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오염수 방류와 국가의 역할

박영환 기자 2023. 7. 1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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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 후미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 ‘처리수’를 도쿄를 통과하는 아라카와강에 방류할 수 있을까. 중국이 원전 사고로 발생한 오염수를 다핵종제거설비(ALPS·알프스)로 처리해 서해에 방류한다면 윤석열 정부는 받아들일까. 방사성 물질을 걸러내 안전하다며 원전 오염수를 태평양에 버리겠다는 일본과 이를 묵인하고 있는 한국 정부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박영환 정치부장

2011년 동일본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제1원전의 원자로가 파괴됐고 방사성 물질이 유출됐다. 원자로 안의 핵연료봉이 녹아내리는 노심용융이 발생하자 온도를 낮추기 위해 바닷물을 투입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최근에도 하루에 90t 정도의 오염수가 발생한다. 10여년간 오염수를 커다란 탱크 1000여개에 모아오던 도쿄전력은 이제부터 알프스라는 필터로 핵종을 걸러낸 후 태평양에 그냥 버리겠다고 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알프스 처리 오염수는 안전기준에 부합한다며 해양 방류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방류가 시작되면 30년 이상 오염수 수백만t이 공유지인 태평양으로 밀려들 것이다.

일본의 방류 계획과 IAEA의 보고서는 태평양 연안 국가 시민들의 우려를 불식시킬 만큼 완벽한가. 그렇지 않다. 알프스로 거르지 못하는 방사성 물질에 대한 안전성 논란은 여전하다. 특히 IAEA 보고서는 방사능이 수십년간 차곡차곡 쌓여 태평양 생태계에 미칠 영향은 분석하지도 않았다.

동일본대지진 당시 방사능 오염수 300여t이 유출된 사실이 2013년 드러나자 한국은 후쿠시마와 인근 8개 현의 모든 수산물 수입을 중단했다. 일본은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고 한국은 1심에서 패했다. 2심에서 한국은 일본 수산물의 방사능 오염을 넘어 생태와 환경의 문제를 제기했다. 한국은 “한국이 선택한 위생 보호 수준이 정당한가를 따질 때는 수산물 자체의 방사능 수치에 대한 고려만으로 부족하다. 연간 방사능 노출 1m㏜(밀리시버트)는 상한선일 뿐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방사능 노출량을 최소한으로 줄이려는 국가의 노력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WTO는 한국 정부 손을 들어줬다. 이 같은 한국의 입장은 오염수 방류에 대해서도 그대로 적용돼야 한다.

무엇보다 주변국들의 반대를 무시하고 오염수를 인류가 공유하는 바다에 버리겠다는 일본 정부의 발상 자체가 문제다. 탱크를 더 짓거나, 시멘트·모래와 섞어 모르타르로 만드는 고형화 처리로 일본 내에서 해결할 수 있다. 그렇게 안전하다면 인공호수를 만들어 일본 땅에 보관하면 된다. 처리 비용을 줄이기 위해 태평양 연안 국가 시민들의 건강과 태평양의 환경·생물다양성을 위협해서는 안 된다. 정상적인 원전의 냉각수 방류는 발전 등 인류의 삶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정당성이라도 있지만 일본 내에서 일어난 원전 사고의 위험을 다른 나라에 전가하려는 행위는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다.

그럼에도 정부는 IAEA의 판단을 “존중한다”며 일본의 해양 방류를 강 건너 불 보듯 하고 있다. 심지어 여당은 국제기구의 평가는 ‘과학’이라며 야당과 시민사회의 오염수 방류 비판은 ‘괴담’이라고 공격한다. “선동을 위해 국제기구마저 돌팔이 취급하니 대체 어느 나라 정당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는 여당 대변인을 보고 있으면 “도대체 당신은 어느 나라 여당 대변인인가”라고 묻고 싶다.

윤 대통령이 오염수 방류에 태클을 걸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일제 강제동원(징용)에 대한 진전된 사과도 없이, ‘미래’를 내세우며 ‘셀프 배상’으로 일본 피고기업과 정부에 면죄부를 줬던 때와 유사하다. 한번은 국민적 자존심에 상처를 주며 일본의 과거사 털어내기에 협조했고, 이번에는 국민 건강에 대한 불안감까지 외면하며 일본의 골칫거리 처리를 방조할 모양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에도 불구하고 잇따라 과감한 친일 외교를 이어가는 데는 한·일관계 개선을 통해 더 큰 뭔가를 이루려는 전략적 포석이 깔려 있을 것으로 믿는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 대외정책은 시민들의 동의에 바탕을 둬야 한다. 윤 대통령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가 열리는 리투아니아를 방문해 기시다 총리와도 만날 것으로 보인다. 이 자리에서 오염수 해양 방류에 반대한다고 분명히 밝히지 않는다면 귀국 후 80%가 넘는 국민의 우려를 외면하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국가의 역할을 방기한 이유를 설명해야 할 것이다.

박영환 정치부장 yh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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