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보험설계사의 배신에 '속수무책'…보험회사 책임 인정될까?
일부 상품은 설계사가 대필 서명까지
총 21개 보험 가입과 해지 반복…부당승환계약 가능성↑
완전판매 모니터링콜에 "예"라고 답한 가입자 전정한 의사 표시될까
신한라이프 "증빙 서류 이상 없어", 금감원 "보험료 반환청구권 소멸"
보험업계에서도 이례적 사건으로 인식
원고측 법률대리인 "회사가 위법행위 방치"
경기도에 사는 황모(여)씨는 지난 2008년쯤 생명보험회사인 신한라이프 소속 보험설계사 김모씨로부터 "두 건의 상해보험이 잘 유지되고 있어 고맙다. 고객님의 자산관리를 잘 해주겠다"는 전화를 받았다. 이후 김씨는 지속적인 노후 대비가 필요하니 연금보험 상품에 가입하라고 권유했고, 황씨는 김씨를 믿고 2011년 4월쯤 노후 보장용 보험에 가입했다. 하지만 해당 상품은 연금보험이 아닌 종신보험이었고 이에 황씨가 따지자 김씨는 "수년 후에 연금보험으로 전환된다"는 취지로 얼버무렸다.
2013년 4월쯤 김씨는 "신상품이 나왔으니 기존 보험을 업그레이드하자"고 제안했고, 전문지식이 없던 황씨는 이에 응했다. 하지만 해당 보험상품은 기존 보험을 더 좋은 조건으로 업그레이드 한 게 아니라, 기존 보험을 해지하고 사실상 동일한 내용의 보험을 다시 체결하는 식이었고, 역시 연금보험이 아닌 '종신보험 기타 보장성 보험'이었다.
김씨는 지난 2021년 11월까지 이런 방식으로 10차례가 넘게 황씨의 기존 보험을 해지하고 새로운 보험 계약을 체결했고, 해지환급금 일부는 새로운 보험상품 5개에 대해 7회에서 많게는 13회까지 선납처리하는 데 사용했다. 황씨가 2011년 4월부터 2021년 7월까지 가입했거나 해지한 신한라이프 보험상품은 21개에 달했다. 10년 동안 노후보장 연금이라 믿었던 상품에 낸 보험료만 3억원에 달했다. 황씨측은 "일부 상품은 보험 청약서와 약관도 받지 못했고 설명도 제대로 듣지 못했다. 심지어 김씨가 계약서에 대필 서명을 한 경우도 있다"고 주장했다.
보험설계사 김씨의 잇딴 보험계약 해지로 일부 보장성보험의 경우 보험료 납입액이 1879만원(26개월), 1158만원(20개월)에 달했지만, 해지환급금은 각 58만원, 22만원 수준으로 2~3%에 불과했다는 게 황씨측 주장이다. 뒤늦게 속은 걸 알게 된 황씨는 보험료를 돌려달라고 요구했지만 김씨는 이미 신한라이프를 퇴사해 일선 대리점으로 이직했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황씨의 뼈아픈 실수…완전판매 모니터링콜에 "예"
기존 보험을 해지하고 새로운 상품 가입을 유도하는 행위는 보험업법 97조가 규정한 부당승환계약에 해당될 수 있다. 부당승환계약은 보험 가입자에게 금전적 손실은 물론, 면책기간이나 해지환급금 등으로 큰 손해를 끼칠 수 있어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보험설계사 입장에서는 새로운 계약 체결로 손쉽게 수수료를 챙길 수 있어 문제가 끊이질 않는다.
특히 보험 관련 전문지식이 없는 대다수 가입자는 별다른 의심 없이 설계사의 말을 신뢰하다 뒤늦게 낭패를 보는 경우도 허다하다. 대면 가입 과정에서 보험상품의 성격과 실제 보험금 수령 개시 요건, 보험금 지급제한 사유 등 중요한 설명을 생략해도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빼곡한 약관 설명서를 앞에 두고 하나하나 물어보기도 민망해 '알아서 잘 해주겠지'라며 설계사를 믿고 충분한 설명을 들었다고 자필 서명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황씨의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 황씨는 뒤늦게 김씨에게 속았다고 생각해 신한라이프와 금융감독원에 '보험료 반환청구' 민원을 냈다. 하지만 김씨를 전적으로 믿었던 황씨는 보험가입 때마다 '계약자가 직접 자필 서명하고, 청약서부본, 상품설명서, 약관을 받고 약관의 중요내용을 설명들었다'는 보험회사측 완전판매 모니터링콜에 '예'라고 답했다. 황씨의 의사표시가 제대로 반영됐다고 본 금감원은 해당 민원을 '불수용' 처리했다.
금감원은 황씨가 가입한 대부분의 보험도 '약관교부 및 설명의무 위반'으로 인한 품질보증기간(청약일로부터 3개월)이 지났고, 상법에서 규정하는 보험료반환청구권 소멸시효도 완성됐다며 불완전판매 의혹 자체에 대한 검사를 진행하지는 않았다.
금감원은 설계사 김씨가 계약서상 서명을 대신 처리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수사기관이 아닌 만큼 판단할 권한이 없다"면서도 "금감원의 (민원) 처리결과는 법률상 구속력이 없으므로 이의가 있으면 법원에 소 제기 등을 통해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고 안내했다.
보험업계에서도 "이례적" 판단…손해배상 청구 소송
결국 황씨는 법원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그동안 납입한 보험료 3억 800여만 원에서 해지환급금으로 받은 5700만 원을 뺀 2억 5100여만 원을 설계사의 불법행위와 신한라이프의 관리감독 의무 태만으로 인한 손해액으로 산정했다.
황씨가 소송 상대를 김씨가 아닌 신한라이프로 한 이유는 보험회사의 관리감독 의무 위반이 크고 설계사들의 불법행위를 암묵적으로 용인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 때문이다. 황씨 남편 장모씨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김씨 같은 설계사들을 희생시켜 지점에 있던 간부들은 전부 승진했다. 아마 위에서 목표달성을 위해 (무리한 불완전판매를) 시켰을 것"이라며 "이제 와서 나몰라라하고 있다. 신한라이프는 내부 감사 기능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보험업계에서도 이번 사안을 이례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통상 부당승환계약은 A보험사 소속 설계사가 B보험사로 이직하거나, 법인보험대리점(GA)로 옮기면서 자신의 기존 고객을 빼오기 위해 다른 보험회사 상품에 무리해서 가입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황씨가 가입과 해지를 반복한 21개 보험은 모두 신한라이프 상품이기 때문이다.
20년 넘게 보험업무에 종사한 C씨는 "보통 승환계약은 설계사가 이직을 하면서 다른 보험회사 상품을 가입시키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이번 경우는 수차례에 걸쳐 같은 회사 상품에 반복적으로 가입시켰다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C씨는 "연금보험을 종신보험으로 파는 게 불완전판매의 가장 많은 사례다. 종신보험에 연금보험 전환 특약이 있는데 이걸 강조하다보면 연금보험처럼 판매하는 경우가 있다. 불완전판매로 다퉈볼 만하다"고 덧붙였다.
다만 황씨가 계약서에 자필 서명을 하고 개인동의를 했다면, 관리감독 의무가 있는 보험회사 입장에서 장기간 특정인에 대해 수차례 반복된 기존 보험 해지와 신규 계약 체결 등의 이상 징후를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신한라이프 "증빙으로 불수용", 황씨 법률대리인 "회사가 위법행위 방치"
당사자인 신한라이프측은 계약 관련 내부 증빙을 살펴본 결과 황씨의 민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신한라이프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계약자 확인절차와 해피콜 등 내부 증빙을 확인해본 결과, (황씨) 본인이 증권을 다 교부받았고 설명도 들었다는 부분에 '예'라고 답했다"며 "품질보증 해지 기간이 지나버리면 증빙을 가지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증빙을 제외하고 민원인과 설계사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자세한 연유까지는 알 수 없다"며 "법원에 민사소송이 제기됐으니 회사도 법원 판결을 보고 처리할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황씨 법률대리인을 맡고 있는 LKB앤파트너스 서재민 변호사는 통화에서 "법원이 사용자책임을 인정할 때는 지휘감독 관계를 좀 넓게 보고 있다"며 "(황씨가) 보험증권을 제대로 교부받지 않은 부분도 있어 회사가 사실상 일련의 위법행위를 사실상 방치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서 변호사는 "이분(황씨)이 종신보험에 추가로 가입할 하등의 이유도 없다"며 "보험증권 교부 의무 위반, 대필 서명 등에 대한 신한라이프측의 관리감독 해태에 대해 충분히 금전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법원 공방에서는 대필 서명 부분도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금감원은 필적 감정과 같은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아 이 부분을 사실상 각하 처리했지만, 김씨의 대필 서명은 육안으로 보더라도 쉽게 확인된다는 게 법률대리인측 설명이다. 서 변호사는 "설계사 김씨도 자신이 일부 계약서에 대필 서명했다고 인정했다"고 전했다.
서 변호사는 "신한라이프 측에서 가지고 있는 여러 자료들을 제출을 하지 않아 저희가 반박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며 "황씨가 계약과 관련해 다 알고 있었다는 증빙 자료가 어떤 건지, 그리고 자료의 신빙성은 있는 건지 등을 따져볼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해 하반기 생명보험사 17곳의 종신보험 판매 영업실태를 점검했는데, 15개사가 '저조'한 등급을 받았다. 당시 금감원은 종신보험 불완전판매 민원이 꾸준히 늘고 있다며 소비자경보를 발령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생명보험사는 가입제안서를 보여주며 간단한 보장내용만 설명하고 민원·분쟁 유발 소지가 큰 보험금 지급제한 사유나 고지의무 위반으로 인한 계약해지, 해약환급금 등에 대한 설명을 빼먹는 등 설명의무 이행 부문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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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박지환 기자 violet@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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