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모든 아동이 안전한 사회
태어났지만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갓난아이의 비극적인 소식이 연일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감사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8년 동안 의료기관에서 출산한 기록은 있으나 출생신고가 안 된 갓난아이의 숫자가 2236명이었다. 보건복지부와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사라진 아이들에 대한 전수조사를 진행 중인데, 이번 달 초까지 소재가 파악되지 않거나 범죄 혐의가 있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사건이 총 867건에 달한다.
경찰청 보도자료에 따르면 지금까지 사망이 확인된 아이가 27명, 여전히 소재를 확인 중인 아이도 677명이다. 태어났지만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아이들의 죽음 앞에 우리는 제대로 된 대안을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다.
이를 위해서는 원인을 차분하게 분석하고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분명한 원칙을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생명권은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인권이며, 한번 침해되면 회복이 불가능하다. 생명을 지키는 안전망에 어떠한 예외도 있어서는 안 된다. 보기 좋은 정책을 백화점식으로 나열하기보다, 모든 아동이 안전하게 태어나 자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원칙 아래 체계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먼저, 태어난 아동은 빠짐없이 등록되어야 한다. 8년 동안 2000명이 넘는 아이들이 사라졌지만 그동안 정부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제대로 파악조차 하지 못했다. 태어난 아동이 사회적 안전망에 등록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엔 아동권리협약을 비롯한 국제인권규약에서도 모든 아동이 태어난 즉시 등록되고, 성명을 가지며, 국적을 취득할 권리를 아동인권의 출발점으로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등록’이란 태어난 아동이 독립적인 사회의 구성원으로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것뿐만 아니라 정체성을 가지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자신이 태어난 가족의 구성원으로 등록되는 것을 모두 포함한다.
다행히 지난달 국회에서 ‘출생통보제’를 포함한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앞으로 1년 뒤에는 의료기관에서 출생하는 아동의 출생정보는 자동적으로 지방자치단체에 통보되고, 태어난 아동이 1개월 이내에 출생신고가 되지 않으면 신고의무자에게 출생신고 통지를 하고, 이후 법원의 허가를 받아 직권으로 출생신고를 할 수 있게 됐다. 아동인권 보장에 중요한 주춧돌이 뒤늦게나마 놓인 셈이다.
그런데 최근 정부는 출생통보제와 함께 ‘보호출산제’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출산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는 임신부들이 병원을 피해 위험한 출산을 시도할 수 있으므로 부모가 익명으로 아이를 출산하는 제도가 함께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모의 정보를 감춰주는 보호출산제는 아동의 제대로 된 출생등록권을 침해하고, 아동 유기를 조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현실의 비극이 반복될 우려가 있다. 보호출산제로 태어난 아동은 결국 입양 절차로 연계되는데, 이는 원가정에서 양육될 아동의 권리를 침해한다. 아직 출생통보제가 시행도 되기 전에 법 밖의 예외를 정하는 것은 너무 성급하다.
좋은 약도 섞어 쓰면 효과가 없다. 지금은 사라진 아동에 대한 전수조사를 통해 그 이유를 심층 분석하고, 사회적 어려움에 처한 임산부를 보호하기 위한 논의에 집중할 때다.
조영관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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