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인권은 합의의 대상이 아니다
21대 국회에서 차별금지법이 발의된 지 3년이 지났다. 2020년 6월29일 장혜영 정의당 의원 대표발의로 차별금지법이 발의됐고, 이후 3건의 평등법이 더 발의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차별금지법은 본격적인 논의도 되지 못하고 국회 안에 잠들어 있다. 차별금지법 제정이 요구될 때마다 정부가 항상 내놓은 핑계가 ‘사회적 합의’이다. 2017년 유엔 사회권위원회가 한 차별금지법 제정 권고에 대해서도 올해 법무부는 ‘차별 사유, 규제 범위, 구제 수단 등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계속 중’이라고 답했다. 여론조사에서 이미 70%가 넘는 차별금지법 찬성 응답이 나오고 있음에도, 여전히 정부는 여론을 핑계 대며 자신의 책무를 다하지 않고 있다.
그렇게 평등과 존엄을 보장하지 않기 위해 여론 탓을 하던 정부가 여론을 빌미로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에는 적극 나서고 있다. 대통령실은 지난 3일까지 ‘집회·시위 요건 및 제재 강화에 대한 의견을 들려주세요’라면서 국민참여 토론을 실시했다. 결과는 강화 찬성이 12만8600여명, 반대가 5만1900여명이었다. 찬성이 훨씬 많으니 이제 집회·시위를 더 엄격히 제한하면 되는 걸까. 실제 정부와 여당은 이미 야간집회를 금지하거나 소음 규제를 강화하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연달아 내놓았기에, 이런 결과를 바탕으로 더욱 강력하게 집회의 자유를 억압하려 할 것이다. 경찰 역시 지난 7일 ‘비정규직이제그만공동투쟁’과 연대하는 시민들이 진행한 투쟁문화제를 또다시 강제 해산시켰다.
그러나 국민참여 토론의 질문과 참여가 정말 공정하게 설계되었는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애초에 집회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여론을 통해 억압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문제적이다. 헌법이 집회의 자유를 기본권으로 보장한 것은 다양한 의견이 공존하는 민주사회에서 이를 최대한 보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정부가 자의적으로 제한할 수 없다는 분명한 요구이다. 특히 집회는 다수가 모여 현재의 정치·사회 현상에 대한 비판을 공개적으로 표출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집회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다수의 불편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이를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민주사회가 수인해야 하는 불가피한 비용이라고도 했다. 그리고 집회를 통해 표출된 의견을 듣고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을 최소화하는 것이 정부의 책무이다. 그렇기에 여론을 빌미로 집회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것은 위헌적 발상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집회의 자유에 대한 억압은 소수자들의 의견 통로를 막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지난 6월14일 대구지방법원은 개신교 단체 등이 낸 대구퀴어문화축제 집회금지 가처분을 기각하며 “이 사건 집회가 정치적 약자나 소수자의 의사를 표현하는 유일한 장이 될 수 있고, 다양한 사상과 의견의 교환을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핵심적 기본권”이라고 했다. 헌법재판소 역시 집회의 자유는 소수자의 집단적 의사표현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기본권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2017년 대만 사법원은 동성혼을 금지한 민법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며 다음과 같이 밝혔다. “동성애자는 그 수가 적어 사회에서 고립된 소수이고, 낙인의 영향을 받아 정치적으로 약자이기에, 민주질서에 따라 법률상 열세를 극복하기 어렵다. 따라서 그 차별은 엄격하게 심사되어야 한다. 다수결이란 민주질서가 배제할 수 있는 소수자의 목소리를 제한하려는 시도에도 엄격한 심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여론조사는 그 심사방법이 아니다.”
인권은 합의의 대상이 아니다. 여론을 핑계로 혐오와 차별을 정당화하는 국가에 맞서 성소수자 운동은 오랫동안 이렇게 외쳐왔다. 여론을 핑계로 기본권 보장 책무를 외면하고, 여론을 빌미로 기본권을 억압하는 모습은 이제 그만 보자. 정부가 지금 해야 할 일은 헌법 제10조에 따라 국민의 불가침 기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하는 것이다.
박한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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