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화학 벗고 그린기업 탈바꿈…SK이노베이션 저평가 탈출한다

김사무엘 기자 2023. 7. 10. 0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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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목대해부]대규모 유상증자 우려, 주가↓…증권가 "오히려 기업가치 개선 기회"
[편집자주] 매일같이 수조원의 자금이 오가는 증시는 정보의 바다이기도 합니다. 정확한 정보보다는 거품을 잡아 손실을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머니투데이가 상장기업뿐 아니라 기업공개를 앞둔 기업들을 돋보기처럼 분석해 '착시투자'를 줄여보겠습니다.

올해 국내 2차전지 업체들의 주가 상승세가 이어질 동안에도 SK이노베이션은 웃지 못했다. 글로벌 탑5 배터리 셀 회사인 SK온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주요 사업인 정유화학 사업에 대한 저평가가 이어지면서 기업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증권가에서는 이제부터 SK이노베이션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질 시점이라고 보고 있다. 2년 전 발표했던 '카본투그린'(탄소기업에서 친환경기업으로의 전환) 계획이 성과를 내고 있고 SK온의 실적도 올해를 기점으로 급격히 개선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최근 조단위 유상증자로 인한 주식가치 희석 우려가 나오지만 오히려 이를 매수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1.2조 유상증자에 주가 하락…증권가 "과도한 우려"

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지난달 23일 1조1777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발표한 이후 현재까지 주가 약세가 이어지고 있다. 유상증자 공시 다음 거래일인 지난달 26일 주가는 6% 급락했고 이후에도 하락과 반등을 반복하며 박스권 움직임이다.

시장이 가장 크게 우려하는 건 대규모 유상증자로 인한 주가희석 효과다. 통상 유상증자는 주가에 악재로 작용한다. 자금조달을 위해 추가로 주식을 발행하는 만큼 1주당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기존 주가보다 저렴하게 신주를 발행하는 것도 부담이다.

SK이노베이션이 이번 유상증자로 발행하는 신주는 총 819만주로 기존 주식수의 8.9%를 차지한다. 신주 가격은 주당 14만3800원으로 유상증자를 공시할 당시 종가(18만2600원)보다 약 20% 할인된 가격이다. 저렴한 신주가 대거 상장한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주가를 누르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증권가에서는 SK이노베이션의 유상증자에 대한 우려가 과도하게 반영됐다는 시각이 상당하다. 유상증자로 인한 주가 하락은 불가피하나 신주발행 규모나 자금조달의 성격 등을 감안하면 적정 가격조정폭보다 더 많이 빠졌다는 것이다.

SK이노베이션이 이번 유상증자를 단행하는 주요 목적은 카본투그린 계획 달성을 위한 투자금 유치다. SK이노베이션은 2021년 카본투그린 전략을 통해 2020년 30% 정도인 그린자산 비중을 2025년 70%까지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위해 2021년부터 2025년까지 그린사업을 중심으로 총 30조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이번 유상증자로 조달하는 자금 대부분도 친환경 신사업 투자에 활용된다. 자금사용 목적별로 △타법인증권 취득 4092억원 △시설자금 4185억원 △채무상환 3500억원 등으로 전제 조달자금의 70% 이상을 신사업에 투자하는 셈이다.

타법인증권 취득자금은 수소·암모니아 등 무탄소 에너지 공급을 위한 기술과 탄소 포집 기술, 합성원유 등 신기술 확보에 사용한다. 시설자금은 배터리와 신규 그린사업 R&D(연구·개발) 센터에 투자한다.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투자한 금액은 향후 이익으로 다시 돌아오는만큼 유상증자로 인한 주식가치 희석을 크게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분석이다.

윤용식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 증자를 통한 순차입금 감소를 고려하면 주당 가치의 희석은 제한적일 것"이라며 "SK온 IPO(기업공개) 이후 신규 성장동력 확보의 필요성을 감안하면 장기적 관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동종업계의 유상증자 사례를 고려할때 주가 반등이 생각보다 빨리 올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과 같은 정유화학 업종에 속한 한화솔루션과 롯데케미칼은 각각 2020년12월 1조2000억원, 2022년11월 1조105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공시했다. 발표 직후 두 기업의 주가는 잠시 약세를 보였으나 30일 뒤 주가는 한화솔루션이 9.6%, 롯데케미칼이 5.1% 상승했다.

조현렬 삼성증권 연구원은 "당시 한화솔루션과 롯데케미칼의 주가가 오른건 증자에 따른 신규사업 확대 기대감 때문"이라며 "SK이노베이션의 증자로 인한 주식수 증가율은 앞선 두 기업보다 미미한 수준으로 적정 주가 하락폭은 3.3%에 불과하다"고 분석했다.

탄소기업→그린기업 전환, 저평가 해소

이번 유상증자를 통한 자금조달로 카본투그린 전략이 계획대로 실행된다면 SK이노베이션의 기업가치는 재조명 받을 수 있다. 글로벌 친환경 정책 기조와 ESG(환경·사회적책임·기업 지배구조) 강화 흐름 등을 감안하면 그린기업으로의 전환은 더이상 늦출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SK이노베이션은 SK온이라는 글로벌 배터리 기업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저평가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좌초자산으로 평가받고 있는 정유화학 사업의 비중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 SK이노베이션의 매출 비중은 △석유 67% △화학 14% △윤활유 6% △배터리 10% △소재 및 기타 3% 등으로 구성된다. 정유화학 비중이 높다보니 국제유가가 실적과 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SK이노베이션이 지난해 창사 이래 최대 이익을 달성한 것도 국제유가의 영향이 컸다. 지난해 매출액은 전년 대비 66.6% 증가한 78조569억원, 영업이익은 124.9% 늘어난 3조9173억원을 기록했다. 윤활기유의 견조한 수익성과 트레이딩 이익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지난해 상반기 내내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상회하는 초강세가 지속된 영향이 컸다.

올해 상황은 지난해와 정반대다. 글로벌 경기둔화와 중국 경기침체 등의 영향으로 에너지 소비가 감소하면서 국제유가의 하락세가 이어진다. 올해 상반기 미국 서부텍사스산 원유(WTI)의 평균 가격은 배럴당 74.85달러로 전년 대비 26.3% 하락했다. 올해 1분기 SK이노베이션의 영업이익도 전년 대비 77.3% 급감한 3750억원을 기록했다.

다행인 점은 지난해 유가 강세로 인해 현금흐름이 개선되면서 그린기업 전환을 위한 투자가 원활하게 이뤄졌다는 것이다. SK이노베이션에 따르면 배터리 사업을 포함한 그린자산의 비중은 올해말 60%를 넘기고 내년에는 70%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초 계획했던 2025년 그린자산 비중 70% 목표보다 1년 빠른 속도다.

그린사업 투자는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시간이 다소 걸릴 수 있지만 중장기적 관점에서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는 요인이다. 최영광 NH투자증권 연구원은 "SK이노베이션의 자체 사업이 올드 이코노미에서 뉴 이코노미로의 변화가 나타난다면 중장기적 관점에서 밸류에이션 확장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SK온 올해 흑자전환 기대…"주가 조정은 매수기회"

핵심 자회사 SK온의 실적 개선도 기대 요인으로 꼽힌다. 배터리 셀 제조를 맡고 있는 SK온은 그동안 기업 규모와 생산능력에 비해 저평가되고 있다는 인식이 많았다. 모기업의 주력 사업이 정유화학이라는 점도 있지만 배터리 증설을 위한 지속적인 대규모 투자로 흑자전환이 늦어진 영향도 컸다.

올해는 SK온의 흑자 가능성이 나온다. 글로벌 공장 가동이 본격화할 뿐더러 미국의 IRA(인플레이션감축법) 시행으로 인한 보조금 혜택이 크게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화투자증권에 따르면 SK온이 올해부터 2032년까지 10년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IRA 보조금은 총 219억7400만달러(28조6000억원)로 추산된다. 매년 2조~3조원의 이익이 추가로 발생되는 셈이다.

증권가에서는 SK온이 올해 3분기까지 적자폭을 점차 축소하다가 4분기부터는 700억~1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낼 것으로 보고 있다. 이동욱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해외 배터리 공장들의 수율이 전 분기 대비 개선되고 있고 이연됐던 AMPC(첨단제조생산 세액공제) 효과가 올해 2분기부터 실적에 추가될 것"이라며 "올해 감가상각비를 고려할 경우 2분기부터 배터리 사업의 EBITDA(감가상각 등 차감 전 영업이익) 흑자전환을 예상한다"고 밝혔다.

SK온이 저평가 국면에서 벗어나면 모회사 SK이노베이션의 가치도 재평가 받을 수 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5월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점유율은 SK온이 11.1%로 네번째다. 1위 LG에너지솔루션(27.4%)와의 격차는 다소 있지만 삼성SDI(8.8%)보다 높다.

지난해말 기준 SK온의 장부상 가치는 약 5조원이다. SK온보다 점유율이 낮은 삼성SDI의 시가총액이 48조원, 점유율에서 2배 정도 차이가 나는 LG에너지솔루션의 시가총액이 131조원임을 감안하면 SK온은 현저한 저평가 상태다.

SK온의 상장 시기가 다가올수록 주주환원 계획도 부각될 수 있다. SK온은 2025년 이후 상장을 계획하고 있는데 SK이노베이션은 지난 3월 주주와의 대화에서 SK온 주식교환을 포함한 주주환원 계획을 발표했다. 현재 계획은 시가총액의 약 10%를 SK온 주식교환 재원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윤재성 하나증권 연구원은 "SK이노베이션 주가의 핵심 동인은 SK온의 수익성이기에 중장기적으로 주가 조정을 매수 기회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며 "주주가치 제고 방안으로 SK온과의 주식교환, 구주매출을 통한 특별배당 등을 검토하는 만큼 향후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밝혔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의 목표주가 평균은 24만2267원으로 현재 주가(16만6000원)보다 45.9% 높다.

김사무엘 기자 samuel@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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