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백 '퀘벡' 3조각의 추억들

곽서희 기자 2023. 7. 10.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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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벡에서의 열흘 살이.
사는 듯 여행했고 여행하듯 살았다.
떠나려자 도시가 말한다.
컴백, 또 와.
그 부름이 애틋해 꺼내어 본 3조각의 추억들.

●퀘벡의 심장,
샤토 프롱트낙 호텔
Chateau Frontenac Hotel

지구상 모든 도시는 저마다의 심장을 가지고 있다. 역사와 문화의 혈관을 통해 뜨겁고 울컥이는 활력을 도심 전체에 흐르게 만드는 존재. 퀘벡의 심장은 샤토 프롱트낙 호텔이다. 맞다, 7년 전 시청자들을 가슴 뛰게 했던 드라마 <도깨비> 속 그 장소. 도깨비보단 젊지만, 올해로 130살이 된 호텔은 캐나다 국립 사적지로 지정됐을 만큼 유서 깊다. 르네상스풍 외관에는 한 세기 넘게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던 퀘벡의 정체성이 그대로 담겨 있다. 호텔 앞은 세인트로렌스강(Saint Lawrence River)이다. 짙고 푸른 네이비색 강물 위, 돛단배와 벨루가가 번갈아 유영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퀘벡의 일상이다.

호텔을 눈에 담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 있다. '도깨비 언덕'으로 불리는 바스티옹 드 라 렌 공원(Parc du Bastion-de-la-Reine)에 오르는 것. 그러나 반전은 언제나 정석의 반대편에 서 있다. 마리나 항구(Marina du Port de Quebec)는 호텔을 다른 각도로 볼 수 있는 숨은 스폿이다. 호박색 반달이 뜬 저녁 무렵에 가면 달빛보다 빛나는 호텔이 강물에 반사되는데, 아무나 붙잡고 어서 우리 사랑을 시작하자고, 다급하게 외치고 싶은 분위기다. 항구는 두근두근 박동하는 퀘벡의 심장 소리가 들릴 듯 고요하다. 지금 이 순간, 이곳에서 가장 요란한 건 마구 요동치는 여행자의 마음뿐이다.

●발걸음으로 읽는 역사
올드 퀘벡
Old Quebec

퀘벡은 크게 구도시와 신도시로 나뉜다. 여행자들에게 익숙한 명소들은 모두 '올드 퀘벡'이라 불리는 구도시에 있다. 지역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올드 퀘벡은 그가 가진 이름과 닮았다. 'Q' 발음이 주는, 딱 그만큼의 케케묵은 빈티지스러움. 냄새나고 곰팡이 슨 기분 나쁜 올드함이 아니다. 아주 오래된 도서관에서 먼지 풀풀 날리는 역사책을 뒤적이는 느낌이다. 실제로 퀘벡은 캐나다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자 북미 대륙 유일의 성곽도시다. 과거 프랑스인 다음으로 퀘벡을 점령한 영국인들이 미국의 침공을 막기 위해 쌓은 성벽은 지금까지 도시 곳곳에 남아 있다. 비석에 새겨진 묘비명처럼, 먼 곳에서 건네 온 따뜻한 악수처럼.

지어진 지 200년도 더 된 모린 센터 도서관.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

올드 퀘벡을 여행하는 법은 복잡할 게 없다. 급하지도 느리지도 않게, 딱 독서하는 속도로 걸으면 된다. 올드 퀘벡의 진입로인 생루이 게이트(Porte Saint-Louis)를 지나 17~18세기에 지어진 색색의 가옥들을 훑는다. 1800년대에 건립된 모린 센터(Morrin Center)의 도서관에서 색이 바랜 책장을 넘기다, 프티 샹플랭 거리(La rue du Petit Champlain)의 빈티지 상점에 들어섰다. 모두 책갈피를 끼워 둔 장소들이다. 발걸음으로 퀘벡을 읽는다. 한 장 한 장, 정독을 하니 좋다.

해가 유난히 잘 들던 오후, 올드 퀘벡의 골목
SNS 인증숏 명소로 유명해진 올드 퀘벡의 우산 골목(Umbrella Alley)

●웅장한 안락함, 안락한 웅장함
성 안느 드 보프레 성당 & 몽모랑시 폭포
Basilica of Sainte-Anne-de-Beaupré
La Chute-Montmorency

퀘벡 근교 여행지는 두 가지를 기억하면 된다. 폭포와 성당. 먼저 성당부터. 퀘벡의 동쪽, 프랑스인들이 개척한 옛 도로이자 '왕의 길(Chemin du Roi)'로 불리는 360번 도로를 타고 달리면 성 안느 드 보프레 성당에 닿는다. 북미지역 3대 가톨릭 성지 중 하나로, 연간 100만명 이상이 방문하는 명소다.

Basilica of Sainte-Anne-de-Beaupré

성당의 주인공은 성모마리아의 어머니, 성 안느(Sainte Anne). 병자와 장애인을 치유하며 기적을 행했던 그녀의 생애가 270장의 스테인드글라스에 기록돼 있다. 정말 그녀의 기운이 서려 있기라도 한 건지. 묘하게 위로받는 기분이다. '거대한 편안함'이 무엇인지는 성당 내부에 들어서면 저절로 알게 된다.

La Chute-Montmorency

성당이 웅장한 안락함이라면, 몽모랑시 폭포는 안락한 웅장함이다. 부등호는 웅장함에 더 쏠린다. 높이는 83m. 나이아가라 폭포보다 30m나 더 높다는데…, 뭐랄까, 하늘에서 집채만 한 거인이 물 양동이를 한껏 쏟아 내고 있는 듯한 풍경이다. 폭포를 가운데 두고 양옆에 전망대, 그 사이 다리가 하나 놓여 있다. 다리 위에 서면 폭포의 거친 숨소리를 더 가까이서 들을 수 있다. 겨울이 되면 폭포 전체가 꽁꽁 얼어 얼음 폭포로 변신한다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겨울의 냉기를 잊은 퀘벡의 여름은 폭포의 물줄기에 동력을 가한다. 이 여름, 이 도시를, 잊지 말라고 외치기라도 하듯.

글·사진 곽서희 기자 취재협조 캐나다관광청, 에어캐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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