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제인 구달 "기후위기·동물멸종·각국 보수화 심각… 그렇다고 굴복해선 안 돼"

고은경 2023. 7. 10.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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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와 새싹 한국지부 초청으로 방한
세계적 동물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제인 구달이 8일 경기 파주시 파평면 평화도서관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모든 이가 매일 각자의 선택을 통해 세상을 조금씩 바꿀 수 있다"고 밝혔다. 파주=하상윤 기자

8일 경기 파주시 파평면 작은 도서관인 평화도서관에 술렁임이 일었다. 세계적 동물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제인 구달(89)이 등장해서다. 구달은 도서관 관계자, 시민들과 눈을 맞추며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 차분한 분위기였지만 고령의 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활기가 넘쳤다.

2017년 이후 6년 만에 한국을 찾은 구달은 마지막 일정인 경기도 주최 DMZ 오픈 페스티벌 행사에서 그가 설립한 풀뿌리 환경 운동단체 '뿌리와 새싹'의 한국지부 회원들과의 만남을 앞두고 이곳을 방문했다. 구달은 한국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세상은 전보다 암울하지만 그렇다고 굴복해선 안 된다"며 "모든 사람들이 매일 각자의 선택을 통해 세상을 조금씩 바꿀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상황, 전보다 악화됐지만 인간 지성으로 해결 가능하다"

제인 구달이 8일 경기 파주시 문산읍 장산전망대에서 열린 DMZ 오픈 페스티벌 행사에 참석해 항상 가지고 다니는 침팬지 인형 '미스터 에이치(H)'를 안은 채 뿌리와 새싹 회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파주=하상윤 기자

구달은 "숲이 파괴되고 동식물이 사라지고, 기온은 상승하는가 하면 각국에 (보전보다는 개발을 우선시하는) 보수 성향의 정부가 들어서는 등 전보다 상황이 악화됐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도 "전 세계를 돌아다니다 보면 파괴된 자연을 복구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많은 이를 만난다"며 "인간은 지성을 활용해 재생에너지 개발 등 지속 가능한 발전으로 해결책을 찾아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내용은 10일 한국에서도 출간된 '희망의 책'에 담겨 있다.

구달은 공장식 축산 문제도 거론했다. 그는 "이제 밀집사육이 단순히 동물뿐 아니라 토양, 생물 다양성, 우리의 미래에까지 악영향을 미치는 것을 점점 많은 이들이 알게 됐다"며 "축산업은 가능한 한 줄이되 (환경을 최대한 보전하면서 농작물을 재배하는 방식인) 재생농업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인 구달이 7일 오후 서울 용산어린이정원 용산서가를 찾아 윤석열 대통령 부부 반려견 새롬이와 입 맞추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인터뷰 당일 초복(11일)을 앞두고 서울 도심에서 개 식용 찬반 맞불 집회가 열리고 있음을 전하며 해묵은 갈등에 대한 해결책을 물었다. 구달은 "반려동물과 함께 자란 어린이들은 앞으로 개를 먹지 않을 것"이라며 "구체적인 갈등 내용까지는 모르지만 예컨대 구조견, 안내견 등 도우미개들의 활약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개를 먹는 사람들의 선택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구달은 개 식용뿐 아니라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도 위와 같은 방식을 택한다고 했다. 상대방을 공격하거나 비난하는 대신 이야기를 들려주며 설득하는 것이다. 그는 "예컨대 돼지가 똑똑한 동물임을 알리기 위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그림을 그리는 돼지 '피그카소'(pigcasso)의 모습을 보여준다"며 "이를 본 사람들은 '당신이 싫다, 이제 베이컨을 못 먹게 됐다'는 반응을 보인다"며 웃었다. (실제 피그카소의 작품은 수천만 원에 팔릴 정도로 인기다.)

제인 구달이 8일 경기 파주시 평화도서관에서 본지 기자(왼쪽 첫 번째)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파주=하상윤 기자

구달은 국내 수족관 돌고래와의 인연이 깊다. 2012년에는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생명다양성재단 대표)의 주선으로 서울대공원 남방큰돌고래 '제돌이'가 방류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지난해 10월 방류됐다 실종된 남방큰돌고래 '비봉이'에 대해 묻자, 그는 돌고래 전문가는 아님을 전제로 하면서도 "(48일이라는) 훈련기간이 충분하지 않았다"며 "동물을 자연으로 돌려보낼 때는 철저히 준비하고 매우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는 이어 "제인구달연구소에서 침팬지를 야생으로 돌려보낼 때 단계적으로 준비한다"며 "야생에서 적응하지 못할 것 같으면 보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구달은 뿌리와 새싹 회원들을 향한 애정도 드러냈다. 그는 "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에 열정을 갖고,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선택하고 있다"며 "이 같은 힘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전했다.


"매일 누구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사회 바꿀 수 있어"

제인 구달(오른쪽) 박사가 8일 경기 파주시 문산읍 장산전망대에서 최재천(왼쪽) 이화여대 석좌교수, 뿌리와 새싹 회원들과 함께 비둘기를 날리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파주=하상윤 기자

구달은 한국일보와의 인터뷰 이후 경기 파주시 문산읍 장산전망대를 찾아 뿌리와 새싹 12개 팀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질문에 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뿌리와 새싹은 1991년 탄자니아에서 12명의 학생으로 시작됐다.) 그는 "침팬지를 연구할 당시 인간과 동물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의견에 다른 과학자들이 쉽게 동조하지 않았다"며 "시간이 지나면서 사실을 알게 됐고, 그들은 서서히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모두가 과학자일 필요도, 전문가일 필요는 없다"며 "매일 누구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변화는 점진적으로 일어난다"고 재차 강조했다.

구달은 연구를 포기한 적이 없냐는 질문에 "반려견 러스티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아프리카에서 연구하지 않고 러스티와 함께 지냈지만 연구를 한번도 포기한 적은 없다"고 답했다. 이어 러스티를 기억하는 법에 대해 "러스티뿐 아니라 내게 다가왔던 침팬지 데이비드 등은 늘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구달은 뿌리와 새싹 회원들과 함께 생태평화를 기원하는 비둘기 날리기 행사에도 참석했다. 이 행사에서는 실제 비둘기가 아닌 버려진 침대 시트로 만든 비둘기 모형을 들고 뛰면서 날아가는 모습을 표현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과 우크라이나 전쟁을 거론하며 "우리 역시 환경파괴라는 위협을 받고 있다"며 "중요한 건 영국과 우크라이나처럼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갖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DMZ는 사람 개입이 없어 동물이 돌아오고 환경이 회복된 사례"라며 "이곳으로 오면서 오래된 벙커가 수풀에 파묻힌 모습을 봤는데 다시 한번 자연의 위대한 회복력을 실감했다"고 전했다. 이어 "언젠가 남북한에서 평화의 비둘기를 날려 중간 지점에서 만나고, 생태평화를 위해 남북이 협력할 수 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제인 구달(맨 앞)이 8일 경기 파주시 문산읍 장산전망대에서 이 땅에서 자취를 감춘 최상위 포식자들의 귀환을 상징한 행진을 하고 있다. 파주=하상윤 기자
제인 구달이 8일 경기 파주시 장산전망대에서 뿌리와 새싹 회원들과 함께 '우리는 할 수 있다, 할 것이다, 해야만 한다'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파주=하상윤 기자

구달은 한낮 야외에서 4시간 가까운 일정을 끝까지 소화하는 열정을 보였다. 특히 뿌리와 새싹 12개 팀 가운데 첫 번째 팀이 기념촬영을 하지 못한 것을 기억하고, 먼저 촬영을 제안하기도 했다.

구달은 기자에게 "부정적이고 어두운 뉴스보다 사람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뉴스를 보도해줬으면 좋겠다"며 미디어의 역할에 대해 특별히 주문하기도 했다. 자기 전 어떤 생각을 하느냐고 묻자 "일"이라며 "할 일이 너무 많아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답했다. 또 체력의 비결에 대해서는 "적게 먹는 것과 채식"을 꼽았다.

△제인 구달은

침팬지 행동 연구의 최고 권위자로 다른 영장류도 인간처럼 도구를 사용하고 의사소통 체계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최초로 밝혀낸 것으로 유명하다. 1977년 '제인 구달 연구소(The Jane Goodall Institute)'를 세워 야생동물들이 처한 실태를 알리고, 서식지 보호와 처우 개선 활동을 펼쳐 왔다. 1991년에는 환경과 동물, 이웃을 돕는 풀뿌리 환경운동 단체인 ‘뿌리와 새싹’을 추진해 현재 약 140개국에 8,000개 이상의 소모임이 활동하고 있다.

고은경 동물복지 전문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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