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정면돌파 안 먹혔다…가격제한폭 넓혔더니 단타 천국된 IPO 시장
상한가 굳히기 없애고 주가 급등락 막기 위해서였지만…변동 오히려 커져
지난달 금융당국이 기업공개(IPO) 시장의 건전성을 위해 상장 첫날 최고 시초가를 기존의 2배로 올렸지만, 이 조치가 오히려 단타족에게 판을 깔아준 꼴이 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가격제한폭이 넓어지면서 타이밍만 잘 잡으면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투자자들이 몰리고, 이로 인해 변동성이 더 커졌다. 전문가들은 공모주 투자가 ‘묻지마 투자’가 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상장 당일 최고 가격을 기존 공모가의 260%에서 400%로 변경한 지난달 26일부터 이달 7일까지 상장한 종목은 6개(하나29호스팩, 시큐센, 알멕, 오픈놀, 이노시뮬레이션, 교보14호스팩. 상장지수펀드·상장지수증권 제외)로, 이들의 첫날 종가는 공모가보다 평균 123.47% 높았다. 이는 금융위의 제도 시행 전인 10거래일간 상장한 7개 종목의 첫날 평균 상승률(4.99%)보다 24.7배 높은 수치다.
금융위의 개선방안은 지난해 1월 LG에너지솔루션 청약에 따른 것이었다. LG엔솔의 청약 시기에 순자산 1억원뿐인 기관이 물량을 최대한 많이 배정받기 위해 9조5625억원어치의 주식을 신청한 것이 뒤늦게 드러났다. 금융위는 당시의 IPO 시장이 비상장기업의 자본시장 진입이라는 본연의 목적에서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이때 금융위가 함께 개선한 제도 중 하나가 상장 당일 가격 변동 폭 확대다. 금융위는 공모주 주가 급등락을 막겠다는 이유로 가격 변동 폭을 기존 63~260%에서 60~400%로 변경했다. 상한가 굳히기를 막겠다는 이유가 컸다. 상한가 굳히기란 특정 세력이 공모가의 260%에 매수 호가를 집중적으로 내 주가를 끌어올리는 것이다. 자금력이 있는 특정 투자자가 공모가의 260% 가격에 물량을 싹쓸이하고, 이 물량을 이튿날 또는 그 이후 대량 매도하는 것이 시장 질서를 어지럽힌다고 본 셈이다. 제도 개편 후에는 이들이 같은 방식을 쓰려면 400%에 호가를 내야 한다. 이들의 자금 부담을 키워 상한가 굳히기를 없애겠다는 게 금융위의 대책이었다.
이 대책은 오히려 부작용을 낳는 모양새다. 지난달 29일 상장한 시큐센은 공모가보다 205% 오른 9150원에 장을 마쳤다. 장 중에는 293% 오르며 국내 증시 역사상 최대 상승 폭을 기록하기도 했다. 금융위가 가격의 상단을 열자마자 300% 가까이 뛴 종목이 나온 것이다.
거래량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시큐센의 코스닥 상장 첫날 거래량은 6730만주로, 상장 주식 수와 비교한 회전율은 584.5%다. 주식을 사고팔아 손바뀜이 5.8번 있었다는 뜻이다. 다음날 시큐센의 주가는 곧바로 15.63% 빠졌다. 주가 급등락을 막겠다는 정부의 대책은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이론대로라면 기업의 주가가 상장 첫날 크게 오르내릴 수 없다. 상장 전 기관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수요 예측을 진행하면서 공모가가 확정되는데, 여기서 기업에 대한 적정 가치가 나오기 때문이다. 이보다 높은 가격에 시초가가 형성됐다면 수요예측에서 과소평가가 있었다는 뜻이며, 그 반대라면 기업이 과대평가 됐다는 의미가 있다.
이와 관련해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IPO가 테마주화되고 있다”며 “단순히 IPO를 했다는 것만으로 해당 종목에 대한 과도한 기대감이 형성되고 있다”고 했다. 현재처럼 상장만 했다 하면 줄줄이 수십, 많게는 수백 퍼센트 주가가 오르는 상황은 정상적이지 않다는 뜻에서다.
아무것도 담지 않은 스팩이 200% 넘게 오른 것은 IPO 시장이 과열됐다는 걸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다. 6일 상장한 교보14호스팩의 주가는 240.5% 상승했으나 전거래일인 7일에는 곧바로 17.91% 하락했다. 스팩은 비상장기업과 인수합병(M&A)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서류상 회사로, 합병 대상을 발표하기 전엔 알맹이가 없어 주가 상승 요인이 전무하다. 그럼에도 교보14호스팩은 상장하자마자 공모가의 2배 이상 뛰었다.
이같은 양상은 대부분 개인 투자자가 주도하고 있다. 금융위의 제도 변경 이후 상장한 6개 종목 모두 개인 투자자는 매수 우위였다. 종목별 개인 투자자의 순매수 규모는 하나29호스팩 29억원, 시큐센 181억원, 알멕 1338억원, 오픈놀 374억원, 이노시뮬레이션 456억원, 교보14호스팩 94억원이다. 상장 종목을 팔기보단 샀다는 뜻이다. 반면 기관과 외국인은 모두 매도 우위였다. 기관과 외국인이 던진 물량을 개인이 받아내면서 주가를 끌어올린 것이다.
IPO 시장의 열기는 당분간 식지 않을 전망이다. 최근 수요 예측을 마쳐 상장을 앞둔 와이랩과 센서뷰, 필에너지의 공모가는 희망 범위 상단을 초과하는 금액에서 정해졌다. 기관 투자자들의 수요가 몰리면서 상장 예정 회사가 원했던 주가보다 더 높은 수준에서 공모가가 결정됐다는 뜻이다.
한재혁 하나증권 연구원은 “현재까지의 움직임으론 단기간에 균형 가격 형성을 형성한다는 금융당국의 애초 목적이 잘 이뤄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라며 “상장 첫날의 변동성을 제외하고도 지속적으로 높은 변동성을 보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향후 신규 스팩들에서도 이런 투기적인 움직임이 지속 관찰될 경우 보완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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