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 고발 못 하는 공정위, 결단이 필요하다

정황 뚜렷한데도…"증거 없이 고발 못 해"
수사의뢰 주저하면 사건 묻혀…지침 바꿔야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전원회의 심판정. 2017.6.28/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세종=뉴스1) 이철 기자 = "이번 사건에서 총수에 대한 검찰 고발 조치는 왜 없었습니까?"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업 제재 결과 브리핑을 하면 부쩍 많이 나오는 기자들의 질문이다.

기자들이 이러한 질문을 하는 이유는 한 가지다. 해당 사안이 정황상 총수의 개입 없이 이뤄질 수가 없는데도 공정위가 검찰 고발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지난 6일 기업집단 'OCI' 소속 군장에너지(현 SGC에너지), 이테크건설(현 SGC이테크건설), 삼광글라스(현 SGC솔루션)에 과징금 총 110억2000만원을 부과했다. 하지만 검찰 고발은 없었다.

이번 사건은 '일감 몰아주기'였다. 이우현 회장의 숙부인 이복현 회장이 보유한 삼광글라스의 재무구조가 악화하자, 이 회사를 살리기 위해 이복현 회장의 다른 계열사가 전략을 짜고, 또다른 계열사가 일거리를 몰아줬다.

시간을 더 앞으로 돌려보면, 공정위는 지난해 12월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의 개인회사인 케이큐브홀딩스가 금융·보험사로 분류됨에도 불구하고 카카오 계열사들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했다며 검찰에 고발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김 의장 개인을 검찰에 고발하지는 않았다.

기자들은 이들 사건의 각 브리핑 당시 총수에 대한 고발을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물었다. 공정위의 대답은 일관됐다. 모두 "개입 증거를 찾지 못했다"였다.

공정위도 나름의 입장은 있다. 공정위는 '공정거래법 등의 위반행위의 고발에 관한 지침'에 따라 사건을 처리했다고 해명한다. 지침을 보면 공정위가 고발할 수 있는 요건이 나열돼 있다. 증거 없이 총수를 고발하는 것은 현재 지침상 불가능하다.

공정위 관계자는 "정황 증거만으로 고발할 수는 없고, 지침에 들어있는 요건을 충족해야 검찰에 고발이 가능하다"며 "자칫 행정력 남용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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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공정위의 해명을 상식적으로 납득하기엔 어려움이 있다.

다시 OCI 사건을 보자. 다수의 계열사가 동원돼 한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것을 두고, 한 계열사의 최고경영자(CEO)나 임원이 이를 독단으로 결정했다고 생각하는 기업인은 대한민국에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냉정히 보면 그룹을 보유한 '오너'의 허락, 지시가 없으면 불가능한 결정이다.

케이큐브 사건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 회사가 정말 금융사냐, 아니냐를 두고 논쟁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공정위의 기준이다.

케이큐브는 김 의장이 100% 지분을 가진, 작은 규모의 개인회사다. CEO인 사장이 존재하지만, 결국 김 의장이 결단하지 않으면 카카오 계열사에 대한 의결권 행사는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런데도 공정위는 김 의장은 빼고 회사만 검찰에 고발했다. 회사를 고발할 것이었으면, 김 의장까지 해야 했다.

검찰이 직접 움직인 사례도 있다. 공정위는 지난해 11월 계열사를 부당지원한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한국타이어)를 검찰에 고발했지만, 조 회장은 직접 지시 증거를 찾지 못해 고발하지 못했다. 이후 검찰은 법인 고발건을 조사하던 중 조 회장의 혐의를 포착하고 공정위에 고발을 요청했다. 공정위 고발 후 조 회장은 구속기소됐다.

공정위는 엄밀히 볼 때 행정력을 행사하는 정부부처다. 근본적으로 공권력을 가진 검찰과 비교하면 조사 범위의 한계가 뚜렷하다.

특히 다수의 계열사가 동원되는 부당지원 사건 등은 그룹 최고위층에서 은밀히 지시하게 마련이다. 사실 공정위 조사만으로 증거를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고 공정위 조사관들이 그룹 회장실 문을 박차고 들어가 총수에게 휴대전화를 내놓으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공정위가 지침을 바꿔 적극적으로 고발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앞으로 부당지원과 같은 사례는 공정위의 존재가 무색하게 근절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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