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인명대사전]

하경헌 기자 2023. 7. 10.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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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풍자. 사진 스포츠경향DB



함민복 시인의 작품 ‘꽃’의 첫 구절은 이렇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시인은 이 구절에 모든 경계가 무너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경계는 항상 첨예한 대립의 공간이지만 예술적으로는, 이를 절묘하게 오가고 과감하게 넘어갈 때 더 큰 카타르시스를 준다.

지금 대중이 방송인 풍자를 보는 시선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그는 대중의 시선으로 볼 때 여러모로 경계인이다. 아직 한국 사회에서 그 정체성을 드러내기 쉽지 않은 트랜스젠더 방송인이고, 때문에 유튜브나 뉴미디어를 통해 알려졌다. 하지만 3~4년의 시간, 빠른 성장세로 TV를 둘러싸고 있는 담장을 넘어 빠르게 대중 속으로 다가왔다.

채널S-KBS Joy 공동제작 예능 ‘위장취업’에 출연한 풍자. 사진 채널S-KBS Joy



그가 활약하는 프로그램만 봐도 그의 주가를 파악할 수 있다. 풍자는 올해만 해도 1월 tvN ‘놀라운 토요일-도레미 마켓’, MBC ‘복면가왕’, 3월에 SBS ‘미운 우리 새끼’, MBC ‘혓바닥 종합격투기 세치혀’에 등장했다.

6월부터는 본격적으로 고정 방송이 늘기 시작해 채널S· KBS Joy 공동제작 예능 ‘위장취업’에 김민경, 신기루, 홍윤화와 함께 출연 중이고, LG유플러스 모바일TV의 고민상담 프로그램 ‘내편하자’에 출연한다. 또 엠넷에서 이달 시작되는 리메이크 프로젝트 ‘엠넷 리부트’의 ‘풍자의 순결한 19’에 출연할 예정이다.

그 외 자신이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풍자 테레비’와 ‘좋댓구요 스튜디오’ 채널의 코너 ‘풍자愛술’도 진행 중이다. 이외에도 게스트로 출연하는 각종 뉴미디어 채널의 방송을 합하면 그의 하루는 몸이 여러 개여도 모자랄 지경이다.

지난달 27일 열린 LG유플러스 모바일TV 예능 ‘내편하자’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풍자. 사진 LG유플러스



풍자가 가진 방송인으로서의 매력을 탐구하기 위해서는 그가 걸어온 길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 풍자는 2019년 개인방송 플랫폼 ‘아프리카’의 BJ로 등장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풍자’라는 활동명도 이 플랫폼 운영 당시 시청자들의 후원을 뜻하는 ‘별풍선’에 빗대 ‘별(풍)선을 많이 뽑(자)’라는 뜻으로 골랐다.

조금 유명세를 얻고 난 이후 지난해 7월 출연한 채널A ‘오은영의 금쪽상담소’에서의 이야기처럼 그가 남성에서 여성으로 스스로 성(性)을 다시 선택한 과정에서는 누구도 쉽게 들을 수 없는 고통이 따랐다. 그는 어린시절 스스로 목숨을 끊은 어머니의 사연과 아버지의 부재, 그로 인해 홀로 어린동생들을 돌봐야 했던 처참한 가정사를 고백했다.

물론 개인방송 채널에서는 언뜻언뜻 들렸던 고백이지만 이러한 솔직한 고백과 눈물 이후 풍자를 보는 색안경을 낀 시선은 많이 걷혀나갔다. 그는 조금 더 홀가분한 마음으로 주류 방송에 임할 수 있었으며, ‘세치혀’를 통해 좌중을 휘어잡는 토크 능력을 통해 그가 전업 방송인으로 충분히 가능성 있음을 증명했다.

SBS 예능 ‘검은 양 게임’에 출연한 풍자. 사진 SBS 방송화면 캡쳐



풍자는 개인방송 시절부터 여러가지 날 것의 추임새나 파격적인 소재를 다뤘지만, 결코 시청자의 심기를 넘는 무례는 범하지 않았다. 이런 모습은 그가 주류방송에 편입된 이후에도 잘 볼 수 있는데, 솔직함이 무기인 뉴미디어 채널에서는 거침없는 모습을 보이지만 또 방송 콘셉트에 따라 절제를 해야 하는 프로그램에서는 절묘하게 자신의 선을 지킨다.

이런 그의 운용능력은 ‘세치혀’를 통해 토크 능력, ‘위장취업’을 통해 야외 버라이어티 적응력 그리고 ‘내편하자’를 통해 적절한 상황극 능력과 합쳐지면서 자신의 가치를 더욱 밀어 올렸다. 풍자는 솔직하면서도 가감 없고 그렇다고 기분이 나빠지지 않는 토크를 하는, 지금 시대 많은 시청자들이 원하는 대표적인 ‘신진 방송인’이 됐다.

지난달 27일 열린 LG유플러스 모바일TV 예능 ‘내편하자’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풍자. 사진 LG유플러스



풍자는 최근 열린 ‘내편하자’ 제작발표회에서 프로그램 콘셉트에 따른 방송발언의 수위에 대해 “막할 수는 없겠지만 편하게 이야기하는 데 집중한다. 수위는 연출진분들이 정리를 잘해주시기 때문에 좀 더 많은 분들과 공감하고, 참신한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대중이 자신에게 어떤 것을 바라고 있는지도 잘 알아채는 영민한 방송인이다.

풍자는 지금도 경계 위에 서 있다. 적어도 대한민국 많은 대중의 시선에서는 그렇다. 성별의 경계, 주류와 주류 밖 방송가의 경계 그리고 많은 예능 장르의 경계 위에서도 그렇다. 그의 고통스러운 삶이 결국 그의 입담을 통해 대중적인 인기라는 하나의 꽃으로 피어났듯, 그 역시도 경계 위 하나의 꽃이 되어가려 하고 있다. 풍자는 경계 위에 있고, 그 경계 위에도 꽃이 피어나고 있다.

하경헌 기자 azima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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