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장기불황 딛고 부활 날갯짓… 역대급 엔저에 '바이 재팬' 돈 몰린다

도쿄(일본)이남의 2023. 7. 10. 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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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新금융패권 시대-1.금융패권의 영광, 일본 '반면교사'①] 반도체 부활 노리는 日, 미·중 갈등 속 새우등 韓

[편집자주]신(新) 금융패권 시대에 국내 금융회사는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신성장 동력을 모색하고 있다. 금융지주 수장들은 공격적인 글로벌 행보를 보인다.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일류신한'을 글로벌 전략 타이틀로 걸었고 윤종규 KB금융회장은 미래 성장동력으로 글로벌 사업을 꼽았다. 함영주 하나금융회장은 한국을 넘어 '아시아 1등' 금융회사 도약을 목표로 세웠고 임종룡 우리금융회장은 ADB(아시아개발은행) 연차총회에서 정상급 인사들을 만나 '중소기업 지원 플랫폼' 등을 직접 설명했다. 해외 진출 20년이 된 미래에셋운용은 박현주 회장의 글로벌 경영 방침에 따라 해외 사업을 확장하며 글로벌 운용사로 몸집을 키우고 있다. 금융지주회사 전환을 추진하는 교보생명은 해외 진출로 수익 다각화를 꾀한다는 방침이다. 2023년 국내 금융회사의 공을 들이는 나라는 일본이다. 기시다 총리와 윤석열 대통령의 만남으로 양국의 해빙무드가 가속되자 국내 기업의 일본 진출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1980년대 금융패권국으로 맹위를 떨쳤던 일본은 정부와 중앙은행의 전방위적 지원에 제2의 경제 부흥을 기대하는 모습이다. 열도에서 선진화된 K금융을 전파하는 금융권의 주역을 직접 만나봤다.

도쿄 신사이바 상업지구 거리에 직장인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사진=이남의 기자
◆기사 게재 순서
장기불황 딛고 부활 날갯짓… 역대급 엔저에 '바이 재팬' 돈 몰린다
②'와타나베 부인' 찾는 컨설팅 점포… K금융 뱅킹 앱, '자이테쿠' 새 바람
③"카드 웰컴" 현금의 나라 일본, 이젠 '캐시리스' 국가로
④꽂지 않고 '쓰윽'… 컨택리스 카드가 뭔가요

도쿄(일본)=이남의 기자 일본이 장기불황을 딛고 부활의 날갯짓을 하고 있다. 주가와 부동산, 물가 등 경제지표는 마이너스 금리 속에 엔저를 발판으로 동반 상승했고 1991년 버블 붕괴 이후 '잃어버린 30년'을 극복할 것이란 장밋빛 전망마저 나온다.

지난 1분기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0.7%, 연간으로 환산하면 2.7%를 기록했다.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헬리콥터 돈 풀기' 정책이 효과를 내면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2%로 오른 덕이다. 소비가 늘면서 기업에도 온기가 퍼졌다. 일본 정부는 최저임금 '1000엔 이상'을 목표로 논의를 시작했고 올해 대기업의 임금 인상률은 3.91%를 기록했다. 3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도시로 불리던 일본 도쿄의 부동산시장도 살아나고 있다. 일본 부동산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5월 도쿄 신주쿠구의 아파트는 전년 동기 대비 47.9% 오른 1억1475엔(약 9억500만원)에 거래됐다. 신주쿠구에 신규 공급된 886가구 중 1억엔이 넘는 억대 맨션(고가 아파트)은 328가구로 37%를 차지한다.
일본의 주식시장은 '아시아 금융패권국'의 위상을 되찾기 위한 날갯짓을 하고 있다. 지난 3일 도쿄 주식시장에서 닛케이225지수(닛케이 평균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564.29포인트(1.70%) 오른 3만3753.33으로 연중 최고치를 경신하며 장을 마감했다.
닛케이지수가 3만3000을 넘은 것은 1989년 12월29일 3만8915를 기록한 후 33년 만이다. 같은 날 도쿄 증시1부 상장사를 반영해 산출하는 주가지수(TOPIX)는 2320.81로 1990년 7월 이후 최고가를 갈아치웠다.


'897원' 역대급 엔저, 안심할 수 없는 환율


일본의 경제 훈풍을 주시해야 하는 이유는 나 홀로 저금리 정책을 고수하며 자국통화의 약세를 막는 '역(逆)환율 전쟁'을 벌이고 있어서다. 일본은행은 2016년 이후 기준금리를 연 -0.1%로 유지하고 있다. 10년 만기 일본 국채금리는 연 0.5% 이내로 묶는 수익률곡선통제(YCC) 정책을 펼친다.
역대급 엔저에 일본 여행을 떠나는 여행객이 늘고 있다. 사진은 일본 나리타공항./사진=이남의 기자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서울 외환시장에서 엔화 대비 원화 환율은 지난 6월19일 한때 100엔당 897.49원까지 떨어졌다. 원/엔 환율이 900원 아래로 추락한 건 2015년 6월25일 이후 8년 만이다. 올 초 달러당 127엔대였던 엔/달러 환율은 145엔(6월30일)까지 올라섰다. 엔화 가치가 빠른 속도로 하락하자 일본 중앙은행(BOJ)의 외환시장 개입 가능성이 제기된다.

BOJ는 지난해 세 차례에 걸쳐 약 8조3000억엔(76조원) 달하는 엔화를 매수했다. 지난 1999년부터 2011년까지 BOJ는 약 97조엔(약 871조원)의 달러를 매수한 바 있어 외환시장에 개입할 수 있는 유동성이 89조엔(800조원)에 달한다.

반면 한국의 환율정책은 딜레마다. 일본은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하락)을 벗어나기 위해 엔저를 유지하고 있으나 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에 빠져있는 한국은 원화 약세가 물가를 자극할 위험이 있다.

지난 4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297원에 거래됐다. 영국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BOE)이 지난달 22일(현지 시각) 통화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5.0%로 0.5%포인트, 스위스와 노르웨이 중앙은행도 금리를 각각 0.25%포인트, 0.5%포인트 올리는 등 유럽의 경기침체 우려로 달러는 강세를 돌아섰고 원화는 절하됐다.

한국은행이 예상한 연말 물가상승률은 3%대다. 올들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월 5.2%를 기록한 이후 ▲2월 4.8% ▲3월 4.2% ▲4월 3.7% ▲5월 3.3% ▲6월 2.7% 등으로 하향 추세를 이어가고 있으나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의 상승세가 걸림돌이다. 김웅 한은 부총재보는 "올해 근원물가 상승률은 평균 3.3% 수준"이라며 "근원물가는 완만한 둔화 흐름을 보이겠으나 원유 등 가격 상승세가 이어져 전망경로를 상회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지속된 엔저에 한국은 기업의 수출 경쟁력 약화를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한국과 일본의 제조업 수출 경합도는 69.2다. 한·미(68.5) 한·독(60.3) 한·중(56.0) 등 주요국의 수출 경합도를 웃도는 수치다. 2005년부터 지난해 3분기 통계를 보면 엔화 가치가 1% 포인트 하락할 경우 한국의 수출가격은 0.41%포인트, 물량은 0.20%포인트 각각 하락해 수출금액 증가율이 0.61%포인트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엔저 특수에 일본으로 떠나는 여행객들이 급증해 서비스 수지 적자가 악화될 우려도 제기된다. 올 1분기 여행 수지 적자는 32억3500만달러로 2019년 3분기 이후 3년 반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여행 수지 적자 폭이 커질 경우 국가 경제의 기초체력을 가늠하는 경상수지에 악재가 될 것"이라며 "과거에 비해 일본과의 수출 경합도가 많이 낮아졌지만 일본의 저금리 정책에 따른 엔화약세에 수출기업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소부장 키운 일본, 미·중 확전의 그늘 한국


일본의 경제 회복을 이끄는 반도체 육성방안도 한국 정부가 반면교사 삼아야 할 부분이다. 일본은 1980년대 전 세계 시장을 재패했던 반도체 기업이 아닌 3대 핵심 기술로 불리는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의 실적 개선이 두드러진다.

일본 장비업체인 어드반테스트는 2022년 매출액이 5602억엔(5조310억원)으로 전년대비 34.4% 늘었고 영업이익은 1677억엔(1조5061억원), 당기순이익은 1304억엔(약 1조1711억원)으로 각각 46.2%, 49.4% 증가했다. 영업이익률은 30%를 기록했다. 어드반테스트의 반도체 테스트 장비시장 점유율은 2020년 43%에서 2022년 57%로 14%포인트 올랐다. 주가는 올해 8480엔(7만6162원)에서 1만7250엔(15만4929원)으로 103%가량 급등했다.

일본 도쿄 마루노우치 거리에 고층빌딩/사진=이남의 기자
일본 정부는 반도체 패권을 둘러싼 미·중 갈등 속에 소부장 기업을 살릴 수 있는 지원 방안을 들고 나왔다. 1974년 미국이 '수퍼 301조'를 동원, 일본 반도체 기업에 보복 관세를 부과하는 '미·일 반도체 협정'을 맺은 지 50년 만이다.

일본 경제산업상은 지난달 6일 '반도체 전략 개정안'을 발표하며 2030년까지 일본 반도체 매출액을 15조엔(134조4721억원)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2021년 반도체 전략을 밝혔을 때 설정했던 13조엔(116조7582억원)보다 2조엔(17조9628억원) 늘어난 규모다.

개정안엔 대만 TSMC가 구마모토에 공장을 신설, 일본 메모리 기업 기옥시아가 미에현에 신규 공장을 지으면서 경제 파급 효과가 9조2000억엔(82조6289억원)에 달한다는 전망도 담겼다. '일본 기업만'이란 배타성을 버리고 미국 마이크론, 대만 TSMC, 한국 삼성전자에 보조금을 지급해 일본의 반도체 시장을 육성한다는 복안이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일본 반도체 시장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최근 TSMC와 마이크론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은 총 2조엔(17조 9628억원)에 가까운 해외투자에 나섰다. SK하이닉스는 신한금융그룹, LIG넥스원과 함께 1000억원을 출자하고 일본 반도체기업에 투자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삼성전자는 지난 3월 일본 요코하마에 연구·개발(R&D) 거점인 '디바이스솔루션리서치저팬(DSJR)'을 설립, 일본의 반도체 연구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사이에 낀 한국의 반도체가 불확실성의 늪을 뛰어넘을 컨틴전시 플랜이 절실하다고 조언한다. 한국은 지난해 대중국 경상수지가 77억8000만달러 적자로 2001년(7억6000만달러) 이후 21년 만에 첫 대중 적자 기록하며 수출 지형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의 대미국 경상수지는 677억9000만달러 흑자를 기록했으나 중국과의 경제적 거래에서 적자 폭이 커져 경상수지는 298억3000만달러, 전년(852억3000만달러) 대비 554억달러(65%) 축소됐다.

이재민 서울대 교수는 "미·중 갈등으로 발생한 관세 조치나 기술경쟁 등 보호무역주의가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반도체 지원법 등 산업정책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반도체업계 체질 개선과 경쟁력 강화, 원료 조달 다변화 등을 위해 범정부 차원의 광범한 대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치권은 원자재 공급망 강화를 목표로 '경제안보를 위한 공급망 안정화 지원 기본법안'(공급망 기본법) 제정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빚 공화국 일본, 한국도 빚 수렁


경제 도약에 나선 일본의 국가 문제는 장기 침체 속에 급증한 채무다. 일본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버블 붕괴 직전인 1989년 14.4%에서 지난해 263.9%로 급증했다. 지난해 말 일본은행이 발행한 국채는 1026조엔(9223조원)에 달한다. 정부 부채를 대다수 중앙은행이 짊어져 금리가 오를 경우 금융시장의 자금 경색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도 늘어난 국가 채무가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는다. 한국은 2019년부터 2022년까지 국가 부채비율이 42.1%에서 53.3%로 12.2%포인트 상승했다. 올해 정부는 총 167조8000억원 국채 발행을 계획하고 있다.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 원장은 "일본은 국가 채무비율이 60%에서 100%로 가는 데 10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며 "국가의 경기 부양을 위해 국채를 발행하고 있으나 노동·교육·연금 3대 개혁을 완수해 경제 성장을 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쿄(일본)이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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