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연 굴레 속 신혜선-안보현의 당부 “이번 생도 잘 부탁해!”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김재동 객원기자] “평범하게 사랑하다가 더 이상 윤회하지 않고 우리의 영혼이 하나가 되어 평안에 이르게 되는 거예요.”
9일 밤 방송된 tvN 토일드라마 ‘이번 생도 잘 부탁해’에서 반지음(신혜선 분)이 문서하(안보현 분)에게 전화로 한 말이다. 윤회를 멈춘다는 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의 경지다. 갠지스강의 모래알 같이 무수한 생을 거쳐 모든 업연을 풀어낸 영혼이, 촛불 꺼지듯 꺼져 다시는 피어오르지 않는 안식. 결국 손짓 한번, 발짓 한번, 말 한마디로도 업을 쌓는 육신을 지니고는 맞기 불가능한 순간이다.
같은 통화에서 문서하는 “이번 생에 다신 만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반지음의 말에 “이유 같은 건 없는 게 좋을 거 같아요!”라 단언한다. 이유를 묻는 질문엔 “싫습니다. 그냥!”이라고 단호하게 말해 “그럼 아무 이유없이 그냥 사랑하게 된 운명인 걸로 해요.”란 반응을 이끌어 낸다.
19회 차를 사는 반지음도, ‘이유’가 필요없다는 문서하도 충분히 인연에 넌더리가 난 느낌이다.
그도 그럴만 하다. 이 통화 이전 반지음은 자신의 전생 윤주원(김시하 분)을 죽인 원수가 현생의 아버지 반학수(백승철 분)임을 알게 됐다. 문서하 역시 자신을 고통에 빠트린 장본인이 이제 막 사랑하기 시작한 반지음의 아버지임을 알게 됐다. 두 사람에게 인연의 잔인함이 얼마나 끔찍할까.
문서하의 고통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반학수를 사주한 장본인마저 그렇게 믿고 따르던 외삼촌 이상혁(이해영 분)임을 알게 되고 말았다.
즉 이상혁이 사주하고 반학수가 실행한 1998년 4월 24일의 덤프트럭 사고는 윤주원과 하도윤(안동구 분)의 아버지를 죽이고 문서하의 청력을 앗아간 것이다.
반지음이 입막음을 조건으로 돈봉투를 건네는 문정훈(최진호 분)에게 “누구보다 아버지가 나서서 범인을 잡아야 하지 않나?”고 물었을 때 문정훈은 “난 아비로서 아들을 지키는 것”이라고 답했다.
대화로 미루어 문정훈은 범인을 알고 있었다. 아마 사고 직후 안기부 출신 24캡스 대표(정선철 분)를 통해 사고를 조사했겠고 원조캐피탈 방사장을 추궁해 범인이 이상혁임도 알았으리라.
하지만 엄마 이상아(이보영 분) 사후 아들 서하가 유일하게 믿고 마음을 주는 이상혁이다. 서하가 그런 외삼촌이 범인인 것을 알게 되면 정서적으로 붕괴되지 않을까? 문정훈은 살가울 수 없는 자신을 대신해, 속내야 어떻든 서하를 보듬어줄 필요로 이상혁을 봐주기로 한 모양이다.
‘적은 더 가까이’란 격언처럼 MI그룹 이사 자리를 내주고 수시로 조찬을 함께 하며 감시하면서. 아울러 이상혁과 한 통속인 장연옥(배해선 분)도 같은 맥락으로 지켜보는 중인 듯 싶다.
원조 캐피탈 방사장 역시 이상혁이 처리한 것으로 보인다. 이상혁은 장연옥을 통해 24캡스 대표가 문정훈을 찾았음을 듣고 불길한 표정을 지었다. 문정훈의 지시를 받은 24캡스 대표는 방사장에게 외국으로 뜰 것을 종용했다. 그 말을 듣지 않아 24캡스 대표가 처리했을 수도 있지만, 불길함을 느낀 이상혁이 방사장을 감시하다 문서하와의 접촉을 알고 해치웠을 공산도 크다. 냉혹한 겉모습과 달리 문정훈은 사람을 죽여가면서까지 일을 처리하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다.
그럼 왜 이상혁은 조카 서하를 죽이려 들었을까? MI호텔은 이상아의 지참금였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즉 문씨 집안 재산이 아닌 이씨 집안이 상아에게 남긴 유산였을 수 있다. 그래서 상아는 호텔에 대한 애정이 더 깊었던 것 같다. 상아가 죽은 후 유일한 상속인 서하마저 죽는다면 상혁은 정훈으로부터 호텔을 넘겨받을 수 있겠다 싶었을 수 있다.
내막을 다 아는 문정훈으로선 호텔이 애물단지였겠다. 아내가 생전 애정했던 호텔이니 처분할 수도 없고 아들의 생명을 위협한 빌미였기도 하니 정도 안가고. 능력없는 장연옥에게 내맡긴 채 방치해 스러져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복수가 될 성 싶다.
MI호텔 대표인 장연옥은 아직 애매하다. 시놉상 고등학생 상아의 가정교사로 연을 맺었다. 이후 언니-동생 사이로 절친했던 모양인데 문정훈을 대하는 태도나 “나 아직 문회장에게 받을 게 많아.”란 발언도 그렇고, 친구처럼 지내는 이상혁이 “내가 유일하게 져주는 사람, 장대표 너 하난 줄 만 알아.”라고 말하는 것도 그렇고 생각보단 깊숙한 내막이 있어 보인다.
어쨌거나 인연에 상처 받은 서하는 “그때 내가 죽었어야 되는데, 나 때문에 사랑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대신 죽었어요. 그러니까 난 절대로 행복해져선 안되는 거였어. 사고로 다쳤던 마음들이 감당이 안돼요.”라며 자책의 굴을 파고든다.
그 굴로부터 서하를 건져내기 위해 반지음은 피아노를 연주한다. 일제강점기 자신이 만들어 18회차 윤주원일 때 서하에게만 들려준 곡을. 그리고 놀라 “그 곡을 어떻게 알아요?”물어오는 서하에게 “그 곡을 만든 사람이 나니까. 누군가를 그리워할 때 쳐 봐, 기분이 한결 나아질 테니까. 라고 윤주원이 말했죠?” 라며 자신이 전생의 윤주원이었음을 고백한다.
이유 같은 건 없는 게 좋을 거 같아서,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사랑하게 된 운명인 걸로 하기로 했지만, 이미 두 사람에겐 사랑할 수밖에 없는 치명적인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조차 아직 드러나지 않은 천 년 전 반지음 1회차 인생에 연원을 두고 있을 테니, 더 이상 윤회하지 않고 두 사람의 영혼이 하나 되는 순간은 마냥 아득해 보인다. 그러니 별 수 있나. “이번 생도 잘 부탁해!” 바람만 전해 볼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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