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증은 문화를 통한 고향사랑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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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전남 보성에 있는 한 농가를 찾았다.
1970년대 농사를 기록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유형(有形)의 자료뿐 아니라 모내기·김매기 등 농사일을 하면서 불렀던 농요나 쟁기질하거나 삼베를 짜면서 흥얼거렸던 소리, 도리깨질, 맷돌질 소리 등 무형유산도 소중한 것들이다.
고고학적 자료들은 주로 발굴을 통해 수집하지만, 근현대 농업 유물은 구매나 기증을 통한 방법이 일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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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전남 보성에 있는 한 농가를 찾았다. 1970년대 농사를 기록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서였다. 50여년간 농사에 종사해온 농부가 건넨 자료에는 날짜별로 영농활동이 꼼꼼히 기록돼 있었다. 일주일 간격으로 벼 이삭을 꺾어 붙인 표본도 있었다. 마치 그 당시 농사 현장을 보는 듯했다. 농부의 정성과 땀의 흔적이 묻어났다. 자료를 보다가 1978년 7월20일자 기록이 눈에 띄었다.
“지난 10일부터 중간 물떼기를 실시했다. 보통 출수 전 35∼40일경 해야 하는데, 올해는 기상 관계로 조금 늦게 했다. 습답(濕畓)이라 10일에 걸쳐서 했다. 논바닥에 신발을 신고 들어가도 발이 빠지지 않았다. 논에는 약간의 실금이 가 있었고 새로운 많은 벼 뿌리를 관찰할 수 있었다. 앞으로 물관리는 4담2락식(4일은 논에 물을 대고, 2일은 물을 빼는 방식)으로 할 계획이다” 같은 내용이었는데, 현장이 생생하게 묘사돼 있었다. 이밖에도 경험으로 터득한 기술과 정보가 가득했다. ‘현대판 농사직설’이라 해도 무방했다.
표어나 포스터는 시대를 읽는 중요한 자료다. 1970년대 우리나라는 식량 부족 문제 해결이 국가적 과제였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펼쳤다. 핵심은 증산과 혼분식 그리고 절미(節米)였다. 실천 분위기를 조성하고 동참을 유도하기 위해 ‘한치의 땅이라도 놀리지 말자’ ‘혼분식에 허약 없고 절미 속에 가난 없다’ ‘아빠는 증산 엄마는 절미’ 같은 구호를 사용했다. 그 당시 쌀 부족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처절함이 느껴지는 문구다.
이처럼 농업 역사를 구성하고 농경문화를 보여주는 자료는 다양하다. 우선 농민이 사용한 각종 농사도구와 살림살이에 사용한 민속자료들이 있다. 농민들이 직접 작성한 자료도 있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기타 각종 단체 등에서 생산한 자료도 있다. 이러한 유형(有形)의 자료뿐 아니라 모내기·김매기 등 농사일을 하면서 불렀던 농요나 쟁기질하거나 삼베를 짜면서 흥얼거렸던 소리, 도리깨질, 맷돌질 소리 등 무형유산도 소중한 것들이다. 하지만 이런 유산들은 지금까지 다른 고고학적 유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돼온 게 사실이다.
농업 유물을 어떻게 수집하고 보존할 것인가. 고고학적 자료들은 주로 발굴을 통해 수집하지만, 근현대 농업 유물은 구매나 기증을 통한 방법이 일반적이다. 다만 구매의 경우는 유통 경로가 불명확해 가치판단이 어렵고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수입된 물건이 있다는 것이 맹점이다. 따라서 기증을 통한 수집이 좋은 방법일 수 있다. 소장 경위가 명확하고 기증자는 보람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어서다.
전세계 140여개 회원국을 보유한 국제박물관협의회(ICOM)는 박물관을 ‘유무형의 유산을 연구·수집·보존·해석·전시해 사회에 봉사하는 비영리 영구기관’으로 정의한다. 국립농업박물관은 전통 농경문화·농법, 농경 유물 등을 유지·계승하고 농업·농촌의 공익 기능을 널리 알려 농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지난해 설립됐다. 국립농업박물관은 박물관으로서 역할을 하고 전통 농경문화 보존이라는 국가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 유무형의 농업 유산을 상시 수집한다.
자료를 개인이 가지고 있으면 추억이 되지만 박물관에 기증하면 역사가 된다. 기증은 문화를 통한 고향사랑기부 행위다. 고향의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고 고향 발전에 이바지하기 때문이다. 비록 답례품도 없고 세액공제도 안되지만, 평생토록 명예와 뿌듯함을 간직할 수 있다. 기증으로 대한민국 농업 역사의 주인공이 돼보는 건 어떨까.
김재균 국립농업박물관 학예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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