회가 생기고 있는데, 진출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코트라에 따르면 UAE의 실질 GDP 성장률은 2021년 3.9%에서 지난해 7.4%에 달했다. 사우디도 2021년 3.2%, 2022년 7.6%였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 4월 '세계경제전망'에서 제시한 올해 성장률을 봐도 사우디는 상대적으로 양호한 전망을 얻고 있다. 세계 성장률은 2.8%, 선진국이 1.3%, 한국의 경우 1.5%로 전망됐는데 사우디는 3.1%로 관측됐다.
게다가 정부 차원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국내 기업이 현지에도 널리 알려졌다는 설명이다. 한 이사는 "UAE만 해도 정부 차원의 교류를 많이 하면서 윤 대통령의 경제 사절단에 포함된 많은 한국 기업이 알려졌고, 네이버의 경우 실제 협력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돈 많다고 함부로 투자하진 않아"
중동 지역 진출이 호락호락한 것은 아니다. 미개척 영역인 만큼 충분히 두드려 보고 가야 한다는 게 한 이사의 조언이다.
그는 "시장 조사·분석이 우선적으로 중요하다"며 "중동시장은 돈이 많다고 함부로 투자해주는 곳은 아니다"라고 잘라말했다. 그러면서 "중동 시장에 직접 가서 전시회, 컨퍼런스라도 참가해 시장 수요를 파악해야 한다"고 했다. 시장 특성은 온라인으로는 전혀 알 수 없는 영역이란 점을 한 이사는 거듭 강조했다.
그는 "한국문화와 중동 문화의 차이점도 잘 이해했으면 좋겠다"며 "중동은 한국만큼 속도가 빠르지 않으므로 인내심이 필요하고, 관계 위주의 시장인 까닭에 제품이 좋다는 판단이 이뤄지면 한방에 진행되기도, 한 번에 비즈니스가 끝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예를 들어 "현지인은 정말 느긋하게 '내일까지 해준다'면서 안 하는 경우가 있다"며 "우리는 정말 급한데, '인샬라' 그러니까 '신이 원하시면' 될 것이란 말을 반복하고, 라마단 기간은 업무 속도가 평소보다 느려진다"고 했다.
UAE의 경우 다양성이 공존하는 시장이란 점을 알아둬야 한다는 주문이다. 그는 "UAE는 인구가 1000만명에 가까운데 자국민이 10% 수준이고 외국인이 90% 달하는 나라"라며 "다양한 인종은 물론 종교와 정치 등 배경이 모두 다른 사람들과 일하려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걸프법인에서 일할 때는 20명 정도 되는 팀에 한국인이 2~3명이었고, 나머지는 인도·튀르키예·필리핀·레바논·요르단·남아공 등 전부 다른 국적이었다는 게 한 이사의 얘기다. 그는 "한국인의 스탠다드, 속도로 생각하면 안 되고, 그들의 관점에서 어떤 게 필요한지 계속 생각하고 고민해야 했다"고 떠올렸다.
스타트업 '아들러'의 중동 시장 개척…아프리카 진출도 계획
한 이사는 그동안 경험을 토대로 신생 스타트업 '아들러'에 합류해 이 회사의 중동 시장 개척을 주도하고 있다.
아들러는 '3차원(3D) SNS'를 제공하고 있다. 일종의 메타버스다. 2021년 8월 법인을 설립했는데, 국내보단 외국에서 유명한 편이다. 지난달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자체 엔진 기반의 실시간 3D 광고 컨셉트를 선보여 눈길을 끈 바 있다.
타임스퀘어를 오가는 사람들이 대형 광고판에 위치한 QR코드를 통해 아들러 플랫폼에 접속해 입력한 메시지 수만개가 실시간으로 대형 스크린에 전송되는 방식으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지난해는 프랑스 파리 '카루젤 뒤 루브르'에서 열린 아트페어 '포커스 파리 2022'뿐만 아니라 '포커스 뉴욕 2023'에도 2년 연속 기술 파트너로 참여해 글로벌 아티스트의 작품을 가상현실(VR) 공간에 구현하는 등 새로운 관람 경험을 제공하기도 했다.
한 이사는 "UAE와 사우디에 최근 스타트업 생태계가 조성되고 투자도 많이 이뤄지고 있다며 "아들러의 중동 지역 투자 유치뿐 아니라 중동 사업도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론 파리에서 기술을 선보인 것처럼 중동지역 랜드마크를 3D로 구현하는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일단은 아들러를 현지에 알리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현지 비즈니스 인맥을 동원해 UAE 지상파 방송에 아들러를 소개했고, 현지 사모펀드와 투자유치도 논의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까지 아들러는 27억 규모 투자를 한국투자파트너스, 디캠프 등으로부터 받았다.
아프리카 지역 진출도 꿈꾸고 있다. 그는 "3D 관련 서비스를 많이 해보지 못한 아프리카 지역에서도 우리의 솔루션에 누구든 접근할 수 있게 만들고 싶다"며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3D 공간을 아프리카 지역 사람들에게도 선보이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훈 (99re@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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