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경제 動力 이건희·이재용 사람들 大해부 [+영상]

이현준 기자 2023. 7. 10.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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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 이건희 新경영 30년 시점에서 대한민국 ‘미래 30년’ 보다] “대한민국 재계 혈관 ‘푸른 피’ 흐른다”

● “나는 사람 공부를 가장 많이 한다”
● ‘준천재 3人’ 이윤우·진대제·황창규
● 최장기 CEO 권오현·고졸신화 양향자
● 代 이어 전해진 三顧草廬 정신
● JY 腹心 손영권·영입인재 승현준·최초女사장 이영희
● 재계 전반 쟁쟁한 CEO 즐비… “반도체보다 인재로 더 기여”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 회장(왼쪽)의 인재 경영은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대에도 실천되고 있다. [삼성전자]
[+영상] 반도체 전쟁 중인 지금은 '이건희' 다시 읽을 때

"한 명의 천재가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

2003년 6월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 회장이 언론과 인터뷰하면서 한 말이다. 이 회장은 인재를 중시했다. 이른바 '인재 경영'이다. 부친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내건 사훈 '인재 제일'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 회장 스스로가 사람에 대한 관심이 컸다. 이 회장이 아직 성년이 되기 전부터 이병철 회장도 그의 사람 보는 안목은 인정했다. 이 회장의 고등학교 동창 고 홍사덕 전 의원은 2001년 6월 '신동아'와 인터뷰하면서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건희는 고교 시절 학과 공부에는 별 뜻이 없었다. '무슨 궁리를 하느냐'고 물어보면 '나는 사람 공부를 제일 많이 한다'는 황당한 답을 했다. 허언이 아님을 알게 된 건 얼마 후 일이다. 그 무렵 한 삼성 임원이 이병철 회장의 눈 밖에 나서 쫓겨난 일이 있는데, 건희가 이 회장을 찾아가 설득하자 이 회장이 두말 않고 그 임원을 다시 불러들였다."

이 회장의 인재 경영 원칙하에 모인 '이건희의 사람들'은 1993년 6월 7일 신경영 선언 이후 삼성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는 밑거름이 됐고, 재계 곳곳에 퍼져 한국 경제를 움직이는 엔진으로 자리매김했다. 한 손해보험사 임원은 "임원급 사이에선 삼성 출신을 제일 인정해 준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삼성 출신 인재는 능력·비전·태도 등 여러 방면에서 뛰어나다. '삼성 출신이라면 믿고 쓴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재계 전반 중추적 위치에 삼성 출신이 없는 경우가 드물다. 재계를 사람 몸이라 한다면 혈관 곳곳에 '푸른 피'가 돈다는 비유가 적절하다."

2020년 10월 이 회장이 별세하며 신경영은 막을 내렸지만 인재 경영은 여전히 아들 이재용 회장 체제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0월 25일 사내게시판에 이재용 회장은 "선대의 업적과 유산을 계승·발전시켜야 하는 게 내 소명"이라며 "창업 이래 가장 중시한 가치가 인재와 기술이다. 성별·국적 불문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인재를 모셔 오고 양성해야 한다"고 쓴 바 있다. 이러한 일성(一聲) 아래 이건희의 사람들을 잇는 '이재용의 사람들'도 속속 눈에 띄고 있다.

이건희·이재용의 사람들은 현재·미래 재계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립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건희·이재용 회장이 아무리 뛰어나도 혼자서 모든 걸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결국 지금의 삼성은 그들과 함께한 인재들이 만든 결과물이고, 이들이 재계 전반을 움직인다"며 "이건희·이재용 회장의 사람들을 보면 한국 경제가 어찌 돌아가고 있는지, 또 어떻게 흘러갈지 살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에 천재는 없지만 준천재는 3명 있다"

이른바 '준천재 3인'은 이건희 회장의 사람들 가운데 가장 먼저 거론되는 인물들이다. 이 회장은 살아생전 "삼성에 아쉽게도 천재는 없지만 준천재는 3명 있다. 이윤우·진대제·황창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왼쪽부터 순서대로) 이윤우 삼성전자 상임고문, 진대제 전 삼성전자 사장,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은 이건희 회장의 ‘준천재 3인’으로 불린다. [동아DB]
이윤우(77) 삼성전자 상임고문은 경북고·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1966년 삼성전관(현 삼성SDI)에 입사해 1977년에 삼성전자로 이직했다. 30대에 상무·전무에 오르며 초고속 승진했다. 삼성 반도체 초기 시절 기흥공장장(1987)과 기흥반도체 연구소장(1989)을 지내며 생산·연구를 모두 경험한 인물이다. 오늘날 '기흥 밸리'를 만든 주역이다. 2011년 삼성전자 부회장을 끝으로 일선에서 물러나며 상임고문에 위촉됐다. 이병철·이건희·이재용 회장 3대를 거치며 삼성이 현재 반도체 1등 기업이 되는 데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다. 나서길 좋아하지 않아 언론에 잘 노출되지 않았다. 묵묵히 일하길 즐긴 '일꾼' 스타일이다. 임형규 전 삼성전자 사장은 허문명 동아일보 기자의 저서 '이건희 반도체 전쟁'에서 이 상임고문을 "삼성 반도체 초기 기술 총사령관"이라고 평가했다.

진대제(71) 전 삼성전자 사장은 경기고·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스탠퍼드대 대학원에서 전자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IBM 연구원으로 일하다 1985년 삼성반도체연구소로 이직했다. 64M·128M·1G 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삼성 D램 신화 주역이다.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600만 불짜리 사나이"라는 말을 들었다. 기민하고 추진력 있는 경영인으로 평가된다. 2003년 2월 노무현 정부 정보통신부 장관에 오르며 행정가로 변모한다. 당시 이건희 회장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추천한 것으로 전해진다. 2006년까지 장관직을 지내다 같은 해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 경기지사 후보로 나섰으나 낙선했다. 정계 은퇴 후엔 재계로 돌아와 현재 솔루스첨단소재 대표를 맡고 있다.

황창규(70) 전 삼성전자 사장은 부산고·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매사추세츠대 대학원에서 전기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스탠퍼드대 책임연구원, 인텔 자문을 지내다 1989년 삼성전자로 왔다. 이건희 회장이 삼고초려로 영입한 인재로 알려졌다. 1994년 세계 최초로 256메가 D램 개발을 주도했다. 2001년 삼성이 도시바의 플래시 메모리 합작 제안을 거절하고 단독 개발을 하도록 한 주역이기도 하다. 이 결단으로 인해 삼성은 낸드플래시 1위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2002년 국제반도체회로학술회의에서 반도체 메모리 용량이 해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이른바 '황의 법칙'을 설파해 유명세를 얻었다. 글로벌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삼성의 기술 개발에 한 단계 더 도약을 가져온 인물로 평가받는다. 이명박 정부 시절 지식경제부 지식경제R&D 전략기획단장,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2014년부터 6년간 KT 회장을 지냈다.

실사구시 경영인 & 최초 상고 출신 女 임원

권오현 삼성전자 상임고문은 삼성 최장수·최고령 CEO 기록을 남겼다. [동아DB]
권오현(71) 삼성전자 상임고문은 삼성 내 최장수(14년)·최고령(65세) 최고경영자(CEO) 기록 보유자다. 이건희 회장의 대표적 조력자로 여겨진다. 대광고와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스탠퍼드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진대제 전 사장의 권유로 1985년부터 삼성에서 일했다. 세계 최초 64M D램 개발에 성공해 마이크론·도시바 등 세계적 기업을 제치고 기술 초격차를 확보했다. 완벽주의적 성향으로 실험·연구에 매진한 '실사구시' 경영인으로 여겨진다. 2008년 당시 생소하게 여겨지던 'Work Smart(똑똑하게 일하기)' 문화를 확산해 조직문화를 크게 개선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사내 평가가 좋다. 삼성전자 관계자에 따르면 그가 2017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날 때 대부분 직원이 안타까워했고 지금도 그를 그리워한다.

이건희 회장은 늘 여성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1997년 저서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 "다른 나라는 남자와 여자가 합쳐 뛰는데, 우리는 남자 홀로 분투하고 있다. 마치 바퀴 하나가 바람이 빠진 채로 자전거 경주를 하는 셈"이라며 "이는 실로 인적 자원의 국가적 낭비"라고 썼다. "기업도 여성에게 취업 문호를 활짝 열고 취업 활동을 지원하는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며 "여자라는 이유로 채용이나 승진에서 불이익을 준다면 이에 따라 당사자가 겪게 될 좌절감은 차치하더라도 기업의 기회 손실은 무엇으로 보상할 것인가"라고도 했다.

양향자 무소속 의원은 이건희 회장의 여성 인재 중용 원칙으로 기용된 대표적 인물이다. [동아DB]
이러한 기조로 중용된 대표적 여성 인재가 '고졸 신화'로 일컬어지는 양향자(56) 무소속 의원이다. 지난해 10월 26일 양 의원은 이건희 회장의 빈소를 찾아 "늘 보잘것없는 내게, 배움이 짧은 내게 '거지 근성으로 살지 말고 주인으로 살아라'고 해주신 말씀이 생각난다"며 고인에 대한 애틋함을 보이기도 했다. 양 의원은 광주여상을 졸업하고 1985년 삼성전자 반도체 메모리설계실 연구보조원으로 입사했다. 입사 초기엔 도면을 만드는 단순 작업을 수행했지만 능력을 인정받아 메모리사업부 SRAM 설계팀 책임연구원이 됐다. 이후 사내대학 삼성전자기술대에서 반도체공학 학사학위를 얻고 2008년 성균관대에서 전기전자컴퓨터 공학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2014년 삼성전자 최초 상고 출신 여성 임원(상무)에 올랐다. 2016년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영입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21대 총선 때 광주 서구을에서 당선해 국회에 입성했다. 이후 탈당해 지난해엔 국민의힘 반도체산업 경쟁력강화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이때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 세제 혜택을 주는 이른바 'K-칩스법(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해 본회의 통과까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닻 오른 이재용式 인재 경영

2020년 10월 25일 이건희 회장이 별세하며 신경영의 막이 내리고, 지난해 10월 27일 이재용 회장 취임으로 '뉴삼성'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부친 이병철 회장이 그랬듯 이건희 회장도 이재용 회장에게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000년대 초반 이건희 회장이 당시 후계자 수업을 받고 있던 이재용 회장에게 삼국지의 유비가 제갈량을 찾아가 '삼고초려(三顧草廬)'하는 모습을 담은 그림을 건넨 일화는 유명하다. 2003년 이건희 회장은 동아일보와 인터뷰하면서 그 의미에 대해 "필요한 인재라면 삼고초려, 아니 그 이상을 해서라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용 회장의 리더십은 이건희 회장의 그것과 상이하다는 게 중론이지만 성과주의, 성별·출신 불문 인재 경영은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왼쪽부터 순서대로) 손영권 삼성전자 고문은 ‘이재용의 복심’ ‘이재용의 참모’로 불렸다. 승현준 삼성전자 DX 부문 삼성리서치 글로벌R&D협력담당 사장은 세계적 뇌 신경공학 기반 AI 분야 석학이다. 이재용 회장이 직접 영입한 인재로 전해진다. 이영희 삼성전자 DX부문 글로벌마케팅실장(사장)은 삼성그룹 역사상 비오너 일가 첫 여성 사장이다. [삼성전자, 동아DB, 동아DB]
이재용의 사람들로 꼽히는 대표적 인물은 손영권(67) 삼성전자 고문이다. '이재용의 참모' '이재용의 복심'으로 일컬어졌다. 인텔코리아 초대 사장, 하이닉스반도체 사외이사 등을 지내다 2012년 삼성전자 전략혁신센터 사장으로 합류했다. 이 회장이 옥중경영을 하던 당시 여러 중책을 맡아 그를 갈음했다. 이재용 회장이 가장 믿는 사람으로 꼽혔다. '미국통'으로 이 회장은 미국 실리콘밸리를 갈 때마다 손 고문에게 자문을 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2017년 미국 전장 기업 하만 인수를 진두지휘했다. 2020년 삼성에서 나와 고문에 위촉됐고, 현재 하만 이사회 의장으로 있다.

승현준(57) 삼성전자 DX 부문 삼성리서치 글로벌R&D협력담당(사장)은 이재용 회장이 직접 영입한 인재로 알려졌다. 세계적 뇌 신경공학 기반 AI 분야 석학이다. 미국 하버드대 이론물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벨연구소 연구원과 매사추세츠공과대(MIT) 물리학과 교수, 프린스턴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를 지냈다. 삼성전자 AI 전략 수립·연구 자문을 맡아 글로벌 AI센터 설립과 AI 우수인력 영입에 기여해 왔다. 스마트폰·카메라 등 삼성 제품에 AI 기술을 탑재해 품질 도약을 이뤄냈다고 평가받는다.

이영희(59) 삼성전자 DX부문 글로벌마케팅실장(사장)은 지난해 12월 사장으로 승진하며 삼성그룹 비(非)오너 일가 첫 여성 사장이 됐다. 이전 여성 사장으론 이재용 회장의 동생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유일했다. 여성 인재 중용 원칙이 계승됐음을 방증하는 인물이다. 2011년 8월 23일 여성 임원 오찬에서 이건희 회장은 "여성 임원은 사장까지 돼야 한다"며 "임원 때는 본인의 역량을 모두 펼칠 수 없을 수도 있지만 사장이 되면 본인의 뜻과 역량을 다 펼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아버지의 지론을 아들이 이룬 셈이다. 이 사장은 연세대 영어영문학과를 나와 미국 노스웨스턴대 대학원에서 광고마케팅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유니레버코리아·SC존슨코리아·로레알코리아 등 외국계 기업에서 마케팅 전문가로 일하다 2007년 삼성전자에 상무로 입사해 2012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스마트폰 브랜드 갤럭시를 세계적 브랜드 반열에 올린 1등 공신으로 평가된다.

"가히 삼성 사관학교"

이재용의 사람들이 더 많이 드러날 필요가 있다는 시선도 있다.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의 말이다.

"삼성의 도약은 이건희 회장의 '천재 경영'이라는 명확한 인재 철학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이를 통해 임직원에게 인간 자체에 대한 변화를 요구했고, 임직원들은 변화한 인간이 기업 혁신을 이끌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됐다. 그로 인해 수많은 스타 CEO가 탄생해 글로벌 1위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삼성의 발전을 위해선 이재용 회장의 인재 철학이 더 명확해질 필요가 있다. 더 많은 인재가 드러나야 한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아직 이재용 회장 취임이 채 1년이 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며 이 회장의 인재 철학이 차차 선명해지리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재용의 사람들이 누구든, 누가 되든 이들이 재계 요인(要人)이 되리라는 데엔 이견이 없다. 이건희의 사람들이 전례다. 임형규 전 삼성전자 부사장은 삼성을 나온 후 SK텔레콤 부회장을 지냈다. 삼성 시절 '재무통'으로 꼽힌 황영기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회장은 삼성증권 사장을 거친 후 우리금융지주·KB금융지주 회장을 역임했다. 이외에도 동현수 두산 부회장, 박근희 CJ대한통운 부회장, 최희문 메리츠증권 부회장, 김용범 메리츠금융지주 부회장 등 재계에 쟁쟁한 CEO가 즐비하다. 윤은기 한국협업진흥협회 회장(경영학 박사)은 다음과 같이 전망했다.

"삼성의 인재 중심 원칙 아래 길러진 인력들이 사회에 나와 재계의 동량이 됐다. 가히 '삼성 사관학교'라 할 만하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결국 승패는 인재에서 갈린다. 첨단 기술도 인재를 만나야 초격차가 될 수 있다. 삼성은 이를 잘 알고 있고, 그렇게 키워낸 인재를 재계에 퍼뜨려 왔다. 대개 반도체를 떠올리지만 진정 삼성이 한국 경제에 기여하는 지점은 이것이라 생각한다. 향후에도 삼성의 인재들이 한국 경제의 동력이 되리라고 본다."

이현준 기자 mrfair3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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