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포집도 재생에너지가 필수” 선도국 아이슬란드의 충고 [탄소포집, 희망일까 환상일까]

신혜정 2023. 7. 10.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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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기후 위기는 이제 인류 생존 위기다. 더딘 온실가스 감축 속도를 높이고자 정부는 탄소포집 기술에 주목하고 있다. 공장과 발전소 굴뚝, 나아가 공기 중에서 이산화탄소를 모아 땅속에 묻거나 재활용하겠다는 것. 이 신생 기술은 포부처럼 탄소중립의 획기적 해법이 될 수 있을까. 한국일보 기후대응팀이 탄소포집 선도국, 아이슬란드·캐나다·호주 현장을 취재했다.
지난 5월 26일 방문한 아이슬란드의 직접탄소포집(DAC) 플랜트 '오르카' 전경. 올푸스=안재용PD

세계는 탄소와의 전쟁 중이다. 기후 위기에 맞서 각국은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2030년까지 절반으로, 2050년까지 제로(0)로 줄여 '탄소중립'을 이루기로 했다. 하지만 감축 진도가 좀처럼 나아가지 않는 사이, 지구는 하릴없이 뜨거워져 기준점인 산업화 이전(1850~1900년) 대비 기온 상승폭이 지난해 1.15도에 이르렀다. 인류 생존의 마지노선이라는 '1.5도 상승' 도달 시점도 2027년으로 3년 앞당겨졌다는 비관적 전망이 나온다.

"우리에겐 더 이상 잃을 시간이 없다"(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는 절박함 속에 인류는 새로운 기술에 주목하고 있다. 산업 현장이나 공기 중 이산화탄소를 모아 땅에 묻거나 재활용하는 '탄소포집' 기술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지난 3월 발표한 제6차 평가보고서에서 이 기술을 가용 수단에 포함했다. 각국 정부도 앞다퉈 육성 계획을 내놓고 있다.

감축 실적이 다른 선진국보다 더딘 우리 정부가 탄소포집 기술에 거는 기대는 특히 크다. 2030년 감축 목표 대비 한국의 2020년 달성률은 27.4%. 달성률 72.3%인 영국은 물론, 40%에 육박하는 미국과 일본에도 한참 뒤진다. 이에 정부는 '제1차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2023)과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2021) 모두에서 탄소포집을 핵심 기술로 강조하고 있다. 2050년까지 탄소포집으로 흡수하려는 목표량은 연간 최대 9,200만 톤. 국내 최대 기업인 포스코(7,849만 톤)와 삼성전자(1,449만 톤)의 연간 배출량(2021년 기준)만큼을 새 기술로 제거하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탄소포집은 기후위기 대응책 중 가장 논쟁적인 방식이다. 완전한 성공 사례가 아직 없기 때문이다. 가동을 위해 투입되는 비용과 자원도 많다. 적용 방식에 따라 온실가스 포집량보다 배출량이 많은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이 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탄소포집은 획기적인 탄소중립 솔루션일까, 장밋빛 환상일까. 한국일보 기후대응팀은 탄소포집 선도국으로 꼽히는 아이슬란드, 캐나다, 호주를 현장 취재하고 전문가 인터뷰와 데이터 수집을 통해 탄소포집의 현주소와 전망을 진단했다.


직접공기포집'소금밭에서 후추 1개 찾기'에 비견

오르카 전면 이미지. 클라임웍스는 오르카의 디자인이 아이슬란드 풍경과 어울린다고 강조한다. 클라임웍스 제공

지난 5월 29일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30분가량 차를 타고 올푸스에 도착하자 생경한 철제 구조물이 나타났다. 높이 8m, 너비 800㎡의 설비를 콘크리트 철근이 떠받친 형상이었다. 짙은 회색빛의 설비 앞면은 배기구로, 그 안쪽은 좌우 약 10㎝ 크기 금속판으로 촘촘했다. 뒷면은 거대한 송풍기가 줄지어 있었다. 얼핏 보면 거대한 에어컨 실외기 같은데, 색 배합이 세련돼 미래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시설 이름은 '오르카(Orca)'. 2021년 세계 최초로 대기에서 탄소를 포집하는 데 성공한 직접공기포집(DAC·Direct Air Capture) 설비다. 연간 포집 규모는 4,000톤. 공상과학으로 취급받던 DAC 기술을 현실에서 구현한 기념비적 사건이었다.

DAC 현실화로 탄소포집의 가능성은 대폭 확장됐다. 탄소포집은 기후위기 주범인 탄소를 화학 반응을 통해 모아서 제거하는 기술을 총칭한다. 일반적으로는 공장 배기가스에서 탄소를 포집하지만, DAC는 대기에서 탄소를 흡수할 수 있어 항공·선박 등 움직이는 배출원이나 이미 배출된 탄소까지 광범위한 포집을 기대할 수 있다.

막심 윌리엄스 클라임웍스 플랜트 매니저가 오르카의 운영 방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안재용PD

오르카 이전에 DAC는 실험실에서 소규모로만 가동했다. 대기 중 농도가 0.042%에 불과한 탄소를 포집하는 작업은 '가는 소금 1㎏에서 후추 알갱이 1개를 골라내는 일'에 비견될 만큼 난도가 높다 보니 상용화 시도가 좀처럼 없었기 때문이다. 탄소포집 기술의 우선적 활용처인 석탄화력발전소 배기가스의 경우 탄소농도가 10~18%다.

2009년 설립된 스위스 업체 '클라임웍스'가 2년 전 상업적 규모의 DAC 설비인 오르카를 만들어내자 국제사회는 비상한 관심을 보냈다. 마이크로소프트, 보스턴컨설팅그룹 등 '큰손' 투자가 쏟아졌다. 클라임웍스가 지금까지 유치한 투자액은 7억6,200만 달러(9,900억 원)에 이른다. 한국 정부는 2050년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DAC로 매년 740만 톤을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국가 탄소 감축 계획에 DAC 활용이 명시된 첫 사례다. 정부는 '국가 탄소포집 기술개발 계획'에도 DAC를 소개하며 클라임웍스를 주요 사례로 언급했다.


지열에 의존하는 오르카, 한국에서 가능할까

아이슬란드의 산 공터에 온천수가 부글부글 끓고 있다. 안재용PD

오르카 성공의 핵심 배경으로는 아이슬란드의 풍부한 지열 에너지가 꼽힌다. DAC는 송풍기를 가동해 공기를 모으고 열을 가해 탄소를 분리하는 과정에서 에너지가 많이 드는데, 오르카는 1㎞ 거리에 있는 '헬리셰이디 지열발전소'에서 필요한 전력을 넉넉히 공급받는다. 막심 윌리엄스 클라임웍스 플랜트 매니저는 "재생 가능하고 탄소 배출이 적은 에너지는 DAC 운영에 매우 중요하다"며 "DAC를 화석연료로 운영한다면 포집 효율이 매우 떨어진다"고 말했다.

아이슬란드는 이미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공급하고 있다. 전력의 70%와 30%를 각각 수력과 지열로 생산한다. 유럽 북단, 북아메리카판과 유라시아판이 갈라지는 대서양 중앙 해령에 위치해 지각 활동이 활발한 덕이다. 실제 아이슬란드 도로 곳곳에선 펄펄 끓는 온천수를 쉽게 볼 수 있다. 공공 수영장을 온천수로 채울 정도다. 숙소 수돗물은 유황 냄새가 진동했다. 숙소 주인은 "굳이 불을 끌 필요가 없다"고 안내했다. 전기료가 워낙 싸기 때문이다. 현지 지열발전 사업자들은 남아도는 지열을 활용할 방안을 찾느라 부심하고 있다고 한다.

아이슬란드의 한 마을이 온천수에서 나온 수증기로 뒤덮여 있다. 아이슬란드는 전력의 30%를 지열로 얻는다. 안재용PD

클라임웍스의 오르카 운영은 DAC 비판 진영에서도 진정성을 인정할 정도다. 설비를 전적으로 재생에너지로 가동하고, 포집한 탄소를 전부 지층에 저장하고, 탄소 포집량과 배출량을 외부 기관에서 검증받는다. 가동 에너지 일부를 화석연료로 조달하거나 포집한 탄소로 연료를 만들어 다시 배출하는 일이 잦은 경쟁업체들과는 차원이 다른 철저함이다.

오르카의 성공으로 DAC 증설도 탄력을 받은 분위기다. 클라임웍스는 오르카 인근에 연 3만4,000톤의 탄소를 포집할 수 있는 '맘모스'를 짓고 있다. 캐나다의 DAC 업체 카본엔지니어링은 미국 텍사스에 연 100만 톤 규모의 플랜트를 지을 계획을 세웠다.


“DAC로 효과 보려면 미국 1년치 전기 필요"

오르카의 뒷면. 공기를 끌어당기는 송풍 장치가 설치돼있다. 안재용PD

그럼에도 DAC 회의론은 꾸준히 제기된다. DAC가 기후위기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려면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DAC의 낮은 포집 효율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문제다. 미국 기후 연구·컨설팅 회사 클라이밋 어드바이저는 국제에너지기구(IEA)의 기대처럼 DAC가 2050년까지 탄소 9억8,000톤을 포집하려면 3,580테라와트시(TWh)의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이는 2017년 미국의 연간 에너지 사용량(3,780TWh)과 유사하다.

이만큼의 에너지를 아이슬란드처럼 재생에너지로 조달하기란 현재로서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고 화석연료에 의존할 경우 포집한 것보다 많은 탄소가 배출되는 역설적 상황을 맞게 된다. 미국 국립과학원에 따르면 DAC 가동 에너지를 모두 화석연료로 조달하면 탄소 1톤을 포집하는 데 0.29~0.74톤의 탄소가 배출된다. 미국 뉴스쿨대 사회연구소는 포집된 탄소를 수송·저장하는 과정까지 고려하면 탄소 배출량이 1톤을 넘어서 대기 중 탄소가 순증한다고 분석했다. 지열에너지를 쓰는 덕분에 탄소 배출량이 0.1톤에 못 미치는 오르카와는 뚜렷이 대비된다.

미국 뉴욕 맨해튼 야경. 게티이미지뱅크

이는 DAC 비용 문제와 직결된다. IEA는 DAC가 경제성을 가지려면 포집 단가가 100달러(13만 원) 미만이어야 한다고 판단한다. 재생에너지 등 다른 탄소 저감 수단, 탄소 배출권 가격 등과 비교했을 때 가격 경쟁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DAC의 포집 단가는 1톤당 250~600달러(32만~78만 원), 저장 비용까지 포함하면 600~1,000달러로 알려져 있다. IEA는 2030년에 DAC 포집 단가가 100달러까지 떨어질 거라고 보지만, 이런 예측에는 풍부한 재생에너지, 강력한 재정 지원 등 전제 조건이 많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연구에 따르면 100달러 단가 목표를 80~90% 확률로 달성하려면 10억~100억 달러 규모의 재정 지출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DAC 포집 용량이 단기간에 급증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IEA에 따르면 DAC로 포집되고 있는 탄소는 연 1만 톤 수준이고, 지금까지 나온 설비 계획까지 합쳐도 100만 톤 수준이다. 준 세케라 미국 뉴스쿨대 연구원은 "인간이 매년 탄소 400억 톤을 배출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100만 톤은 사실상 무의미한 수치"라며 "재생에너지 등 감축 효과가 검증된 부분에 자원을 투입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지적했다.


740만 톤 포집한다는 한국, 전력 조달은 어떻게?

2021년 윤순진 전 탄소중립위원회 민간위원장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위원회(안)를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정부는 2050년까지 DAC로 탄소 740만 톤을 포집한다는 계획이다.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2개 안 가운데 B안에 담긴 내용이다. 2050년까지 내연기관차를 전부 전기·수소차로 바꾸지 못한 상황을 가정하면서 수송 부문에서 배출되는 탄소 740만 톤을 DAC로 포집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부 이행 계획은 전무하다.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가 작성될 당시 수송 부문을 논의한 녹색생활분과 위원이었던 송상석 녹색교통운동 정책위원장은 "DAC가 전력 수요나 비용 검토 없이 시나리오에 포함됐다"고 했다. 대중교통 활성화, 전기차 보급 확대 등 대책을 망라해도 수송 부문 탄소중립은 불가능하다는 산업계 의견에 "DAC로 흡수할 수 있다"는 막연한 주장이 반영됐다는 것이다.

2050탄소중립위원회가 2021년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발표하며 제시한 '산출 근거' 자료. DAC로 740만 톤을 제거하겠다는 내용(빨간 네모)이 담겼으나 세부 이행에 대한 근거는 전혀 없다. 시나리오 캡처

시나리오 B안의 전력 예측치를 보면 DAC 활용 가능성은 더욱 낮아 보인다. B안은 2050년 사회 전체 전력 수요가 2.2~2.3배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재생에너지 비율은 60.9%로 A안(70.8%)보다 9.9%포인트 낮게 잡았다. 전체 전력 생산량도 1,208.8TWh로 A안보다 낮다. 전력 수요는 늘어나는데 재생에너지 생산은 줄어드는 상황을 가정하며 DAC 도입을 설계한 것이다. 송상석 위원장은 "국내 현실에서 DAC가 탄소중립 수단으로 역할을 해낼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진단했다.

※본 기획물은 한국언론학회와 SNU팩트체크센터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올푸스= 김현종 기자 bell@hankookilbo.com
올푸스= 안재용 PD anp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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