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의 뼈 주변 물고기는 아스라이 발광한다···마치 도시처럼
영화 '고래의 뼈' 오에 다카마사 감독
도시의 밤은 많은 불빛들이 명멸한다. 오에 다카마사 감독의 영화 ‘고래의 뼈’는 고래의 뼈에 모여든 작은 생물들을 도시에 빗대 고독 속 현대 사회를 그려낸 작품이다. 2021년 프랑스 칸 영화제에서 ‘드라이브 마이 카’로 각본상을 공동 수상한 오에 감독은 제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국제경쟁 섹션 ‘부천 초이스’를 통해 한국 관객들을 만나게 됐다.
“도시의 밤은 심해를 떠올리게 해요. 심해에서는 고래 같은 다른 동물의 뼈를 먹고 살아가는 생물들이 자체적으로 빛을 내는데, 그 모습을 위에서 조망하면 도시의 모습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죠.”
6일 경기 부천시 원미구의 한 호텔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진행한 오에 감독은 “도시에 있던 옛 장소들이 개발되고 새로움이 쌓이면서 한 세계가 순환되는 과정을 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싶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영화 속에서 약혼자의 일방적인 이별로 괴로워하는 ‘마미야(오치아이 모토키 분)’는 회사 동료의 추천을 받아 데이팅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여고생 ‘아스카(아노 분)’과 만남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아스카는 마미야의 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시체는 사라지고 만다. 이후 마미야는 증강현실 앱인 ‘미미’에서 아스카의 흔적을 발견하고 그를 뒤쫓는다.
영화의 핵심적인 열쇠를 맡고 있는 미미는 사람의 기억을 저장하는 앱이다. 도시의 한 장소에서 누군가 영상을 묻어두면 그곳을 지나가던 다른 사람들은 미미를 통해 이를 재생할 수 있다. 아스카는 미미를 통해 인플루언서로 거듭난다. 하지만 현실의 아스카는 앱과 현실의 간극에 괴로워하며 사라지기를 선택한다.
오에 감독이 영화를 구상하게 된 것은 10년 전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고래의 뼈’ 이미지를 구현할 기술이 부족했고 작품의 메시지에 동의하는 사람도 적었다. 오에 감독은 “2017년 증강현실을 이용한 ‘포켓몬 고’ 앱이 인기를 끌었다. 포켓몬 고를 보면 아스카의 이미지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때부터 영화를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인터뷰에서 오에 감독은 영화 속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주기도 했다. 마미야와 아스카가 처음 만난 카페에서는 아스카의 물건들이 점차 사라지며 모든 것들이 떠나가고 있는 차가운 현실을 강조한다. 하지만 미미를 통해서 아스카를 바라보자 다시 물건들이 늘어나며 증강현실 속의 상황을 대조적으로 묘사한다. 분명한 차이지만 관객들이 인식하기는 쉽지 않다. 오에 감독은 “편집하면서 관객들이 이 장면을 눈으로 보더라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것 같다는 점이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스릴러의 전개가 이어지는 전반부와 다르게 마미야가 아스카의 진실을 찾아내는 후반부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마미야와 아스카는 처음으로 만난 카페를 떠난다. 그들이 떠나고 텅 빈 의자는 다른 소녀들로 채워진다. 엔딩은 롱 테이크로 카페의 일상을 비춘다. 도시는 계속 변모하고, 사람들은 새로운 나날들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전날 영화 상영 후 열린 GV에서 오에 감독은 “판타지나 거짓말만 그려내는 게 아니라 현실을 그대로 그려내며 관객과 함께 생각하는 것, 그 세계를 긍정하는 것이 내 책임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2018년 ‘어느 가족’으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고, 오에 감독이 각본가로서 참여한 ‘드라이브 마이 카’도 2021년 같은 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하는 등 일본 영화는 고유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일본 영화의 미래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그는 “일본의 영화들은 제작위원회 시스템을 통해 국내에서 펀딩이 된다. 대상으로 하는 관객도 일본인이기 때문에 일본 특유의 분위기가 담기게 됐다”면서 “우유를 놔두면 요구르트로 발효되는 것처럼 일본 영화 특유의 맛을 찾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을까. 갈라파고스화가 이뤄지는 게 아니라 이러한 개성이 나름의 진가를 발휘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오에 감독은 드라마 ‘간니발’ ‘모두 잊었으니까’의 각본을 맡는 등 영화 외 다양한 장르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보이는 중이다. 특히 ‘드라이브 마이 카’의 프로듀서였던 야마모토 데루히사를 향해 각별한 신뢰를 보내며 공동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는 “제 연락처를 그 분밖에 알지 못해 그 분을 통해 일을 의뢰하는 연락이 올 정도”라고 말했다. “재밌는 것이라면 하고 싶다”라고 말한 그는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융합한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원더 해치’의 각본을 맡아 다시금 대중과 조우할 예정이다.
부천=박민주 기자 mj@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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