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과 격차 더 벌린다…탄소배출 측정 표준 만드는 韓 조선 3사
[편집자주] '온실가스 순배출량 제로(넷제로)' 중간 목표 시점인 2030년을 앞두고 전세계 정부와 기업들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왜'에서 '어떻게'의 단계로 접어든 넷제로 추진은 에너지 전환, 산업, 수송, 건물 등의 전 방위적 변화를 수반합니다. 광범위한 변화의 한가운데 있는 만큼 다양한 시각과 정보가 혼재합니다. 넷제로 달성과 관련해 가장 전방에 있는 각국 기업·기관의 인물들을 만나 우리에게 가장 합리적인 달성 방법을 고민하는데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전달하려 합니다.
"에너지 전환과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이 한국 조선업에 위험보다 훨씬 큰 기회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HD현대(옛 현대중공업 그룹)의 조선 중간 지주 HD한국조선해양(HD현대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삼호중공업)에서 ESG기획팀을 이끄는 김준호 수석매니저는 전 세계 산업의 저탄소 전환 흐름이 한국 조선업에 "앞으로 더 많은 기회를 만들 거라 확신한다"고 했다.
유엔 IMO(국제해사기구)의 선박 온실가스 배출 규제, 글로벌 기업들의 공급망 내 탄소 배출관리 강화는 해운사의 연료 전환 움직임을 촉발하며 수주 산업인 조선업에도 직접적 변화를 낳고 있다.
HD현대가 지난 2021년 국내 조선사 중 가장 앞서 밸류체인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스코프3)을 산출하고, 지난 3월 삼성중공업·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과 '조선업계 온실가스 배출량 스코프3 산정 표준화 공동개발 프로젝트'에 착수한 배경이다. 조선사의 스코프3에는 선박에 쓰이는 강판이 만들어질 때 배출되는 온실가스, 만들어진 선박이 운행 중 내뿜는 온실가스 등이 포함되는데, 선박 생산 밸류체인 전과정의 탄소배출량 측정 방법을 국제적으로 '표준화'하는 작업이 한국 조선 3사 주도로 시작된 것이다.
스코프3는 측정 대상이 방대한 탓에 기업마다 측정 기준에 차이가 있다. 측정 자체도 어렵다. 제품을 만드는 공정에서 나오는 온실가스(스코프1)와 이 공정에 쓰이는 전력·열이 방출하는 온실가스(스코프2) 등은 기업 내부 데이터이지만, 스코프3를 측정하려면 다른 기업들이 방출하는 온실가스 데이터를 확보해야 한다. 조선 3사에 중간재 및 원자재를 공급하는 기업들은 전 세계 약 3000~4000개, 영세한 곳을 제외해도 1000개 이상이다. 애초에 데이터가 없는 중소기업들이 많고, 대기업이라 할지라도 실제 제품의 배출량이 아닌 '평균값'만 있는 경우도 다수다. 부족한 실증 데이터는 추정치로 대체해야 한다. 현재 단계에서 스코프3 산출 방법론 구축이 지난 한 작업인 이유다.
이런 가운데 한국 조선3사가 시작한 스코프3 산정 표준화 작업이 전세계 조선업체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글로벌 표준'으로 정립되면 산업은 물론 학술적으로도 높은 가치를 지닐 것으로 평가된다. 이와 별도로 HD현대중공업은 유럽 기관들과 LNG운반선의 전 생애주기 탄소배출량 등의 산출 작업도 진행 중이다. 완성된다면 조선업계에서 실증 데이터를 기반으로 LCA(Life Cycle Assessment·환경전과정평가)를 시행한 첫 사례가 된다. 이 프로젝트들을 이끄는 김준호 수석매니저를 만나 진행 상황과 계획 등을 들었다.
- 조선업의 스코프3 산출 범위는
▶국제기준인 GHG(온실가스) 프로토콜*은 스코프3를 15개의 카테고리로 나눠 각 기업이 이 정보를 측정해 발표하도록 한다. 이 중 조선업에는 10개 카테고리가 해당한다고 자체적으로 판단했다. 특히 조선업에서는 카테고리 11(판매한 제품의 사용), 즉 선박 운행 시 나오는 온실가스량이 중요하다. 이 배출량이 전체의 94.2%다. 즉 조선사가 선박을 만들 때의 탄소배출량은 1.1% 밖에 안 되고 전체 밸류체인 배출량의 98.9%가 외부에서 발생한다.
- 조선3사의 스코프3 공동 산정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됐나
▶2021년 HD현대 조선부문의 스코프3를 공표했지만, 이 방법론이 맞는지에 대한 확신이 필요했다. 경쟁사들도 자체적으로 스코프3를 산출했지만 발표는 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역시 방법론에 대한 확신이 부족해서였다. 그래서 '우리(조선3사)가 표준을 만들자. 방법론에 있어서는 경쟁하지 말자'고 의견을 모았다. 한국 조선업이 세계 1위인인만큼 3사가 잘 만들면 국제 표준까지 갈 수 있을 거라 봤다. 추진 중 ABS(미국 선급)가 유사한 제안을 해 합류했고, 이후 KR(한국선급)도 동참해 지난 3월 개시했다.
-지금까지 어떻게 진행됐나
▶ 지난 3개월간 매주 1~2차례 회의를 통해 3사 각자의 방법론을 공개하고, 15개 카테고리 별로 각자 쓰는 방법론과 참고자료를 공유했다. 의견 조율도 필요했다. 예를 들어 선박 운항 시 배출되는 온실가스량을 계산할 때 선박의 평균수명 가정이 중요한데, 우리는 IMO 자료를 기반으로 25년을 적용하려 했지만, 다른 곳은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의 자료에 기반해 선종과 크기별 평균수명을 각각 적용하자고 해 조율이 필요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3개월간 15개 카테고리 측정 방법에 대한 3사 내 합의를 이뤘다. 이걸 국제적으로 적용했을 때 문제점이 없는지에 대한 검토를 하반기에 진행하려 한다. 10~11월경 3사가 합의한 카테고리15까지의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계획이다. ABS와 KR의 자문 단계도 거칠 예정이다. 전세계 조선업체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스코프3 산출 방법론을 만드는 게 목표다.
-스코프3 산출 방법론 구축이 조선업 경쟁력에 주는 의미는
▶전 세계적으로 표준화된 스코프3 산정 방법이 있으면 장기적으로 중국 조선사보다 한국 조선사에 더 유리할 수 있다고 본다. 향후 입찰을 하거나 중국과 경쟁 할 때 가격에 큰 차이가 없으면 선주들이 탄소배출을 더 적게 하는 한국 조선사를 선택할 수 있다.
-조선업의 스코프3 산출 시 어려운 점은
▶실증 데이터를 얻을 수 없다는 게 가장 어려운 점이다. 예를 들어 선박을 만들 때 강판을 쓴다면, 이 강판이 만들어질 때까지의 탄소배출량은 강판의 두께 등 제품별로 다르다. 하지만 현재는 제품별 탄소배출량 자료가 없다. 배를 운영하는 선사 측이 데이터를 정확하게 제공하는 것도 필요하다. 특히 업스트림(선박 건조에 사용되는 기자재 및 원재료 등)에서 배출량 데이터를 가져와야 하는데 협력업체 중 중소기업들이 많아 자료 자체가 없는 경우도 많다. 실증 데이터가 부족한 현재는 참고자료·출처 등을 공개한 후 이 자료를 바탕으로 한 '과학 기반 추정'을 한다. 모든 공급망 기업이 같은 수준의 정보를 줄 수 없다. 이 부분을 고도화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지난달 영국 로이드선급(LR), 노르웨이 해운사 크누센과 선박 전생애주기 탄소배출량 측정도 시작했다.
▶HD현대중공업의 17만4000㎥급 LNG 추진 LNG 운반선 한 척을 만들 때 원료 채취부터 폐선까지 발생하는 탄소배출량 등을 측정하는 프로젝트다. 선박을 만들고 운영할 때 어떤 지점에서 탄소배출량이 제일 많은지 찾기 위한 것이다. 이 LNG선 한 척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플레이트가 발생시키는 탄소배출량, 용접, 페인트, 크레인 이용, 선박 해상 시운전, 유지보수, 폐선까지 선박이 전생애에서 방출하는 탄소배출량을 측정하는 거다. 선박에 대한 LCA 중 실증 데이터를 가지고 하는 건 최초로 알고 있다. 현재 LR 및 크누센과 2주에 한 번 정도 화상회의를 하고 있고, 연내에 보고서를 내는 것으로 계획 중이다.
-LCA 측정의 난점과 의미는
▶역시 핵심은 데이터 확보다. 생산 현장에서 받아야 하는 데이터가 많다 보니 여러 부서 및 이해 관계자를 접촉 해 설득해야 한다. 대외비 자료를 요구해야 할 때도 있어 내부 설득이 쉽지 않을 때도 있다. 이 작업이 완성된다면 선박의 탄소발자국을 측정하는 하나의 도구가 만들어진다. 그러면 앞으로 선종별로, 예를 들어 컨테이너 선의 자료를 넣으면 해당 선박의 탄소발자국을 측정할 수 있게 된다. 화석 연료 추진 선박의 탄소발자국 수치를 뽑아 이걸 LNG 추진선과 비교할 수도 있다. 이게 중요한 건 '친환경 선박'에 대한 정의가 명확하게 드러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친환경'은 그린워싱과 관련해 취약한 단어다. 실증 데이터가 있어야 진짜 친환경 선박을 감별할 수 있다.
-전반적인 해운산업의 탈탄소 흐름이 한국 조선업에 미칠 영향은
▶전반적인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이나 에너지 전환이 한국 조선업에 리스크보다는 훨씬 더 큰 기회를 줄 수 있다고 본다. 선박은 국제 물동량의 90%를 차지하고, 이 비중이 크게 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 선박의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방법은 크게 세가지다. 연료 전환, 연료를 덜 사용하도록 하는 효율화 제고, 디지털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선박 운항 효율화다. 선박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잘 가게 하는가와 관련한 기자재 부분에 대해서는 한국 조선사들이 많은 노하우와 기술을 갖고 있다. HD현대의 경우 '오션와이즈' 같은 디지털 솔루션의 상용화도 추진하고 있다.
-선박의 연료 전환은 어떻게 이뤄질 것으로 전망하나
▶선주들이 최근 암모니아에 높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암모니아는 독성이 위험하지만, 무탄소(NH3) 연료고, 극저압 상태에서 보관하지 않아도 된다. 암모니아의 주재료인 질소 인프라가 비료 생산 등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구축돼 있다. 암모니아가 차세대 연료로 자리잡기에 유리한 환경이 갖춰진 것이다. 2024~2025년경을 바라보고 기술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조선사의 영업 활동은 전형적인 수주 산업이다. 수주 산업은 선주가 어떤 선박을 주문하면 이에 맞춰 필요한 선박을 바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어떤 기술이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선사들은 연료전환 밖에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 연료전환이 급격히 이뤄질 수 있다. 연료 전환이 어떻게 이뤄지든 조선사는 기술적인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기술적으로 우리 조선소는 대비가 잘 돼 있다고 본다.
*GHG 프로토콜: 미국 비정부기구 세계자원연구소(WRI)와 다국적 기업연합체 세계지속가능발전기업협의회(WBCSD)가 국제적으로 공신력 있는 온실가스 배출량 산정에 대한 기준을 확산한다는 목표로 1998년 GHG 프로토콜 이니셔티브를 발족했다. GHG 프로토콜의 하나가 '온실가스 프로토콜 사업자 배출량 산정 및 보고 기준'으로, 기업들이 스코프3를 산정할 때 측정 범위 등의 기준으로 삼는다.
권다희 기자 dawn2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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