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시 총장 “후쿠시마 오염수보다 북핵을 더 걱정해야”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에 축적된 오염수 처리·방류의 안전성 보고서 설명을 위해 지난 7일 방한한 라파엘 그로시 IAEA(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은 8일 서울 종로구 한 호텔에서 본지와 만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한 한국인들의 걱정과 반발을 이해한다. 몇 년이 걸리더라도, 이 우려가 잦아들 수 있도록 대중과의 소통을 계속 강화해 가겠다”고 했다. IAEA는 “도쿄전력이 마련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시설이 국제 기준에 들어맞는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지난 4일 일본에서 발표했다. 이후에도 한국에선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반대 여론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아르헨티나 외교관 출신인 그로시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주재 대사, 핵공급그룹(NSG) 의장 등으로 활동한 핵 비확산 분야의 전문가이기도 하다. 북한 핵 시설을 한 차례 방문하기도 했다. 그는 “그 어떤 검증도 받지 않는 북한의 핵 개발 시설이야말로 국제사회엔 매우 큰 위협”이라며 “한국인들은 북핵이라는 ‘나쁜 현실’에 익숙해져 큰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있지만 나는 우리가 모두 여기(한반도)에서 일어나는 일에 훨씬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후쿠시마보다는 북핵 문제를 더 걱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로시 사무총장은 “불신은 모호함에서 비롯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알기 쉽게 설명하면 2011년 대지진 발생 후 안전을 위해 냉각수 투입이 꼭 필요했고, 이제 그 냉각수가 많이 쌓여 바다로 흘려보낼 필요가 있으며, 처리를 거쳐 방류할 물은 여러 기관이 동의한 국제적 기준에 따르면 바닷물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이 내린 결론”이라고 말했다.
그로시는 지난 7일 입국해 박진 외교부 장관, 유국희 원자력안전위원장 등을 만났고 9일 오후 출국했다. 이후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관련 IAEA 보고서와 관련한 설명을 위해 뉴질랜드 및 태평양 도서국들을 찾을 예정이다. (그로시는 오염수와 관련해 중립적 용어인 ‘워터<water·물>’란 단어를 썼다. 한국 정부의 공식 표기에 따라 기사에선 이를 ‘오염수’라 표기했다.)
“불신은 모호함에서 비롯한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방류 반대 시위대와 만났는데.
“놀랍지 않았다. 일부 사람이 이에 대해 깊은 반감을 가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여기 온 이유 중 하나가 그 때문이다. 이(오염수 처리·방류) 과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실제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에 대해 잘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시위대가 반가웠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 아닌가. 시위와 반대 의견이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순 없다.”
-앞서 일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대중이 두려움을 갖는 것은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는데.
“맞는다. 커다란 탱크의 물에 뭔가 나쁜 (방사성) 물질이 들었는데, 어떤 절차를 거쳐서 그것을 바다로 흘려보내겠다고 하면 일반 대중은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 계속 설명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라고 믿는 것이다. 선의의 우려, 정당한 우려를 가진 사람이라면 우리의 이야기에 열려 있으리라고 확신한다.”
-야당인 민주당에서 오염수 방류 반대 청원을 시작했는데 이 또한 합리적 대응이라고 보나.
“한국 내부 정치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많은 관심을 끌 수밖에 없는 사안이라 정치인들이 여론을 결집하기 위해 이 문제를 이슈로 삼는 것 또한 이해할 수 있다. 정치엔 여러 의견이 있지만 진실은 오로지 하나뿐이다. 대화 상대마다 특정 사항에 대해 강조하는 바가 다를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기술적인 측면이 더 중요하고, 어떤 사람은 우리가 왜 이런 활동을 하는지 동기를 더 궁금해한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이 무엇이든 최대한 직설적인 방식으로 답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오염수를 마셔서 안전성을 증명하겠다는 정치인·학자들이 있다. 정말 그 정도로 안전한가.
“당연하다. 후쿠시마에서 방출될 물에 포함된 (방사성 물질) 삼중수소 등은 모든 국제적인 기준을 넉넉히 충족한다. (식탁 위의 물을 가리키며) 저기에도 삼중수소는 들었다. 물론 나도 마실 수 있고, 그 안에서 수영도 할 수 있다.”
-IAEA의 독립성을 의심하는 목소리도 나오는데.
“IAEA에 일본 분담금이 많다거나 내가 일본에서 100만유로를 받았다는 둥 보도를 보고 당황했다. 우리의 조사는 미국·프랑스·한국·중국 등의 여러 신뢰할 만한 연구소에 시료를 보내 독립적으로 분석한 결과를 취합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여러 전문가가 결과를 독립적으로 도출하고 비교한 결과이고 모든 절차는 매우 투명하게 진행됐다.”
“IAEA 조사, 매우 투명하게 진행”
-해류 흐름에 따라 후쿠시마의 바닷물이 한국보다 먼저 도착한다는 미국·캐나다 여론은 오히려 조용한 것 같은데.
“일단 해류의 향방을 따질 필요가 없다. 이는 방류된 물이 오염돼 위험하다고 여길 경우에 필요한 이야기이다. (IAEA 발표대로) 방류되는 물이 안전하다면, 해류가 어디로 가는지는 무의미하다. 후쿠시마에서 방류될 물과 비슷한 물은 지금도 한국·중국·캐나다·프랑스 등 세계 모든 원자로에서 매일 바다로 흘러들고 있다. 모두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수준이기 때문에 대부분이 신경 쓰지 않는 것이다.”
-오염수 처리 시설이 계획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대중의 그런 우려를 알고 있다. 그렇기에 IAEA가 마지막까지 현장에 남아 있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매우 엄밀하게 모든 상황을 감시할 예정이다.”
-핵 비확산 전문가로서 북한의 핵 개발 상황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나.
“매우 걱정스럽다. IAEA는 2009년에 북한으로부터 ‘사찰단은 떠나라’는 통보를 받았고 이후엔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이후 북한의 핵 개발 프로그램은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했고 시설도 늘렸다. 언제든 핵실험을 할 수 있는 상황이다. 한국과 국제사회 모두,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많은 한국인이 북핵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다.
“한국은 북핵 개발과 관련해선 최전선에 있는 나라다. (일본 동부에 있는) 후쿠시마 원전 문제와 정반대의 상황이란 뜻이다. 여기(한반도)에서 일어나는 일에 훨씬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북한이 IAEA의 방북을 다시 허락할 조짐은 없나.
“북한은 국제사회의 비확산 체제 밖에 있어서 예측이 불가능하다. 북한의 핵 개발은 무기로서의 위협 외에도 안전장치가 미흡하고 기준도 모호해 문제가 심각하다. 어떤 형태로든 평양과 IAEA가 대화를 복원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어쩌면 지금 가장 시급한 문제가 이것이다.”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은
외교관 출신 핵 비확산 전문가… 북핵 시설도 방문
62세, 아르헨티나 외교관 출신. 1957년 설립된 IAEA의 여섯 번째 사무총장이다. 2019년 2월에 임기를 시작했고 지난 3월 사무총장에 재임명돼 2027년 12월까지 임기가 연장됐다. 외교관 시절 핵 비확산과 관련한 많은 경력을 쌓았다. 2002~2007년엔 화학무기금지기구(OPCW) 사무총장을 지내며 북한 핵 시설을 한 차례 방문했다. 2014~2016년엔 핵공급국그룹(NSG) 의장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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