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는 정부의 정책 실패 결과물"[인터뷰]

안다솜 2023. 7. 10. 05: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종혁 한국공인중개사협회장, "정부 과도하게 개입해 전세자금 대출 늘린 탓"
"전세는 시장에서 자연스레 생긴 제도…정부 전세 지원에 컨설팅업체가 악용"
"협회 '법정단체화' 필요…웃돈·시세 올리는 중개사 막을 수 있는 자정작용 가"
"임대인 세금체납 여부 확인 권한 줘봐야 실효성 없어…온라인 확인시스템 필요"

[아이뉴스24 안다솜 기자] "전세는 사실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생긴 거주 형태인데 정부가 개입을 늘려가면서 문제가 시작됐습니다. 매매가가 1억원이라면 전세금으로 7~8천만원이 일반적인 수준인데, 전세자금을 1억원까지 누구에게나 대출을 해주는 상황이 되면서 돈이 없어도 세입자만 구하면 집을 살 수 있는 상황이 된 겁니다. 실질적으로 정부에서 전세에 (과도하게) 개입하면서 대단위 전세사기가 발생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고 봅니다. 개입하지 말아야 할 곳에 개입한 거죠."

이종혁 한국공인중개사협회장은 전세 피해 원인을 묻는 질문에 "전세자금 대출을 해주는 그 틈을 컨설팅 업체, 건축업주, 공인중개사 등이 악용해 이번처럼 피해자를 발생시킨 것"이라며 "시장에서 알아서 흘러가도록 뒀다면 지금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지난해 1월부터 전국 공인중개사들의 이익과 부동산업계 발전을 위해 노력해 왔다. 최근 대규모 전세사기와 역전세·깡통전세 문제가 불거지면서 그는 협회 법정단체화를 통한 공인중개사 관리·감독 강화와 전미부동산중개인협회(NAR)과 업무협약을 맺어 윤리강령 도입을 꾀하는 등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이종혁 한국공인중개사협회장이 지난 4일 서울 관악구에 있는 한국공인중개사협회에서 아이뉴스24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곽영래 기자]

◆전세피해 문제는 10년전부터 예견됐다…정부 대책 실효성 '부족'

이 회장은 현재의 전세피해 문제는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 아니며 2010년쯤부터 꾸준히 발생해 왔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이어 수많은 전문가들이 서울과 경기, 인천지역 등의 깡통전세 위험을 경고하고 꾸준히 정부 대책을 촉구해 왔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런데도 그동안 정부가 미온적으로 대처한 것이 지금의 대규모 전세 피해 상황을 불러일으켰다고 밝혔다. 오히려 전세자금 지원을 늘려가며 과도하게 개입할 여지를 줬고, 이로인해 대규모 사기나 피해가 발생하게 됐다고 소리높였다. 이 회장은 "부동산 경기가 불황일수록 깡통전세 사고는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그동안 시장의 위험 예고와 대책 촉구가 지속됐는데 우리는 또다시 10년, 20년 전과 똑같은 위험 앞에 놓여 있다"며 "이는 안정적인 시장관리와 건전성을 지켜낼 수 있는 제도와 시스템의 부재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정부에서 수차례 관련 대책을 발표하고 있지만 대부분 정부 주도적 대책 위주일 뿐 시장 자정을 통한 개선 대책은 전무하다고 꼬집었다. 정부의 역할은 부동산 시장 참여자들이 자정 노력을 통해 시장 안정성을 이끌어 낼 수 있는 환경 조성이지 직접적으로 개입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정부는 시장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고 나서야 문제를 파악하고 시장에 있는 사람들이 어떤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점을 예견할 수 있다"며 "전세사기 건도 공인중개사나 지회는 이미 알고 있었던 사안"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3억원 수준의 빌라가 3억5천만원으로 평가돼서 전세 3억으로 입주해 들어가는 게 문제라는 점을 일선 공인중개사 등 시장에선 다 알고 있었는데 정부만 몰랐다"며 "시장 속에 있는 사람들한테 예방할 권한을 줘야 한다"고 부연했다.

이종혁 한국공인중개사협회장이 지난 4일 서울 관악구에 있는 한국공인중개사협회에서 아이뉴스24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곽영래 기자]

정부의 전세사기 대책에 대해선 사후 대책 마련에만 집중됐을 뿐 그 조차도 실효성이 없는 게 많다고 지적했다. 부동산 정책은 예측할 수 있는 일관성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선 시시각각 변하는 시장 상황, 소비자 심리 흐름을 읽고 움직이는 유연성과 예측을 통한 사전 대처가 선행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종혁 회장은 "화곡동 빌라왕 사건 이후, 정부가 발표한 임대인의 세금체납 여부 확인권한을 임차인에게 부여하는 게 실효성이 없다"며 "계약서를 들고 가까운 세무서를 찾아가야 한다고 한다. 근데 계약서를 갖고 가야 한다면 계약금 주고 계약서 작성을 한 후에나 가능하다는 건데 이게 예방책인지 의문이다. 계약서가 없으면 예정 임대인의 확인동의서를 가지고 가면 된다고 하는데 어느 누가 계약도 안 한 임차인에게 동의서를 써주려고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계약 체결 전 임차인이 인터넷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어야 한다"며 "정부는 무엇보다 예방이 중요하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공인중개사는 임대인의 세금체납 여부, 선순위 임대차 내역, 보증금과 월세 규모 등을 확인하고 조사할 권한이 없다는 점도 지적했다. 전세사기를 예방하고 공인중개사의 역할에 책임을 물으려면 이런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 회장은 "공인중개사들에게 조사 권한이 주어지면 보증금과 월세 등 정보를 바탕으로 수익률에 기반한 실질 거래가격 추정이 가능해지고 이를 통해 부동산 가격의 거품 여부를 판단에 주요한 기초정보가 될 수 있다"며 "공인중개사가 제공하는 이 정보를 바탕으로 임대인과 임차인 간 정보 불균형을 해소하고 임차인은 객관적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400명 중개사 가담한 전세사기…법정단체화와 미국 윤리강령 도입 필요

최근 전세사기에 공인중개사 400명이 가담했다는 국토부와 검찰의 수사결과와 관련해선 같은 업종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국민에게 죄송하다고 전했다.

이 회장은 "전국 개업공인중개사 11만7천명 중 400명이 가담한 건데 전체의 1%도 안 되는 사람들이 99%를 같이 비난받게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그 중 협회 회원들도 개입돼 국민들에게 죄송하다. 확실한 건 그 사람들이 중개시장에 들어오지 않아야 하는 게 맞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향후 해당 공인중개사들의 협회 가입 등을 받아주지 않거나 전세피해 방지 등을 위해 협회의 '법정단체화'가 필요한 것"이라며 "법정단체가 아니면 그들을 시장에 발을 못 내딛게 할 권한이 없다. 변호사 협회 등은 자체 징계 등을 내리고 자격증을 취소하도록 건의도 하는데 현재 협회엔 그런 권한이 없다"고 전했다.

법정단체화 시 의무가입 등으로 인한 반발 우려에 대해선 "현재 개업한 공인중개사가 11만 7천명인데 협회에 가입된 회원이 11만3천명"이라며 "97% 이상이 회원이라 의무가입이 큰 문제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법정단체화를 요구하는 이유는 공인중개사들이 아파트 주민 담합으로 인한 시세 상승을 막으려고 노력하는데 회원이 아닌 중개사가 웃돈 붙여서 팔아주겠다며 접근하는 식으로 아파트 가격을 올린 경우가 있다"며 "그 거래가 성사되는 순간 아파트는 1억짜리가 1억2천만원이 된다. 이런 식으로 전 정부 말기, 아파트 가격이 1년 만에 2배가 오르는 현상이 발생한 바 있다"고 부연했다.

공인중개사협회는 공인중개사들의 윤리의식 향상을 위해 NAR의 윤리강령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NAR의 윤리강령 중 '국민들한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할 것', '나의 이익을 위해 소비자를 기망하지 말 것' 등의 내용을 도입할 계획이다. 또, 최근 임대차 계약서 작성 시 확인할 체크리스트를 협회 회원들에게 배포했다.

이 회장은 "윤리강령이 기존에도 있는데 그동안 중요시하지 않은 면이 있어 NAR과 협업을 통해 윤리강령을 가져왔다"며 "17가지 정도의 윤리강령을 만들어 회원들이 항상 생각하면서 중개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2년에 한 번씩 공인중개사들은 연수교육을 받는데 윤리강령 교육을 추가해달라고 요청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또, 처음 개업한 공인중개사의 경우 28~32시간 교육이면 개업할 수 있는데 국토교통부에 교육시간을 늘려달라고 건의했다"며 "다른 전문자격은 실무교육이 60시간 이상이고 수습제도도 있는데 공인중개사는 없는 상황이다. 앞으로 3~6개월 이상 수습기간 등을 통해 중개사들이 꼼꼼히 업무를 숙지하도록 해 피해를 예방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안다솜 기자(cotton@inews24.com)

Copyright © 아이뉴스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