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든 일본 깨운 기시다노믹스의 힘[기시다노믹스의 힘①]
일본 경제가 부활의 기로에 섰다. 표면적인 경제 지표는 상승을 그리고 있다. 일본 경제의 거품이 정점에 있던 시절의 숫자가 다시 보인다. 증시는 33년 만에 3만3000선을 뚫었고 제로 성장하던 국내총생산(GDP)이 다시 늘고 있다. 일본 정부도 이를 뒷받침해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강력한 주주 환원 정책으로 외국인 투자자를 일본 증시로 끌어들이고 있고 반도체 패권을 되찾겠다는 야심도 품었다.
하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일본의 경제 성장에 의문이 남는다. 일본의 고질적인 경제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일본의 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그런데 나랏빚의 절반 이상을 일본 은행이 떠안고 있다.
국채를 무제한으로 사들여 금리를 억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발행한 빚을 일본 은행이 떠안은 악순환의 고리는 일본이 10년 넘게 ‘엔’의 가치를 누르면서 대규모 완화 정책을 펼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가계 부담도 커졌다. 지난 5월 엔화의 구매력(실질 실효 환율)이 변동 환율제 도입 이후 최저로 내려갔다. 증시 활황의 수혜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보고 있고 여전히 일본 가계 자산은 투자보다 ‘예금’에 쏠려 있다. 일본이 30년간 이어진 저성장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올 수 있을까. 일본 부활의 신호를 나타내는 주요 지표를 정리했다.
일본 증시의 대표 주가지수인 닛케이225 평균 주가(닛케이지수)는 6월 13일 종가 기준 3만3000선을 넘어섰다. 닛케이지수가 3만3000선을 넘긴 것은 버블 경제가 정점에 있던 1990년 7월 이후 처음으로 33년 만이다. 연초 이후 닛케이225지수는 30% 올라 주요국 중 상승률 1위를 차지했다. 압도적인 성과다.
지난해까지 ‘제로 성장’에 가까웠던 일본이 반전 국면을 맞았다.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0.7%(전 분기 대비), 연 환산하면 2.7%에 달했다. 한국은 물론 G8 국가 평균 성장률 전망치를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일본 GDP 성장률은 한국을 웃돌고 있고 이대로 간다면 올해 일본 연간 GDP 성장률이 한국 GDP 성장률을 웃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올해 1분기 일본 기업의 설비 투자는 1.4% 늘었다. 작년 4분기 0.6% 감소에서 반등했다. 설비 투자의 선행 지표인 기계 수주는 4월 전년 같은 기간보다 5.5% 증가했다. 3개월 만의 반등이다. 지표를 끌어올린 주요 배경에는 반도체가 있다. 일본은 ‘반도체 제국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자국 내 글로벌 기업의 유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일본 주요 상장 기업의 2022 회계연도(2022년 4월~2023년 3월) 영업이익은 과거 역대 최대였던 2021년의 34조 엔(약 337조원)을 웃도는 39조1000억 엔으로 추정된다. 이는 SMBC닛코증권이 상장사 1308곳의 실적 추정치를 집계한 결과다. 일본 상장사들의 지난해 순이익이 코로나19 위기 극복과 엔저의 영향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3월 30년 내 최대 임금 인상률도 기록했다. 일본 805개 노동조합의 임금 인상률은 평균 3.8%로 지난해 같은 시기보다 1.66%포인트 올라갔다. 이는 비교 가능한 2013년 이후 1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일본 경제 펀터멘털과 증시 랠리를 뒷받침하는 것은 일본은행의 초완화적 통화 정책에 있다. 일본은행은 6월 16일 금리를 마이너스 0.1%로 동결하고 장기 금리 지표인 10년물 국채 금리를 0% 정도로 유지하기로 결정하는 등 금융 완화 정책을 이어 가고 있다. 이는 경기에 방점을 둔 결정으로 해석된다. 100엔당 원 환율은 800원대로 떨어지는 등 초약세 현상을 보이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6월 30일까지 올해 한국 투자자의 일본 주식 매수 건수는 4만4752건으로 집계됐다. 2011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12년 만에 최대치다. ‘일학개미’는 한국뿐만이 아니다. 특히 중국에서 일본으로 투자 자금이 이동하고 있다. 유럽 연기금이 아시아 자산 리밸런싱 차원에서 일본 주식 비율을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미·중 간 갈등이 지정학적 중요성을 키우면서 일본 금융 시장에 긍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
정채희·김영은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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