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직 걸겠다”는 장관들
“저 법무부 장관 직 걸게요. 또 앞으로 하게 될 수도 있는 모든 자리를 다 걸겠습니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한 얘기다. 더불어민주당 김의겸 의원이 청담동 술자리 의혹에 대해 묻자, 한 장관은 “제가 저 자리에 있었거나 근방 1㎞ 내에 있었으면 다 걸겠다. 의원님은 무엇을 거시겠냐”라고 따졌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6일 ‘서울~양평 고속도로’ 백지화를 선언하며, “김건희 여사 일가 땅이 그곳에 있었다는 것을 인지했다면 장관직뿐 아니라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했다. 7년째 추진해온 국책사업 백지화 소식에 고속도로 사업 예정지 주민들이 강력 반발하고 있다.
고속도로 종점을 변경했는데 그곳에 대통령 영부인 가족의 땅이 있다면 의심하는 건 당연하다. 의혹을 성실히 소명하는 게 장관의 도리이지, 사업을 중단하면서 장관직을 걸겠다는 건 무책임하다. 원 장관은 지난해 8월에도 1기 신도시 재정비 공약 파기 지적에, “재정비 일정이 지연되는 일이 없도록 장관직을 걸겠다”고 한 바 있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도 6일 고 백선엽 장군에 대해 “친일파가 아니다. 제 직을 건다”고 말했다. 전날 박 장관이 백 장군의 국립현충원 안장 기록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문구를 삭제하겠다고 밝힌 뒤 야당과 시민사회가 반발하자 한 말이다.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가 친일 명단에 백선엽 장군을 포함시킨 건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이다. 백 장군은 1943~1945년 독립군을 토벌한 간도특설대에서 활동했다. 그는 일어판 회고록에서 “동포에게 총을 겨눈 건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그런데 국가기관의 판정을 부인하며 장관직을 걸겠다니, 황당하다.
장관들의 “직을 걸겠다”는 말은 부처 정책과 관련돼 논란이 제기되자 반박 과정에서 나온 발언이다. 의혹에 대해 사실관계를 설명하고, 이해시켜야 할 장관들이 툭 하면 직을 걸겠다고 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 야당이나 언론, 시민사회의 의혹 제기를 봉쇄하려 엄포를 놓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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