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카드 웰컴" 현금의 나라 일본, 이젠 '캐시리스' 국가로

도쿄(일본)=강한빛 2023. 7. 10.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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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新금융패권 시대-1.금융패권의 영광, 일본 '반면교사'③] 일본 정부의 야심 '현금없는 사회' 만든다

[편집자주]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후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은 뉴노멀(새로운 기준)이 됐다. 미국은 연초 실리콘밸리 은행의 파산 사태로 '뱅크데믹' 충격을 겪었고 유럽은 금리 동결로 선회했던 주요국 중앙은행이 다시 금리 인상에 나서는 스톱 앤 고(stop and go) 정책을 펼치며 긴축기조가 이어지고 있다. 1300원대로 올라선 원/달러 환율이 약보합세를 유지하는 가운데 원/엔 환율은 800원대로 떨어졌다. 원/위안화 환율은 170원대로 하락하며 원화 가치가 상승세를 보인다. 신(新) 금융패권 시대에 국내 금융회사는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신성장 동력을 모색하고 있다. 금융지주 수장들은 공격적인 글로벌 행보를 보인다.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일류신한'을 글로벌 전략 타이틀로 걸었고 윤종규 KB금융회장은 미래 성장동력으로 글로벌 사업을 꼽았다. 함영주 하나금융회장은 한국을 넘어 '아시아 1등' 금융회사 도약을 목표로 세웠고 임종룡 우리금융회장은 ADB(아시아개발은행) 연차총회에서 정상급 인사들을 만나 '중소기업 지원 플랫폼' 등을 직접 설명했다. 해외 진출 20년이 된 미래에셋운용은 박현주 회장의 글로벌 경영 방침에 따라 해외 사업을 확장하며 글로벌 운용사로 몸집을 키우고 있다. 금융지주회사 전환을 추진하는 교보생명은 해외 진출로 수익 다각화를 꾀한다는 방침이다. 2023년 국내 금융회사의 공을 들이는 나라는 일본이다. 기시다 총리와 윤석열 대통령의 만남으로 양국의 해빙무드가 가속되자 국내 기업의 일본 진출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1980년대 금융패권국으로 맹위를 떨쳤던 일본은 정부와 중앙은행의 전방위적 지원에 제2의 경제 부흥을 기대하는 모습이다. 열도에서 선진화된 K금융을 전파하는 금융권의 주역을 직접 만나봤다.

일본 캐릭터 상점. 카드 환영이라는 문구가 보인다./사진=강한빛 기자
◆기사 게재 순서
①장기불황 딛고 부활 날갯짓… 역대급 엔저에 '바이 재팬' 돈 몰린다
②'와타나베 부인' 찾는 컨설팅 점포… K금융 뱅킹 앱, '자이테쿠' 새 바람
③"카드 웰컴" 현금의 나라 일본, 이젠 '캐시리스' 국가로
④꽂지 않고 '쓰윽'… 컨택리스 카드가 뭔가요

일본(도쿄)=강한빛 기자

#.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성지로 불리는 일본 도쿄 긴자의 '산리오월드', 귀여운 캐릭터 인형, 볼펜을 들고 상기된 얼굴로 결제를 기다리는 이들이 빼곡하다. "카와이(귀엽다)" 곳곳에서 환호성이 들린다. 방문객들은 마음에 드는 인형을 골라 결제 카운터 앞에 선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건 'Cards Welcome!'(카드 환영)이란 문구. 곧이어 "카도데 오네가이시마스"(카드로 부탁드립니다)라는 말이 끝남과 동시에 상점 직원이 카드를 건네 받는다. 단말기에 카드를 꽂으니 '띠릭'이란 명쾌한 결재음이 들린다. 과거엔 지폐를 건네면 한 손 가득 잔돈과 영수증을 받았지만 이젠 카드 결제 영수증 한 장만 손에 쥐어진다. 일본 여행길에 오르기 전 두둑하게 환전을 해야 한다는 여행팁은 이젠 '해외 알짜카드 추천' 등의 게시글에 밀리고 있다.

'현금의 나라' 일본이 변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비대면, 비접촉 소비가 늘면서 일본에서도 현금을 사용하지 않는 문화가 퍼지고 있다. 여전히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지만 일본 정부의 의지와 디지털 사회로의 전환 요구가 맞물리며 느리지만 확실한 속도로 '캐시리스'(현금없는 사회) 태동기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다.


현금의 나라는 옛말… "2025년까지 40% 간다"


일본 상점에 설치된 동전 세는 기계./사진=강한빛 기자
일본의 현금 사랑은 유별나다. 기술 강대국이란 말이 무색하게 현금이 전체 결제 비중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지방 영세 가맹점은 여전히 현금만을 고수해 카드를 쓸 수 있는 곳이 제한적이다. 현금 의존도가 큰 이유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지만 일본의 사회, 정치, 지리적 특징 등 복합적 이유가 크다는 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무엇보다 지진, 태풍 등 빈번한 자연재해에 노출된 게 근거로 뒷받침된다. 큰 지진이 발생할 경우 신용카드 결제 시스템이 붕괴될 위험이 있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거래수단으로 현금을 사용한다는 이유에서다. 신용이 즉 '빚'이란 인식이 팽배한 점도 컸다. 과도한 빚을 내기보다 정해진 한도와 여력으로 소비를 하는 게 더 옳다는 인식에서다. 여기에 지속된 저금리로 은행에 돈을 맡기지 않고 집에 현금을 보유한 사람들도 다수다. 홀로 숨진 노인들 집에서 현금이 다발로 발견됐다는 소식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일본 내 현금은 단순 결제 수단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셈이다.

그런 일본이 캐시리스 사회로 발을 옮기고 있다. 전 세계 디지털 전환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고 국제 행사를 준비하고 있어 외국인 관광객들을 위한 편의 제공과 국가 이미지 제고를 위해 일본 정부 차원에서 인프라 확대에 나서는 모습이다.

일본 정부는 2025년 오사카 엑스포 개최까지 캐시리스 결제 비중을 40%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코트라(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에 따르면 2020년 일본의 캐시리스 결제 비중은 약 30%로 추정된다. 5년 새 10%포인트를 끌어 올린다는 게 일본 정부의 구상이다. 2021년에는 총리실 직속 '디지털청'을 출범하고 범정부적으로 '디지털 전환'을 핵심 과제로 꼽았다.

일본 정부는 글로벌 행사를 중심으로 캐시리스 확대를 꾀해왔다. 실제 도쿄올림픽이 열린 2021년 말 현금 외 결제 비중은 32.5%로 1년 전(29.7%)와 비교해 2.8%포인트 늘었다. 2010년부터 2020년대까지 매년 2% 초반대의 증가세를 나타낸 것과 비교하면 약진한 셈이다. 여기에 2020년부터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면서 비대면, 비현금 결제에 대한 요구가 늘어난 점도 속도를 보탰다.

변화도 체감되고 있다. 현지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한국의 은행 지점장들에겐 피부에 와닿는 변화가 더 크다. 정봉규 하나은행 도쿄지점장은 "과거엔 맥도날드 같은 대형 프랜차이즈 점에서도 현금결제만 가능했다"며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디지털 결제에 대한 요구가 늘면서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일본도 조금은 나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인열 KB국민은행 도쿄지점장은 "2018년까지만해도 일본 내에서 신용카드를 거의 못썼다"며 "현금 사용이 많아 잔돈을 따로 보관하는 동전지갑을 항상 가지고 다녔다"고 회상했다. 이어 "여전히 대도시에서 거리가 먼 지방 상점에선 현금을 받지만 요즘 웬만한 곳은 다 신용카드가 된다"고 설명했다.
그래픽=김은옥 기자
캐시리스 결제액이 불고 있는 점도 고무적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의 2022년 캐시리스 결제액은 111조엔(약 1100조)에 달한다. 신용카드 이용은 전년 대비 16% 늘어난 93조7926억엔으로 가장 많았고 QR코드를 활용한 결제액은 7조9000억엔으로 50% 증가했다. 체크카드는 19% 증가한 3조2000억엔이었다.

일본 경제산업성 자료에 따르면 신용카드 결제비중은 ▲2015년 16.5% ▲2016년 18.0% ▲2017년 19.2% ▲2018년 21.9% ▲2019년 24.0% ▲2020년 25.8% ▲2021년 27.7% 등으로 증가했다. 캐시리스 결제 비중 중 가장 큰 수치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한국신용카드학회장)는 "일본은 비교적 치안이 좋아 현금 도난 우려가 적고 위조지폐도 많지 않아 현금에 대한 신뢰도가 높은 편"이라며 "다만 신용카드와 모바일 결제율이 증가 추세에 접어들어 향후 캐시리스 사회로 빠르게 나갈 것"이라고 진단했다.


해외 시장 잡아야 산다… 나라 밖 경쟁 치열


일본의 어느 상점. 카드 단말기가 설치된 건 물론 간편결제 로고가 보인다./사진=강한빛 기자
일본 정부가 캐시리스 전환을 선포하면서 국내 카드사들도 덩달아 바빠지고 있다. 일본 정부가 현금 외 결제 수단 활성화를 밝힌 만큼 카드 결제 인프라가 확대되면 여행족들의 카드 신청과 결제가 늘어 수익 증가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국내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에 접어든 데다 가맹점 수수료율 인하, 금리 인상 등 수익성 하방 압력이 커 성장 가능성이 큰 일본은 매력적인 시장일 수 있다.

소비자들의 요구도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 글로벌 결제기술기업 비자가 지난 6월2일과 3일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해외여행 의향, 목적, 선호하는 여행지, 이용 결제 수단, 예상 경비 등을 조사한 결과 1년 이내에 해외여행을 떠날 계획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전체 응답자의 55.1%로 집계됐다. 동일 문항에 대한 지난해 응답(46.4%)과 비교해 8.7%포인트 증가한 것으로 해외여행 의향이 더욱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선호도가 가장 높은 여행지는 일본(26.7%)으로 호주(12.9%) 베트남(6.3%) 등이 뒤를 이었다.

결제 수단에 대한 변화도 두드러졌다. 1년 내 해외여행 계획이 있는 응답자들이 뽑은 '해외여행 시 사용 예정인 결제 수단'은 1위 신용카드(77.7%) 2위 현지 화폐(61.6%)로 나타났다. 지난해 현지 화폐(73%)가 신용카드(62%)보다 높은 응답률을 기록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최근 해외 결제금액 순위가 재편되고 있다는 점도 매력적인 요인이다. 해외여행이 늘면서 나라 밖 결제금액이 전체적으로 늘어난 가운데 일찍이 여행족 특화 카드를 내세운 카드사들이 약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현대카드는 대한항공과 선보인 PLCC(상업자표시신용카드), 호텔·면세점 혜택이 두드러지는 상품군 덕에 지난 5월 해외 신용카드 이용금액(개인·일시불 기준)이 8989억4800만원으로 집계됐다. 현대카드는 지난 4월만해도 삼성카드(7426억9000만원)와 신한카드(6894억4400만원)에 못미쳤지만 한 달 만에 삼성카드의 뒤를 바짝 추격하게 됐다. 하나카드는 트래블로그 체크카드에 힘입어 지난 4월 해외 직불·체크카드 이용금액(연간 누계)이 2777억9900만원으로 집계됐다. 신한카드(2520억1300만원)를 제친 것으로 우리카드(1752억9800만원) KB국민카드(1447억5300만원) 등과 비교해서도 앞선다. 이제 국내 1위가 해외시장을 주도하는 건 옛말이 됐다.
신한카드 글로버스./사진=신한카드
이에 카드사들은 여행족을 겨냥한 카드 출시에 사활을 걸고 있다. 신한카드는 해외 이용 특화 신용카드 '신한카드 글로버스'를 앞세우고 있다. 해외에서 카드결제 시 발생하는 수수료가 면제되는 게 강점이다. 별도의 충전이나 계좌개설, 환전이 필요하지 않고 국제브랜드수수료 1%와 해외서비스수수료 0.18%가 면제돼 총 1.18%의 수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다. KB국민카드의 'KB국민 위시 올' 카드는 전월 실적 조건 없이 해외 가맹점에서 2%를 월 최대 4만원까지 할인해 준다.
'KB국민 해외에선 체크카드'는 해외ATM에서 100달러 인상 인출하면 월 최대 30만원 한도로 캐시백을 제공하고 전월 30만원 이상 이용 시 해외이용 관련 수수료의 1.25%를 적립하는 혜택을 제공한다.
하나카드 트래블로그./사진=하나카드
하나카드 '트래블로그' 신용·체크카드는 환율 우대 100% 무료 환전 혜택이 강점이다. 여기에 해외 결제 수수료 무료, 해외ATM 이용 시 수수료 무료 등의 혜택을 제공한다. 롯데카드의 '하나은행 밀리언달러'는 해외 결제 수수료없이 이용한 달러만큼만 결제된다. 여기에 해외 가맹점 이용금액의 0.2%를 실적·한도 조건 없이 돌려주는 점도 매력적이다.

강철구 배재대 일본학과 교수는 "일본 여행객들이 가장 불편해하는 부분이 여전히 현지 지폐 사용이 활발하다는 것인데 엔데믹(풍토병)으로 현지 관광객이 늘면서 결제 편의성 개선 요구가 커져 일본 정부 차원에서도 카드 인프라 확대 등에 대한 고민이 클 것"이라며 "이 같은 점을 보면 향후 카드 인프라 확대에 따른 결제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 교수는 이어 "일본은 선진국 중에서도 디지털 전환이 늦은 편에 속하지만 2021년 디지털청을 만드는 등 아날로그 사회에서 디지털 사회로의 전환을 대대적으로 밝힌 만큼 이젠 방향성에 대한 증명을 위해서라도 신용카드 등 디지털결제에 대한 움직임이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도쿄(일본)=강한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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