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아이를 부모 소유물로 생각… 이젠 영아 인권 재정립할 때”
임신 초부터 사회가 영아 관리 시도
감사원 감사로 드러난 ‘사라진 아기 2236명’ 사건 이후 전문가들은 “한국의 영아 인권을 재정립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생후 1~2년 뒤에 출생신고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장티푸스 등 질병으로 일찍 사망하는 영아가 많았기 때문이다. 영아 사망률은 1970년 영아 1000명당 45명으로 2021년의 1000명당 2.4명보다 20배 가까이 높았다. 노혜련 숭실대 교수는 “한국은 아동을 독립한 존재로 인정하지 않고 부모의 일부 혹은 소유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영·유아 인권 수준이 낮은 편”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가부장적 문화도 영아 인권 신장을 가로막는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대표 사례가 형법의 영아살해죄다. 이 죄는 ‘직계존속이 치욕 은폐 등을 위해 영아를 살해한 때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1953년 만들어져 한 번도 개정되지 않았다. 사형까지 가능한 일반 살인죄보다 형량이 약하고 재판에선 집행유예가 나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영아살해죄는 예컨대 손녀가 부적절한 관계로 아기를 출산했을 경우, 손녀의 할아버지가 ‘가문의 치욕’이라며 아기를 살해하는 걸 봐주는 측면이 있다”며 “시대착오적 조항으로 폐지해야 한다”고 했다.
이런 관습의 영향으로 한국은 신생아의 출생신고를 부모에게만 맡겨 놓고 있었다. 국가가 손 놓고 있는 사이 ‘사라진 아기’가 속출하고 영아 거래와 심지어 살해까지 벌어진다는 지적이다. 반면 미국·영국·독일 등 주요국들은 정부 인력이 출생 병원에 직접 가서 아이를 확인하고 직권으로 출생 등록을 한다.
정재훈 서울여대 교수는 “독일은 공공에서 1300여 곳의 임신 갈등 상담소를 만들어 출산을 고민하는 미혼모 등에게 상담과 지원을 해준다”며 “한국도 아기가 임신부 배 속에 있을 때부터 국가와 사회가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식 임신 상담소를 대폭 설치하면 위기의 산모들이 아기를 직접 기를지, 사회에 위탁할지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되고 유기 우려가 있는 영아들이 사회 관리망에 일찍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익명 출산을 허용하는 보호출산제 도입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윤신 조선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 2013년부터 2021년까지 영아 유기 사건 판례 20건을 분석한 결과, 가장 많은 유기 이유는 ‘출산 사실이 알려지는 게 두렵다’(12건)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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