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 대학통합에 대한 다른 시선
지난 4월 18일 글로컬대학 30 사업의 최종계획안이 발표되자 전국의 지역 대학가에서는 국·공·사립을 막론하고 통합을 향한 활발한 움직임이 나타났다. 담대한 혁신을 주문한 교육부가 '대학 간 벽 허물기'를 그 대표적인 예시로 제시한 결과였다.
7개의 교수·연구자단체가 결성한 전국교수연대회의는 현 정부의 대학정책을 지역대학을 고사시키는 나쁜 정책이라며 통렬하게 비판했지만, 위기의식에 함몰된 지역대학 총장들은 사업에 선정되기 위해 큰 고민 없이 교육부의 주문을 충실하게 따랐다.
작년부터 통합 논의가 진행되고 있던 충남대와 한밭대, 소속 법인이 다른 배재대와 목원대를 비롯한 총 27개교(국립대 9, 공립대 1, 사립대 17)가 통합을 전제로 예비지정 공동신청서를 제출했다.
6월 20일 교육부가 발표한 예비지정 결과에 따르면, 통합안을 제출한 학교 중 17개 사립대는 전멸한 반면 충남대와 한밭대를 제외한 8개의 국·공립대는 모두 선정됐다. 단독으로 신청서를 제출한 4개 국립대, 7개 사립대 또한 선정됐다.
예비지정 결과를 놓고 여러 억측과 설왕설래가 있지만, 두 개의 큰 흐름이 보인다. 교육부는 국립대 간 통합을 선호한다는 것이 하나이고, 국립대들은 생존을 위해 적극적으로 통합을 추진한다는 것이 다른 하나다. 교육부의 '1도 1국립대학 정책'은 공공연한 비밀이니 새삼스러울 필요가 없지만, 국립대들이 과거와 달리 강요된 구조조정에 저항하지 않고 순응하는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언론의 보도에서 통합과 혁신은 동의어로 사용된다. 학령인구의 감소에 따른 지역대학의 위기가 본격적으로 거론되면서 이런 논조는 더욱 강화되고 있다. 일반인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대학교수들도 막연하게 그렇게 생각한다. 대학 간 통합은 국립대의 생존전략이 될 수 있을까. 바꿔 말하면 통합된 대학의 경쟁력은 이전보다 향상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통합찬성론의 주된 논거는 '규모의 경제'이다. 규모가 커지면 대학의 경쟁력은 향상될 수 있는가. 통합하면 더 우수한 교수와 학생이 오고 교육·연구환경과 행정서비스가 개선되며 연구와 산학협력의 실적이 좋아지는가. 엄밀히 따져보면 그렇다고 보기 어렵다.
전공과 장점이 서로 다른 비슷한 수준의 대학 간에는 시너지가 창출될 수 있어 맞는 말일 수 있지만, 이 경우조차 이질적인 역사와 문화를 갖고 있는 두 대학이 하나의 조직으로 거듭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통합하면 학생정원의 감축이 수반되기 마련인데, 국립대의 교수와 직원의 수는 쉽게 줄일 수 없어 경쟁력의 근간인 재정 상태는 시간이 갈수록 악화된다. 국립대의 인건비와 관리운영비는 등록금에 크게 의존한다. 단기적인 사업비와 지원금으로 채울 수 없는 부분이다.
더구나 충남대와 한밭대의 사례처럼 화학적 통합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거버넌스, 동일유사학과의 통·폐합, 캠퍼스별 특성화와 이에 따른 공간 재배치 등의 문제로 인해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기 때문에 통합의 핵심의제에 대한 합의는 쉽지 않다.
예비 지정을 신청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두 대학 간의 불협화음은 실은 예견된 일이었다. 유사한 사례인 경상국립대(경상대+경남과기대)의 경우, 아직도 화학적 통합을 하지 못해 분산된 교육시설로 학생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으며, 그동안 받은 통합지원금이 적다며 추가적인 재정지원을 호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통합모델의 치밀한 사전준비를 전제로 한 공론화를 통해 내부적인 공감대가 형성된 후 통합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실행계획의 이행에 지장이 초래된 것이다.
국립대의 경쟁력 강화가 아닌 규모의 축소만을 지향하는 교육부의 1도 1국립대학 정책은 국립대의 비중을 낮춰 고등교육의 공공성을 약화시키고 통합의 졸속 추진으로 학내 구성원 간 갈등을 심화시켜 왔다. 지역대학의 위기는 수도권 집중화, 강고한 대학서열체제, 소규모의 정부재정지원에 기인한다. 이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정책의 대전환이 없다면 2040년 이후 거점국립대의 생존도 장담할 수 없다.
통합은 대증요법일 수는 있어도 해법이 아님은 분명하다. 진실은 종종 통념과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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