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친 폰 되팔아 수천만원 '꿀꺽'…장물업자 '알렉스' 검거 막전막후[新경찰청사람들]
CCTV없는 지하철 주의해야…"취객, 언제든 절도범 타깃 될수 있어"
(서울=뉴스1) 송상현 김예원 박정호 기자 = '알렉스 010-0000-1234'
휴대전화 절도범 A씨의 소지품 중 쪽지에 적혀 있던 연락처였다. 익숙한 이름이었다. 몇달 전 붙잡은 절도범도 같은 이름의 장물업자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꽤 거물 장물업자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전화를 걸었지만 장물업자가 아닌 전혀 다른 사람이 쓰고 있었다. 실제 번호가 아닌 암호가 숨어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기존에 확보한 절도·장물업자들의 통화기록 데이터베이스와 대조해 보니 앞 네자리가 같은 번호가 나왔다. 그제야 알았다. 뒷자리 숫자를 하나씩 올린 '010-0000-2345'가 실제 알렉스의 번호란 사실을.
◇공중전화 인근 잠복해 검거…"장물업자 아냐" 시치미 뗐지만 현금·휴대폰 '우수수'
지난 5월 '알렉스'라고 불린 휴대전화 장물업자를 붙잡은 서울경찰청 지하철경찰대 이동준 경사(38)는 사건 해결의 시작을 이렇게 기억했다. 파키스탄 출신으로 우리나라 국적을 획득한 알렉스는 지난해 10월부터 약 8개월간 도난·분실된 휴대전화를 20만~100만원에 사들여 서울시내 재래시장에서 외국인 장물업자에게 되팔다가 붙잡혔다.
이 경사는 알렉스의 실제 번호를 파악하며 쾌재를 불렀지만 난관은 그때부터였다. 알렉스는 이미 해당 번호를 해지했고, 심지어 대포폰이어서 추적이 불가능했다. 장물업자가 같은 번호를 2개월 이상 유지하지 않는 게 이 업계 관행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 경사는 "잡긴 힘들겠다고 좌절한 순간도 있었다"며 "다행히 A씨의 통화내역을 보다보니 알렉스가 건 번호로 추정되는 공중전화가 잡혔다"고 설명했다.
해당 공중전화 위치는 서울 종로구 동묘앞역 재래시장 인근이었다. 통화내역에 나온 시간대 인근 CC(폐쇄회로)TV를 확인해 보니 수상한 외국인 1명이 목격됐다. 처음으로 알렉스의 실체에 다가선 순간이었다.
주변 CCTV를 추가로 살피며 알렉스의 동선을 추적했다. 알렉스가 근처 한 아파트를 자주 오간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바로 잠복을 시작했다. 주거지 인근이라고 판단한 만큼 금세 잡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지만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5일이 지났을까. 드디어 알렉스가 시야에 들어왔다. 확신을 가지고 달려가 긴급체포했지만, 당황스러운 상황이 벌어졌다. 알렉스는 자신이 장물업자가 아니니 집을 수색해도 된다고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 이 경사는 "알렉스가 자신있게 집으로 가서 문을 열었다"고 회상했다.
수색을 시작했지만 실제로 집은 말끔했다. 초조할 수밖에 없었다. 몇분이 흘렀을까. 이 경사와 동료들은 천장 끝 틈 사이를 뒤지다가 봉지에 쌓인 현금다발을 발견했다.
그다음부터는 속전속결이었다. 냉장고 안, 싱크대 밑, 밥솥 안 등에서 현금다발과 휴대전화가 쏟아졌다. 이 경사는 "증거물을 하나둘씩 찾기 시작하니 알렉스의 입술이 바짝 마르고 당황스러워하는 게 느껴졌다"며 웃었다.
이 경사는 알렉스의 집에서 휴대전화 24대와 현금 6805만원을 압수했다. 알렉스는 동종 범죄로 이미 두 차례 전과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현금으로 수천만원씩 가지고 다니며 분실·도난 휴대전화를 수백대씩 매입할 수 있는 업계 거물급 인사였다.
이 경사는 장물업자의 특성상 자택에서 휴대전화가 나온 게 의외라고 설명했다. 이 경사는 "원래 장물업자들은 사들인 휴대전화를 오래 보관하지 않고 하루 이틀에 다시 팔아넘긴다"며 "절도·장물업자들 사이에서 A씨가 붙잡힌 것이 소문나면서 판로가 막혔던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4개권역 분할 지하철경찰대…"CCTV 없는 1·5·6호선 위험해요"
이동준 경사가 근무하는 지하철경찰대는 서울을 총 4개 권역으로 나눠 담당하고 있다. 이 경사는 종로, 동대문, 청량리, 마포 등 서울에서 가장 유동 인구가 많은 서북쪽을 담당하고 있다.
스마트폰이 현대인의 필수품이 된 지 오래인 만큼 관련 범죄는 지하철경찰대가 가장 많이 마주하게 된다. 이 경사는 "요즘 현금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다보니 지갑 대신 고가의 휴대전화가 절도범들이 타깃이 된다"고 말했다.
장물업자 아래 있는 휴대전화 절도범들은 주로 심야시간대에 취객들의 휴대전화를 노린다. 특히 타깃이 되는 것은 지하철 내부 CCTV가 거의 설치되지 않은 1·5·6호선이라고 했다. 이 경사는 "6호선은 이태원, 합정, 상수 등 번화가를 지나고 순환선이다 보니 절도범들에겐 좋은 활동무대"라고 했다.
절도범은 취객들이 인사불성 상태에서 떨어뜨리거나 방치한 휴대전화를 훔친다. 취객을 깨워주는 척하면서 휴대전화를 가져가는 수법이 가장 흔하다. 하지만 정작 취객들은 자신의 휴대전화를 훔쳐갔다고 상상 못하고 잃어버렸겠거니 생각하는 게 대부분이라고 했다. 이 경사는 "자신의 휴대전화가 절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경사의 일과 중 또다른 주요 업무는 몰카범을 잡는 일이다. 그렇다 보니 출퇴근 시간대엔 늘 잠복근무가 이어진다. 이 경사는 "몰카범만의 부자연스러운 자세가 있다"면서도 "작년엔 샌들 사이에 카메라를 넣어서 촬영한 범죄도 있을 만큼 신종 수법도 많이 등장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철도공무원 아버지 덕에 지하철 익숙…'500만원 분실' 어르신 도와주며 '보람'"
이 경사는 2014년 순경 공채로 입직해 9년째 경찰에 몸담고 있다. 공무원 집안에서 자란 만큼 자신이 당연히 공무원이 될 거로 생각했다. 운동을 좋아하고 활동적인 성격인 데다 대학에서 체육학을 전공한 이 경사는 경찰공무원을 천직처럼 여겼다.
지구대에서 근무하던 중 수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하철경찰대가 눈에 들어왔다. 이 경사는 "아버지께서 철도공무원이었나 보니 어린 시절부터 지하철은 내가 잘 아는 공간이었다"며 "지하철은 생활 범죄가 가장 자주 일어나는 곳이어서 보람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인터뷰 내내 미소를 머금고 있는 속칭 '웃상'인 이 경사에게 언제든 도움을 요청하고 싶은 친구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 경사는 가장 보람 있던 순간으로 한 어르신이 지하철에 놓고 내린 500만원을 찾아줬을 때라고 회상했다. 어르신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사실상 전 재산인 전세금을 분실했다.
눈물을 터뜨리며 간곡히 찾아달라고 호소하는 모습을 보며 무조건 빨리 찾아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밤낮으로 CCTV를 추적한 끝에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 해당 쇼핑백을 가져간 시민을 찾을 수 있었다. 이 경사는 "매일매일 힘들어하시던 분이 찾았다고 하니 너무 좋아하셨다"며 어르신의 표정을 회상하며 행복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songs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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