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 더 다양한 목소리가 필요하다”, 김예지 의원의 3년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은 초선 비례대표 의원이다.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출신으로 지난 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의 비례위성정당이던 미래한국당 11번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3년간 법안 151건과 결의안 1건을 발의했지만 대부분 초선 비례대표 의원이 그렇듯 화제가 된 적은 없다.
김예지 의원에게 언론의 관심이 집중된 건 소속 정당인 국민의힘과 다른 목소리를 냈을 때다. 지난해 3월28일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대표의 입장과 달리 장애인의 지하철 이동권 시위 현장을 찾았을 때 그랬다. 4월27일 간호법 반대 당론에 찬성표를 던졌을 때도 마찬가지다. 정작 그로서는 달갑지 않은 관심이었다. 초점은 김 의원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가 아니라 ‘당내 갈등’에 있었다. “당에 맞서고 대적하는 김예지만 남았다. 해결책을 함께 모색하기 바랐는데 잘 안 됐다.”
그래서 6월14일 김예지 의원의 대정부질문 직후 나온 호평과 관심은 뜻밖이었다. 김 의원은 한덕수 국무총리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장애인학대 처벌 특례법’ 등 제도개선과 장애인 예산 증액의 필요성을 설득하고, 정부의 노력을 약속받았다. 이게 전부였다. 그런데 그의 질의에 여야 모두 박수를 보냈다.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김예지 의원의 질의가 큰 울림을 줬다. 민주당이 입법과 예산과 정책으로 응답하겠다”라고 호응했다. 거대 양당이 건건이 대립하는 정치 환경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장면이었다.
6월2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마주한 김예지 의원은 대정부질문 직후 쏟아진 관심에 어리둥절하다고 말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늘 중요하게 생각하고 다루던 걸 다시 요구하며 대안을 제시했고, 약속도 받아냈다.”
지난 3년 동안 김예지 의원 대표 발의로 결의안 1건과 법안 28건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중 20여 건이 장애 관련 법안이다. “장애인에게 편한 사회는 모두에게 편한 사회다”라고 말하는 김 의원은 본인의 경험, 민원, 언론 모니터링, 보좌진 제안 등을 통해 필요한 법안을 발굴한다.
김 의원은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선택의정서’ 비준 촉구 결의안을 대표 발의해 통과시킨 일을 성과로 꼽았다. 지난해 12월8일 ‘선택의정서 비준’이라는 결과물을 얻었다. 선택의정서에는 국내에서 장애인의 권리가 구제받지 못할 때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에 진정 요청을 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 담겼다. 한국은 전 영역 걸쳐 장애인의 권리보장을 규정하는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에 2008년 서명했다. 하지만 김 의원이 결의안을 대표 발의한 2021년까지 13년간 선택의정서 비준이 미뤄졌다. 김예지 의원은 국회가 관심을 두지 않아 10년이 넘게 비준이 미뤄졌다고 평가했다. 그의 노력 끝에 여야 의원 74명이 결의안에 서명했다.
그렇다고 법안 통과가 늘 쉬운 일은 아니다. 약사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을 때도 그랬다. 상비약 오남용을 막기 위해 장애인을 위한 정보표시를 의무화하려고 했지만, 제약 회사들이 비용 부담 등을 이유로 반대했다. 간담회를 열고 제약업계, 식약처 관계자들과 만났다. 법안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점자든 바코드든 경제적 방식을 선택하면 된다고 설득했다. 2021년 6월29일 법이 통과됐다. 개정안은 2024년 7월부터 시행되지만 선제적으로 점자 표시를 도입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법안을 반대하는 사람은 도처에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일이다. 장애인 고용률 상향 등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법안이라면 내가 발의한 법안이 아니더라도, 반대하는 의원을 만나 설득했다. 찬성과 반대 의견이 대립할 때, 조율하고 설득해 합의점과 대안을 찾는 게 정치의 역할이다. 그 과정에서 뒤처지고 배제되는 사람이 없게 만드는 것도 정치인의 책임이다. 지하철 시위 때도 정치권에서 일찍 해결하지 못해 양쪽 모두가 어려움을 겪었다. 나도 정치의 역할을 100% 다 해내지는 못하지만 노력하고 있다. 나보다 역량과 경륜 있는 의원들이 더 적극 나서주기를 바란다.”
그가 발의한 법안 대부분도 본회의에 오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논의 대상에 오르지 못하는 법안도 많았다. 그에 비해 시각장애인의 정보 접근을 보장하기 위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선거공보물)’과 ‘점자법 개정안(공공기관 문서)’은 빠르게 논의돼 발의 6개월여 만에 본회의를 통과했다. 김 의원은 시민과 언론의 관심을 그 이유로 꼽는다. “국회에 있는 시간이 흐를수록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말을 실감한다. 국회는 민심과 언론보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정치를 바로잡을 수 있는 사람은 정치인이 아닌, 투표권을 가진 시민이다. 국회의원이 보기 싫더라도 국회에 관심을 가지고 또 심판해줬으면 좋겠다.”
다음 총선 출마 여부 “열려 있다”
법안 통과가 끝이 아니다. 그는 법이 제대로 시행되는지도 꼼꼼하게 챙기려고 노력한다. 2020년 12월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된 이후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가 치러졌다. 점자, QR코드 등 시각장애인을 위한 선거공보물이 제공됐지만, 오탈자나 다른 내용 등이 쓰인 사례가 나왔다. 김 의원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의견을 제시했다. 다른 법안들도 마찬가지다. 발의한 목적에 맞게 시행령을 만드는지, 제대로 예산을 배정하는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 “귀찮을 만큼 부처에 전화한다”.
김예지 의원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소속된 유일한 장애인 의원이기도 하다. 국회에 오기 전 피아니스트, 스포츠인으로 활약했던 경험을 살리기 위해 문체위에 자원했다. 김 의원은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 사이클 선수, 전국장애인동계체육대회에 바이애슬론과 크로스컨트리 스키 선수로 출전한 경력이 있다. 처음에만 해도 김 의원은 해당 부처와 상임위에서 생소한 존재였다. 하지만 그는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부처나 국회 관계자들이 달라진다고 느낀다. 자료가 점자로 배포되기 시작했다. 문화, 예술, 체육 분야에서 장애 관련 예산도 확장됐다.
이번 대정부질문에서 내용만큼이나 김예지 의원의 준비 과정이 주목받았다. 김 의원이 ‘늘 하던’ 노력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이 국회 본회의장이 얼마나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설계돼 있는지를 알아차렸다. 김 의원은 미리 본회의장을 찾아 단상까지 오가는 동선을 연습했다.
“장애인을 위한 부처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각 부처에 장애 관련 이슈들이 산재해 있는 만큼, 김 의원은 ‘장애인 정책 컨트롤타워’ 설치와 함께 각 상임위에 장애인 의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정치개혁 과제 중 하나로 국회의원 정수 10% 축소를 내세웠다. 당내에선 비례대표를 줄이거나 없애자는 의견이 나온다. 김예지 의원의 생각은 다르다. “지금 국회에는 출신·성별·연령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건 위험하다. 국회의원은 입법권을 가진 동시에 행정부 결정에 개입하고 개선을 끌어내는 자리다. 다양한 목소리가 반영돼야 한다. 배제되는 목소리가 지금보다 더 묻히지 않도록, 비례대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목소리 낼 수 있는 방향으로 선거제가 개편돼야 한다.”
임기(내년 5월)가 얼마 남지 않아서 그는 요즘 마음이 더 조급하다. “당과 다른 목소리를 내서 눈에 띌 때마다 ‘제명되지는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러진 않았다. 마지막까지 하나의 헌법기관으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겠다.”
다음 총선에서도 김예지 의원을 볼 수 있을까? “국회에 내 역할이 더 필요할까? 우선은 연주나 강연처럼 원래 내가 있던 자리로 돌아갈 계획이다. 다만 지금까지 내 경험이 필요하니 도우라고 하면 그 자리에서 또 도울 수 있다. 열려 있다.”
이은기 기자 yieun@sisain.co.kr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