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소리] 네트워크가 싫어요?
네트워크 파티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한 것 같다. 나의 네트워크 기피 역사도 오래되었는데 돌이켜보면 단계별로 각각의 이유가 있었던 듯하다. 예비 창업 혹은 창업 초기의 시기야말로 참여할 수 있는 네트워크 행사들이 많고 그런 만큼 다양한 자리에 참석했었다. 네트워크 파티에 대한 인상은 대체로 이 시기에 형성된 것이다. 다만 그런 참석이 지속되지는 않았는데 그건 자아가 여물지 않았던 때문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내가 누구인지 명확하지 않은 상태로 다른 사람(기업)을 만나는 것이 부담스러웠달까. 조금 더 지난 후에는 현실적인 이유였다. 돈 벌기 급급해서 연대에 눈 돌릴 틈이 별로 없었다할까. 아이러니한 것은 그렇다고 자아 찾기가 해결이 된 것도 아니다.
네트워크가 부담스러운 데에는 개인적인 성장 단계에서 발생하는 이유 외에도 있다. 일단은 단어에서 오는 피로도도 있을 것이다. 지금도 크게 다를 바는 없지만, 한때 ‘메타버스’가 그랬던 것처럼 네트워크 지원사업, 네트워크 파티, 네트워크 구축사업, 네트워크 활성화 사업 등 사업명에 너도나도 ‘네트워크’를 붙이기 바빴으니 말이다. 거기다 그런 행사를 통해 얻은 긍정 경험이 많지 않다는 점도 있다. 돈도 없고 자아도 없는 시간 위로 그렇게 축적된 실패의 경험이 축적되고, 어느덧 7살이 된 지금. 여전히 자아는 오리무중이고 어제 벌어서 오늘을 살지만 어쩐 일인지 네트워크 해보고픈 마음이 든다.
협력이라 부르든 연대라 명하든 그 담론적 논의는 중요치 않다. 아무튼 대화를 나눌 상대가 필요해졌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네트워크의 필요성을 느낀 이유가 사뭇 재밌다. 나의 한계가 점점 명확해졌다는 데에 있다. 어떤 일을 오랫동안 하다 보면 계속해서 역량이 강화된다기보다, 그 역량의 경계가 자명해지는 것 같다. 노력으로 내가 무엇을 더 할 수 있겠고, 노력으로도 무엇을 더는 할 수 없을지와 같은 것 말이다. 말로만 떠들던 협력의 필요성이 가슴으로 느껴지는데,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서로의 한계점을 보완해 줄 누군가의 빈자리가 절실해진 것이다. 그리고 몇 가지 부분에서 다르게 접근한다면 그간의 네트워크의 과정이 더 편안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흔히 네트워크 장에서 겪는 실패의 경험을 방지하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할 수도 있다. 행사 이름에 ‘네트워크’라는 것을 못 박아 놓지 말자. 실패의 경험은 ‘네트워크’가 노골적인 목적이 되는 행사에서 만족스러운 네트워크를 맺지 못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 추구)라는 신조어가 있는 것처럼 그 숨겨진 목적이 교류라고 할지라도 다른 콘셉트와 이유를 명시한다면 참여자들에게 더 긍정적인 경험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운동회를 하든 바자회를 하든 하다못해 다도나 술 파티라고 적든 간에 ‘네트워크’라는 단어를 숨기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네트워크의 무게에 대한 부분도 있다. 누군가를 알게 되면 지속적이고 충만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부담을 느끼게 되는 경우이다. 예를 들어 작년에 만난 누군가에게 연락하고 싶은 일이 생겨도, ‘가만 보자, 이번 명절 때 인사도 못 드렸고 저번 행사 때도 못 가봤는데 오늘 내가 용건이 있다고 연락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며 선뜻 전화 버튼을 누르기가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일을 하다 보면 관계의 단계를 충분히 챙기지 못해도 연락을 하게 되는 상황이 생기고, 그런 상황이 생각보다 별스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물론 살뜰히 상대를 챙기면 좋겠지만, 3년 만에 일 때문에 연락이 와도 서로 반가운 마음으로 도움을 나눌 수 있는 관계도 있다는 것, 어떤 관계는 그 정도만 되어도 괜찮다는 것을 알고 있었더라면 지금보다 더 많은 협력 상대가 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성공적인 협력은 어려운 일이다. 계속되는 좌절에도 굴하지 않고 새로운 네트워크장을 찾아 나설 명분은 무엇일까. 네트워크 가능성의 핵심은 어쩌면 질보다 양에 있다. 누군가와는 5년 동안 말로만 나누던 사업 이야기가 다른 누군가와는 한 달 만에 실현될 수도 있다. 어제의 만남 때문에 오늘의 네트워크가 완전히 새로운 우주와의 만남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 많은 이들과 ‘가볍게 대충’ 만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어떤 네트워크가 우리 자신의 한계를 돌파하게 해줄지 기대하면서 말이다.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