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IAEA 대표를 당혹스럽게 만든 대한민국의 수준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의 한국 방문과 체류 과정은 낯부끄러운 장면의 연속이었다. 그로시를 태운 항공편은 7일 밤 김포공항에 내렸지만 일행이 공항을 나간 것은 2시간이나 지나서였다. 시위대가 그로시가 나갈 귀빈실 문 앞을 지키며 “그로시 고 홈” “100만 유로 받았냐”라고 외쳐댔기 때문이다. 그로시 일행은 귀빈실 말고 공항 2층을 통해 나가려다가 그곳에서도 시위대에 막혔다. 결국 시위대 눈을 피해 몰래 빠져나갔다. 그로시가 머무는 호텔 밖에서도, 그가 박진 외무장관을 만났던 외교부 공관 앞에서도 시위가 벌어졌다.
9일 오전엔 그로시가 민주당 초청으로 국회를 방문했다가 민주당 지도부로부터 “중립성을 상실한 일본 편향 검증” “일본 맞춤형 부실 조사”라는 거친 말을 들어야 했다. 그로시는 면담 초반엔 메모도 하고 고개도 끄덕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당황한 표정으로 변했고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안경을 벗거나 한숨을 내뱉었다. 유엔 산하 국제기구 대표가 이렇게 면박을 당한 전례가 또 있을지 모르겠다.
IAEA는 후쿠시마 오염처리수 방류의 안전성을 검토하면서 한국 전문가를 분석에 참여시켰다. 한국은 IAEA가 채취 시료를 직접 검증해보라는 취지로 보내준 4국 중 하나였다. 국제기구가 엄격한 절차를 밟아 내린 결론이라도 꼭 그걸 수긍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전문가도 참여한 평가 보고서를 놓고 중립성·객관성이 없다고 따질 때는 어떤 근거가 있어야 한다.
광우병 때도 미국 쇠고기 수입국 중 유독 한국에서만 요란한 반대 시위가 벌어졌다. 이번에도 IAEA 평가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북한, 중국, 그리고 한국의 민주당 정도다. 그 외에 방류수를 우리보다 앞서 만나게 될 캐나다·미국·뉴질랜드·호주 등의 정부 기관들은 모두 “위험 수준에 훨씬 못 미친다” “오염의 증거가 없다”라고 하고 있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의원 11명이 다시 10일 일본을 방문한다고 한다.
나라가 정상의 길을 가려면 이성과 상식, 과학이 통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 과학적 증거와 사실이 나오면 그걸 기반으로 최소한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국제기구가 2년 검증 끝에 확인한 내용을 다수 의석 정당이 폄하하면서 자기편 국민의 감정적 반응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 현재 상황이다. 광우병, 세월호, 천안함, 사드 전자파, 청담동 술자리 등 괴담 정치가 반복되면서 국민 다수가 이젠 피로를 느끼고 있다. IAEA 대표를 대하는 상식 밖의 태도를 목격한 국제사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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