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좋은 시절은 ‘그 이후’를 준비해야 할 시기
기존산업 고도화에 더해 차세대 전략산업 심혈을
숫자가 모든 걸을 보여주지는 않고, 때로는 현혹하기도 하지만 민선 8기 출범 이후 지난 1년간 경남의 상황을 보여주는 대부분 숫자는 무척이나 양호한 편이다. 경제 지표로만 좁혀 본다면 상황은 더욱 확연하다. 한동안 다른 지역에 뒤지던 경남의 경제 지표들은 지난 1년간 국내외 경제적 상황이 악화하는 동안 오히려 반등했다. 민선 8기 취임 직후인 지난 8월 경남 무역수지는 6억80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그 두 달 뒤인 지난해 10월 흑자로 돌아선 무역수지는 지난 6월까지 8개월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특히 5월에는 전국 무역수지가 21억17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하는 상황에서 경남은 12억9900만 달러 흑자를 나타내 국내 무역수지 적자 규모를 줄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지난 4월 12억1600만 달러로 올해 최대 규모를 기록한 데 이어 곧바로 그 기록을 넘어선 것이다.
지역 경제가 살아나니 고용과 관련한 지표들도 동반 상승한다. 경남 5월 고용률은 2004년 4월 이후 최고치를, 실업률은 2015년 이후 5월 기준 최저치를 기록했다. 제조업 생산지수는 크게 뛰고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크게 떨어져 안정세를 보인다.
지역 경제 지표 호전세를 이끈 주역은 뭐라 해도 수출과 내수에서 호황을 맞은 방산과 조선, 원전 등 지역 주력 산업들이다. 특히 지난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주가를 올리는 지역 방산 분야의 성장은 눈부시다. 지난해 10월에는 한 달 동안 폴란드에 대한 무기 수출이 3억 달러에 이르러 방산 수출 성장을 주도했다. 이는 올해에도 이어져 지난 4월에는 폴란드에 대한 수출이 467.5%나 증가하기도 했다. 이를 1년 전 같은 달과 비교한다면 무기류가 6469.8%라는 기록적인 수출 증가세를 보여준 것을 비롯해 승용차 수출이 466%, 선박이 183.5%, 기계 52.6% 등 지역 주력산업의 생산품이 모두 동반 상승했다.
그동안 조선 산업에 크게 의존하던 경남의 수출은 최근 수년간 코로나19 상황을 겪으면서 전 세계적인 경기 하락으로 선박 발주가 급감하고 이에 따라 선가가 함께 떨어지는 상황을 맞았다. 그 때문에 이 시기 경남 조선업계는 선가 하락과 수출 물량 감소의 이중고를 겪었다. 그러나 코로나 상황이 지나며 수주량과 선가가 빠르게 회복세를 보인다. 선박 수주에서 인도까지 2~3년의 시차가 있는 것을 고려하면 올해만 지나면 가장 힘든 시기는 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어려움을 겪던 지역 원전 산업도 정부 기조가 바뀌며 다시 성장세로 돌아섰다.
그래서 지금의 경남 경제 상황은 ‘꽃길’만 밟을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동전의 양면과도 같이 방산 원전 조선의 호황으로 맞은 좋은 시절은 이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상황이 급변한다면 언제라도 끝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고 항상 떠올려야 할 것이다. 만에 하나 수년 뒤 정부의 원전 육성 기조가 신재생 에너지 육성으로 바뀐다면, 전 세계적인 전염성 질환의 재유행으로 세계 경기가 하강하며 조선 산업의 활황세가 꺾인다면 얼마 전까지 겪었던 어려운 시절이 먼 과거의 일이 아닌 현재진행형이 될 수 있다.
방산만 하더라도 그렇다. 폴란드로 수출하는 FA-50을 생산하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나 K-2 전차를 만드는 현대로템, K-9 자주포의 한화디펜스 등 경남을 주축으로 하는 우리나라 방위산업은 지난 수년간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여줬다. 우리나라 방위산업이 세계시장에 내놓은 무기는 가격 대비 뛰어난 성능으로 경쟁력을 갖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큰 규모의 성장은 어려웠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방위산업은 이율배반적이다. 평화가 아닌 갈등과 분쟁을 바탕으로 성장하는 산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와 같은 수출 성장세를 마다할 수는 없지만 언제까지나 지구촌 분쟁과 갈등을 바랄 수는 없는 일이다. 전쟁과 평화의 시기에 따라 성장과 쇠락을 반복했던 미국 군수산업 도시는 반면교사다.
민선 8기 2년 차를 맞은 지금부터는 기존 주력산업인 조선 방산 기계 자동차 부문의 고도화에 더해 항공우주 산업을 비롯한 수소 바이오 등 차세대 전략산업에 더욱 심혈을 기울여야 할 때다. 이뿐만 아니라 관광과 소프트웨어 등 제조업을 이어 경남의 미래 경제를 이끌 산업 분야를 키우며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이는 당장 제조업의 성장에 안주하지 않고 시급하게 준비해야 할 일이다. 지역 대표 조선사인 삼성중공업과 한화오션은 세계적인 호황세에 힘입어 일찌감치 올해 목표치를 초과할 태세다. 하지만 불과 7개월 전인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거제시, 창원시 진해구, 통영시, 고성군 등 경남 4개 지역이 4년 넘게 고용위기지역에 지정돼 있었고 12월에 거제시의 지정이 4번째 연장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진규 편집국 경남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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