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想과 세상] 아버지의 손
고구마밭에서 잡풀을 뽑았더니
초록의 피비린내가
목장갑에 배었다
잡풀이 생존하는 방법은
움켜쥐는 것뿐이다
줄기는 뿌리를 움켜쥐고 뿌리는
흙을 움켜쥔다
아버지는 손이 컸다
항상 움켜쥐는데도 끝내 뽑혔다
나는 그게 싫었다
고구마밭에 붉은 꽃이 피었다
살아남으려는 것은 서로 닮았다
괜히 눈시울이 붉어졌다
누군가를 닮아서 더 그렇다.
여영현(1964~)
목장갑을 낀 시인이 고구마밭에 난 풀을 뽑고 있다. 한 손으로 풀을 쥐고 호미로 뿌리까지 캐내야 하건만 목장갑에 “초록의 피비린내”가 밴 것으로 보아 힘으로 잡아뽑은 모양이다. 잡풀 중에 가장 무성하게 자라고, 뿌리가 깊은 것이 ‘바랭이’다. 볏과의 한해살이풀인 바랭이는 과수원이나 밭에 잘 자란다. 밟혀도 잘 죽지 않는 질기고도 무성한 풀이다. 시인은 “잡풀이 생존하는 방법”에 주목한다. “줄기는 뿌리”를, “뿌리는/ 흙을 움켜”쥐고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시인은 잘 뽑히지 않는 풀에서 아버지를 떠올린다. 살아보겠다고 항상 무언가를 꽉 움켜잡는데도 쉽게 뽑혔던 아버지. 다 뿌리가 약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하고 싶어도 비빌 언덕이나 뿌리내릴 곳이 있어야 하건만, 가진 거라곤 큰 손뿐이다. 없이 살아도 남에게 베풀며 살았다는 뜻이다. 사람의 손이 미치지 않으면 고구마는 잡풀을 이길 수 없다. 아버지도, 아들도 그런 고구마를 닮았다. 고구마밭에 핀 “붉은 꽃”은 아버지 생각에 붉어진 눈시울 탓이리라.
김정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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