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하의 이게 뭐Z?] 친구 같던 웹툰 작가, 오류 많은 가상 인플루언서, 낭만 찾아 떠나는 날…
※검색창에 ‘요즘 유행’이라고 입력하면 연관 검색어로 ‘요즘 유행하는 패션’ ‘요즘 유행하는 머리’ ‘요즘 유행하는 말’이 주르륵 나온다. 과연 이 검색창에서 진짜 유행을 찾을 수 있을까. 범위는 넓고 단순히 공부한다고 정답을 알 수 있는 것도 아닌 Z세대의 ‘찐’ 트렌드를 1997년생이 알잘딱깔센(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하게 알려준다.
"MBTI가 뭐예요?"라는 질문은 이제 Z세대에게 일종의 인사말로 통한다. '과몰입'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소재이자 콘텐츠가 MBTI이기도 하다. 그런 MBTI를 시작으로 여러 콘텐츠에 과몰입하는 사람이 많아졌는데,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가 대표적 예다. 더 글로리에서 박연진 역을 연기한 배우 임지연의 인스타그램에는 아직도 드라마 속 명대사를 패러디한 댓글이 많다. 최근 임지연의 신작 드라마를 두고는 "연진이 출소 후" 같은 우스운 반응이 이어지기도 한다. '부캐' 역시 과몰입 콘텐츠 중 하나다. 사람들은 부캐 세계관이 절대 깨지지 않도록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본캐 존재를 전혀 모른다는 듯 행동하고 즐긴다. 이처럼 최근 Z세대가 과몰입하는 콘텐츠를 알아보자.
# 친한 친구로부터 청첩장을 받지 못했다
2010년대 대학생이라면 웹툰 '대학일기'를 대부분 챙겨봤을 것이다. 연재가 끝나며 관심에서 점점 멀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대학일기를 추억하는 독자가 많다. 그런데 최근 대학일기 작가 '자까'가 결혼식을 올렸고 '신혼일기' 연재를 시작한다는 소식이 SNS를 통해 전해져 팬들의 배신감을 자아냈다. 자까 팬들은 대학일기는 물론 수능일기, 독립일기, 휴재일기 등 작품을 통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있다. 또한 그의 작품에 자신의 일상을 대입하며 과몰입해왔다. 그런 자까가 갑자기 결혼 소식을 알리고 신혼일기를 연재한다고 하니 내 베프(베스트 프렌드)가 나에게는 청첩장도 주지 않고 몰래 결혼한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신혼일기 1화 댓글에는 "뒤통수 맞은 기분이다" "갑자기 청첩장 받은 기분이다" 같은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 자까의 결혼이 이렇게까지 뜨거운 반응을 얻은 이유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고3, 재수생, 대학생 시절부터 독립 후까지 그의 모든 일상을 팬들이 봐왔고 공감했기 때문이다. 과몰입을 안 하려야 안 할 수 없는 진짜 친구 같은 콘텐츠였던 것이다.
최근에는 대학일기 외에도 과몰입을 유발하는 웹툰 콘텐츠가 늘고 있는데, 죽은 주인공이 다시 살아 돌아오는 회귀물이 그 예다. 이런 웹툰은 처음부터 독자들이 주인공에 이입할 수 있도록 홍보 단계에서부터 1인칭 시점으로 스토리를 풀어나간다. '나' '내' 같은 단어를 홍보 문구 등에 많이 사용하는 식이다. 이렇게 콘텐츠에 과몰입을 유도하는 것은 Z세대의 관심을 끄는 가장 적합한 홍보법이자 제작법이라고 할 수 있다.
# 오류 때문에 인간미 느껴지는 플레이브
버추얼(가상) 인플루언서에 대한 인식은 아직까지 호불호가 갈린다고 할 수 있다. 가상의 인물인 만큼 논란, 구설 등 리스크가 없다고 반기는 쪽도 있지만, 결국 사람이 아니라 캐릭터일 뿐이라며 부정적으로 보는 쪽도 있다. 얼마 전 버추얼 인플루언서 중 하나로 '플레이브'라는 아이돌 그룹이 등장해 화제가 됐다. 과거 버추얼 인플루언서는 최대한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등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를 지우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버추얼 인플루언서라는 사실이 티 나지 않도록 해 사람들로 하여금 몰입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런데 플레이브는 오히려 오류를 드러내 Z세대가 즐기고 찾는 요소가 됐다. 유튜브 검색창에 '플레이브'만 입력해도 연관 검색어로 바로 '오류'가 뜰 정도로 웃긴 오류가 많은데, 사람들이 이를 보고 입덕하고 있다.
예를 들어 호신술을 보여주겠다며 발차기를 하는 순간 신발에 오류가 나 신발 위로 맨발이 튀어나오는 식이다. 땀이 난다며 얼굴을 닦는데 손이 무서울 정도로 꼬이는 오류가 발생하기도 한다.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방송에서 이런 오류를 보고 있자면 너무 웃긴 킬링 포인트가 많다. 사람들이 SNS에 '내가 플레이브를 보는 이유'라며 올리는 게시물을 살펴보면 거의 다 오류 영상 모음집인 걸 확인할 수 있다. 버추얼 인플루언서가 가진 부자연스러움이라는 한계를 오히려 전면에 내세워 웃음을 자아내고 과몰입을 유발한 사례인 것이다. 되레 인간미가 느껴진다는 반응까지 나온다. 얼마 전에는 플레이브 팬카페가 새롭게 생길 정도로 인기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 굳이? 굳이! 낭만 찾아 떠나는 굳이데이
Z세대와 SNS는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인식이 있지만, 반대로 SNS를 일부러 지우려는 이도 늘고 있다. SNS라는 가상공간이 아닌 실생활에서 본인에게 좀 더 집중하고 좋아하는 것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가수 조승연(WOODZ)의 '굳이데이'가 있다. 굳이데이는 "굳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무언가를 하는 날로, 이를테면 조개구이를 먹으려고 굳이 인천에 가는 식이다. 조승연이 자신의 유튜브에서 "낭만을 찾으려면 귀찮음을 감수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 말이 Z세대 사이에서 퍼지면서 굳이데이를 실천하는 사람이 하나 둘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조승연은 트위터에 "나보다 굳이데이가 더 유명해졌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이처럼 사람들이 굳이데이에 과몰입하는 건 Z세대가 SNS를 좋아하고 그것을 통해 행복을 과시하는 듯 보이지만, 실은 이들이야말로 낭만과 자기 자신을 가장 중시하는 세대이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