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미남 오빠에서 백발이 된 시카고 “나이는 숫자, 음악은 영원하다”
첫 히트곡 ‘토요일 공원에서’ 등 열창
’Hard To Say I’m Sorry’ 등으로 전성기 구가
그룹 결성 56년동안 한결같은 음악활동
미국 독립기념일이었던 지난 4일 수도 워싱턴DC의 국회의사당 앞 잔디밭. 경쾌한 키보드와 관악소리에 맞춰 노래가 흐르자 모여앉았던 남녀노소 관객들이 일어나서 손에 든 작은 성조기를 들고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Saturday in the park
I think it was the Fourth of July
토요일 공원에서
7월 4일 독립기념일이었던 것 같아요
People dancing, people laughing
A man selling ice cream
Singing Italian songs
사람들이 춤추고, 소리 내서 웃어요
아이스크림을 파는 남자도 있어요
이탈리아 노래를 부르면서
독립기념일의 흥겹고 소소한 풍경을 노랫말과 선율에 담은 그룹 시카고의 대표곡 ‘토요일 공원에서(Saturday in the park)’였다. 51년 전 이 노래를 쓰고 부른 시카고 멤버들이 머리 희끗한 칠순의 노인이 돼서 무대에 섰다. 청청하던 흑발은 윤기 흐르는 백발이 됐고, 쩌렁쩌렁하던 목소리는 거친 쇳소리로 바뀌었지만, 관악과 타악이 풍성하게 어우러진 시카고 특유의 리듬은 변한 게 없었다. 이날 시카고는 미국 공영 TV PBS가 43년째 진행하고 있는 독립기념일 축하콘서트 ‘캐피털 포스(Capitol Foutth)’의 헤드라이너(간판 공연자)로 무대에 섰다. ‘캐피털 포스’는 한국으로 치면 광복절 열린음악회 같은 무대다. 록·힙합·R&B·컨트리 등 세대와 인종을 대표하는 가수들이 나와 미국의 단결과 화합을 호소하는 저마다의 무대를 가진다.
이날 무대는 ‘미안하다는 말하기가 어렵네(Hard To Say I’m Sorry)’, ‘그대 내게 영감을 주는 사람(You’re The Inspiration)’, ‘그대가 나를 지금 떠나간다면(If You Leave Me Now)’ 등 한국인들에게도 귀익은 사랑노래들로 각인되어있는 이 그룹이 주축 멤버가 백발노인이 된 지금까지도 왕성한 현역으로 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자리였다. 무대에 오른 로버트 램(79·키보드와 보컬), 제임스 팬코(76·트롬본), 리 러프네인(77·트럼펫)은 1967년 창단때부터 활동해온 원년 멤버다.
이글스, 엘튼 존 등 한 시절을 풍미했던 팝스타들이 세월을 이겨내지 못하고 잇따라 고별투어 일정을 알리며 퇴장을 준비하고 있지만, 동시대 밴드인 시카고는 오히려 나이를 거꾸로 먹는 듯한 모습이다. 8월 10일 콜로라도주 콜로라도 스프일스를 시작으로 11월 11일 필라델피아 베들레헴으로 이어지는 하반기 공연 일정표도 촘촘하게 짜여있다. 이날 시카고는 1973년 곡 ‘하루하루 기운이 불끈불끈 솟는 느낌(Feeling Stronger Everyday)’와 1969년 곡 ‘새벽 네 시까진 25분에서 26분쯤 남았지(25 or 6 to 4)’ 등도 불렀다. 이 노래를 부를 때 국회의사당 상공은 오색 불꽃으로 물들었다. 이들을 헤드라이너로 초청한 PBS는 “로큰롤의 새벽이 도래한 이래 음악계에서 가장 중요한 밴드 중 한 팀”이라고 소개했다.
시카고는 1967년 창단됐다. 원년 멤버 3명을 포함해 초창기 멤버는 모두 7명인데 지금은 열명이 됐다. 초창기부터 관악기의 편성을 극대화한 실험적 사운드로 주목받았던 이 팀을 ‘전국구 뮤지션’으로 각인시켜준 노래가 바로 ‘토요일 공원에서’다. 결성 5년차로 접어든 1971년 독립기념일에 멤버들은 뉴욕에 머물고 있었다.로버트 램이 맨해튼 센트럴 파크로 산책을 나갔다가 흥겹게 춤을 추고 노래 부르며 즉석 공연을 펼치는 광경을 지켜보고, 그 강렬한 인상을 노래로 만들었다. 반전시위와 민권운동으로 격동과 혼란의 시절을 겪고 있던 미국인들은 고즈넉한 선율로 평범하지만 희망 가득한 일상을 노래한 이 노래를 통해 힐링했다. 이 노래는 당시엔 10위안에 드는 것조차 어렵던 빌보드 차트에서 3위까지 치솟았다.
원년멤버인 베이시스트 겸 보컬 피트세트라가 1980년대 들어 캐나다 출신의 작곡가 겸 프로듀서 데이비드 포스터가 쓴 사랑 노래 ‘미안하다는 말하기가 어렵네’와 ‘그대 내게 영감을 주는 사람’이 메가톤급 히트곡이 되면서 시카고의 인기는 하늘높은줄 모르고 치솟았다. 어느 멤버 한 명에게 시선이 집중되면 십중팔구 결별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송골매와 구창모가 그랬고, 라이오넬 리치와 코모도어스가 그랬으며, 다이애너 로스와 슈프림스, 로비 윌리엄스와 테이크 댓이 또한 그러했다. 그 전철을 피트 세트라와 시카고도 밟았다. 하지만 그 뒤에도 시카고는 꾸준히 라이브 밴드라는 정통성을 이어가며 꾸준히 순회공연을 펼쳤다. 수많은 동시대스타들이 피고지고, 컴백과 은퇴를 반복했지만, 시카고만큼의 꾸준함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어느 덧 이들을 소개할 때 ‘전설적인(legendary)’라는 수식어를 붙이는게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2014년 그들의 1집 앨범은 그래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3년 뒤 수많은 히트곡을 합작한 원년멤버 팬코와 램이 작곡가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코로나로 미국과 전세계가 올스톱되기 직전인 2020년 3월까지도 그들은 변함없이 무대에 섰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공연이 멈춘 아쉬움은 그해 그래미 주관 평생공로상을 받는 것으로 달랬다.
그들이 암흑 같은 코로나 시기를 견뎌내며 무대 복귀를 준비하는 모습은 ‘무대 위의 마지막 밴드(The Last Band On Stage)’라는 다큐멘터리로도 만들어졌다. 누적 앨범 판매량 1억장 돌파, 25개의 플래티넘 앨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수많은 트로피… 지난 56년간의 궤적을 말해주는 화려한 숫자들을 뒤로 하고 멤버들은 변함없이 무대에 오른다. 통산 37번째 앨범을 발표했던 시카고는 오는 15일 38번째 앨범 ‘이 순간을 위해 태어났어(Born For This Moment)’를 발표한다. 그리고 또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면 39, 40번째 앨범을 낼 것이다. 독립기념일을 한달 앞둔 지난 6월 시카고는 그들의 음악적 고향인 시카고의 근교 도시인 일리노이주 하이랜드 파크에서 공연을 가지면서 한 가족에게 성금과 멤버들의 사인이 새겨진 기타를 선물했다. 1년 전 독립기념일 퍼레이드 당시 괴한의 총기난사로 총을 맞아 평생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된 쿠퍼 로버츠(8)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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