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예산 삭감되고 거북이걸음 하는 청소년 노동교육

기자 2023. 7. 10. 06: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올해 서울시교육청의 노동인권교육 예산이 ‘0원’이 되어 버렸다. 서울시의회는 지난해 본예산 심사에서 교육청의 이 예산 3억2600만원을 전액 삭감한 데 이어 지난 5일 최종 확정된 2차 추가경정예산안에서도 1억7276만원을 모두 깎았다. 학교를 졸업하면 열에 아홉은 노동자가 되고, 타인의 노동을 존중하는 태도는 민주주의와 건강한 시민사회의 바탕임에도 정치적 대립을 이유로 노동인권교육을 가로막은 것이다. 서울시의회의 퇴행적 결정이 개탄스럽다.

표면적으로, 노동교육 예산 삭감은 진보 성향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과 국민의힘 시의원이 다수 의석을 점한 서울시의회 간의 갈등이다. 시의회는 지난해 조 교육감이 추진한 생태전환교육(농촌 유학) 예산을 없애고 올해는 조례도 폐지하며 부딪치고 있다. 본질적으로 서울시의회 조치는 윤석열 정부가 교육에서 노동을 지우는 과정과 한 묶음이다. 정부는 지난해 6월 개정 교육과정 총론에서 ‘노동’을 삭제하면서 2024학년도부터 노동자 권리와 노동권 역사 등을 가르치려던 전 정부 계획을 뒤집었다. 노동인권교육이 ‘반기업 정서’를 부추긴다는 왜곡된 인식으로 학생들이 학교에서 노동인권과 법규를 배울 기회를 박탈한 것이다. 2021년 공교육 조사에서 노동교육을 받은 경험은 31.5%에 불과한데, 더욱 뒷걸음치게 됐다.

학생·청년들의 노동인권은 매우 취약하다.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는 서울 거주 중·고생 가운데 44.6%는 근로계약서 미작성·임금체불 등 노동인권 침해를 겪은 적 있는 걸로 조사됐다. 특성화고 학생들은 현장실습에서 산업재해에 내몰리고 있지만, 2021년 여수 요트 업체에서 홍정운 학생이 사망한 뒤에도 환경은 여전히 열악하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 4년째를 맞았으나 3명 중 1명은 직장 내 괴롭힘을 겪고 있고, 그 피해는 청년과 비정규직에서 더 빈번하다. 노동법규와 피해구제 절차를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는 노동약자들의 고통과 사각지대가 크다.

독일 초등학교에서는 노사교섭 체험학습을 하고, 프랑스에서는 산재 대응을 가르친다. 노동이 시민의 삶과 공동체의 미래를 가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은 교육부가 내실 있는 계획을 내놓지도 않고, 보수정치권은 교과 커리큘럼에 있는 노동교육조차 훼방 놓고 있다. 교육마저 정쟁거리로 삼는다면 가장 큰 피해자는 미래세대가 된다. 학교 노동교육은 강화되고 확대되어야 한다.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