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천 칼럼] 생태경제학, 마르크스 이후의 소디

기자 2023. 7. 10.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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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경제학 고전을 새롭게 읽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단순치 않은 문제를 단순화하거나 아전인수식으로 읽으면 무리가 따른다. 경계해야 할 점이다. 그러면 생태경제학의 어떤 고전이 특별히 주목할 만할까. 기후위기를 초래한 사회적 물질대사의 균열 문제를 생물리학적 과정 자체만 고립적으로 떼내어보지 않고 자연을 전유하는 사회경제형태, 즉 자본주의 형태와 시공간적 비용 전가, 생태·사회적 갈등을 함께 통합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렇게 가르치는 사회생태 경제학 고전에 주목한다. 안전한 지구, 그다음에 정의로운 지구가 아니라 모두를 위한 지구에서 안전과 정의는 분리 불가능하다.

이병천 강원대 명예교수·지식인선언네트워크 공동대표

사이토 고헤이의 인기가 대단한데, 이분은 탈성장 코뮤니즘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성장주의와 자본주의를 일심동체로 조준하고 근본 대안을 제시하니 단순명쾌하다. 사이토 고헤이가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이유이겠다. 그런데 그가 소환한 고전이 만년 마르크스가 러시아혁명 문제와 관련해 견해를 밝힌 편지다(자술리치에게 보낸 편지).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문명화 사명을 설파한 이전 견해와 달리 러시아가 자본주의를 건너뛴 혁명의 길로 가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 편지를 탈성장 고전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 내가 볼 때는 억지다. 문제의 편지에서 마르크스는 선진국으로부터 생산력 이식이 필수적 전제라고 말했다.

또 탈성장 코뮤니즘은 시원하지만 복잡한 문제를 과도하게 단순화한다. 성장주의와 자본주의, 불평등이 불가분하게 엮여 있는 건 맞지만 어떤 식으로 엮여 있는지, 그 실타래를 어떻게 풀지는 간단하지 않다.

내게 사회생태 경제학의 고전 한 권을 말하라면 프레더릭 소디가 쓴 <부, 가상의 부 그리고 부채>(1926)라는 책을 꼽겠다. 소디 이후에는 베블런을 계승한 칼 캅의 <영리기업의 사회적 비용>(1950)이 고전 반열에 올라 있다. 소디는 노벨 화학상 수상자이지만 생태경제학에 대한 그의 기여는 오랫동안 망각되었다. 1980년대에 허먼 데일리(1980), 마르티네즈 알리에르(1987)에 의해 복권됨으로써 주목받게 되었다.

소디는 자신의 선학으로 마르크스보다 존 러스킨을 더 중시했는데 러스킨의 한계도 넘어갔다. 그는 자본주의 경제를 삼층구조로 파악했다. 맨 위층이 ‘가상적 부(virtual wealth)’의 경제, 그 아래 2층이 ‘실질적(생산적) 부’의 경제다. 맨 아래가 위의 두 층을 떠받치며 한계짓는 생물리학적 토대다. 엔트로피 법칙에 종속되는 에너지와 물질의 유량경제, 즉 자연과 사회, 사회 간, 사회 내에 에너지와 물질이 흘러가는 과정인 사회적 물질대사다. 삼층구조론 안으로 들어가면 흥미진진한 게 많지만 간략히 그 의의에 대해 언급한다.

첫째, 소디는 게오르게스쿠-뢰겐보다 약 50년 전 열역학 법칙에 대해 체계적으로 말했을뿐더러 뢰겐과 달리 사회적 물질대사 균열을 복층적 자본주의 성장 체제와 통합적으로 파악하는 인식과 이론틀을 보여주었다. 둘째, 가상경제의 실체는 화폐기반 부채경제, 채권자-채무자 관계인데 그 핵심은 부의 일반적·추상적 형태이자 청구권인 화폐의 소유자가 이를 부채로 전환시켜 미래소득 선취권을 갖는 것이다. 불로소득을 이자율로 나누고 100을 곱한 값이 자본으로 정의된다. 민간은행은 부채경제의 핵심기둥이다. 채무자와 공동체를 희생시키는 불로소득 청구권 위에 유산계급과 유한계급이 서식하고 번영을 누린다.

셋째, 소디의 삼층구조론에 따르면 생태위기 요인은 이중적인데 위기는 생산적 화석 자본주의뿐만 아니라 가상적 경제층위에 의해서도 야기되고 심화된다. 실질경제는 열역학 법칙에 종속되는 반면 가상경제는 무한증식의 수학 법칙을 따르는 모순적 거시동학이 작동한다. 가상경제 팽창은 실질경제와 채무자, 무산자에 불로소득을 청구, 추출하면서 그 지속 가능성을 위태롭게 한다.

소디는 가상적 부채경제의 자체 모순(금융위기)뿐만 아니라 미래를 식민화하는 불로소득주의와 생태적 한계의 모순관계를 탁월하게 밝혔다. 이는 피케티가 말한 r(자본수익률)>g(경제성장률) 부등식보다 더 근원을 파고든 자본주의의 근본 모순론이다.

넷째, 소디는 화폐개혁 문제에도 집중했다. 부채경제의 지배동맹자인 민간은행의 신용창출권을 폐기하고, 화폐 발행을 공공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오늘날 화폐민주화론의 선구적 논의다. 소디는 죽었지만 그의 사회생태 경제학은 펄펄 살아있다. 소디라면 범죄적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도 결사 반대했을 것이다.

이병천 강원대 명예교수·지식인선언네트워크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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