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286> 노비의 의리에 대한 이야기를 한 지봉 이수광(李수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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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풍은 천한 노비일 뿐이어서 그에게 사군자의 행실이 있음을 아는 이가 없다.
위 문장은 지봉(芝峯) 이수광(李수光·1563~1628)의 '노비 연풍의 일생(年豊傳·연풍전)'으로 그의 문집인 '지봉집(芝峯集)' 권23에 들어있다.
연풍만이 이수광이 탄 말의 고삐를 잡고 따르며 잠시도 떠나지 않았다.
이때까지 이수광의 말고삐를 놓지 않은 이가 바로 연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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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풍은 천한 노비일 뿐이어서 그에게 사군자의 행실이 있음을 아는 이가 없다. … 당시에는 종이 주인을 버리고, 자식이 부모를 남겨 두는 일이 허다했다. 벼슬하는 신하도 혹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생쥐처럼 숨어서 제 처자만 생각하며 임금을 잊고 나라를 배신한 자가 있었다. … 사람됨이 조심스럽고 말수가 적으며 자질이 좋았다.
抑豊賤隷耳, 非知有士君子之行, … 當是時, 奴而棄主, 子而後親者, 滔滔也. 至於官守之臣, 或有偸生鼠竄, 願戀妻子而忘君背國者, … 爲人謹默而多質.(억풍천예이, 비지유사군자지행, … 당시시, 노이기주, 자이후친자, 도도야. 지어관수지신, 혹유투생서찬, 원연처자이망군배국자, … 위인근묵이다질.)
위 문장은 지봉(芝峯) 이수광(李수光·1563~1628)의 ‘노비 연풍의 일생(年豊傳·연풍전)’으로 그의 문집인 ‘지봉집(芝峯集)’ 권23에 들어있다.
경상도 김천 역참에 딸린 노비인 연풍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수광이 임진왜란 당시인 1592년 4월 경상우도 방어사(慶尙右道防禦使) 조경(趙儆·1541~1609)의 종사관이 되어 영남에 부임했다. 당시 황간과 추풍령에서 싸웠다. 그때 적의 기세가 대단하여 아전과 군졸 중에 따르던 자들이 대부분 도망가서 흩어졌다. 연풍만이 이수광이 탄 말의 고삐를 잡고 따르며 잠시도 떠나지 않았다. 이수광은 금산과 수원 전투를 겪은 뒤에 의주의 행재소로 옮겨갔다.
그 후 9월에 어사로 함경도에 부임했다. 이때까지 이수광의 말고삐를 놓지 않은 이가 바로 연풍이다.
두 사람은 원래 주종으로 얽힌 관계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연풍이 보여 준 헌신은 어느 누구보다 지극하고 가상했다. 몇 만 리 길을 걸어 다니며 적진 속을 드나들 때 목숨이 위태로웠던 적도 여러 번이었다.
‘전(傳)’은 업적을 남긴 인물의 일대기를 기술하는 글의 형식으로 주로 사대부가 그 대상이었다. 노비의 삶을 기술한 위 글은 매우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그제 대구에서 온 벗들과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던 중 “요즘 세상에 의리가 어디 있노? 그걸 기대하는 사람이 이상한 것 아닌가?”는 이야기가 나와 씁쓰레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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