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의원들, 이슈 터지면 우르르 ‘레커법’ 남발… 75%는 상임위 계류

김은지 기자 2023. 7. 10.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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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건.

2020년 10월 16개월 '정인이'가 양부모 학대로 숨진 사건이 발생한 직후 여야 의원들이 앞다퉈 발의한 관련 법안 개수다.

9일 동아일보가 21대 국회 들어 발생한 주요 사건 및 사고 관련 법안 발의 및 실제 통과 현황을 분석한 결과 사건 직후엔 비슷한 법안이 수십 건씩 쏟아지지만 이 중 실제 국회에서 통과되는 건 10건 중 3건에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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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이 법’ 30건-‘이태원 법’ 35건…
21대 국회 본회의 처리 24.7% 불과
정치권 “이슈성 발의로 자기 장사”
학폭-코인법 등 여야 공세 활용도
30건.

2020년 10월 16개월 ‘정인이’가 양부모 학대로 숨진 사건이 발생한 직후 여야 의원들이 앞다퉈 발의한 관련 법안 개수다. 이들은 법안 제안 이유를 설명하면서 일제히 ‘정인이 사건’을 언급하며 “아동학대범죄를 가중처벌하고 입양가정을 대상으로 사후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2년여가 지난 현재, 해당 법안 중 실제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은 건 단 3건뿐. 나머지 27건의 법안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등 유관 상임위에 계류된 채 ‘잊혀진 법안’이 됐다.

정치권 관계자는 “국회의원들이 ‘자기 장사’를 위해 이슈성 발의를 남발한 뒤, 여론이 식으면 함께 잊어버린다”며 “오죽하면 교통사고가 터지면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오는 ‘레커차’ 같다고 ‘레커법’이라는 자조 섞인 말까지 나오고 있다”고 했다.

● ‘레커법’ 75% 상임위 계류

9일 동아일보가 21대 국회 들어 발생한 주요 사건 및 사고 관련 법안 발의 및 실제 통과 현황을 분석한 결과 사건 직후엔 비슷한 법안이 수십 건씩 쏟아지지만 이 중 실제 국회에서 통과되는 건 10건 중 3건에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정인이 사건 외에 2021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사건과 지난해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이태원 핼러윈 참사 등과 관련해 발의된 관련 법안은 117건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 가운데 본회의에서 처리(수정안 반영 폐기, 대안 반영 폐기)된 법안은 24.7%(29건)에 불과했다. 나머지 75%(88건)는 소관 상임위원회에 계류된 채 체계·자구 심사조차 받지 못한 상태로 남아 있다.

2021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터진 LH 땅 투기 사태의 경우, 여야 할 것 없이 경쟁적으로 공직자윤리법 일부개정법률안 등 27건의 재발 방지를 위한 법안을 쏟아냈다. 하지만 이 중 본회의 문턱까지 넘은 건 농지 취득 자격 증명의 심사 요건을 강화한 법 등 11건에 그쳤고, 토지 개발 관련 정보를 취급하는 공직자의 부동산 거래를 5년마다 전수조사하도록 한 법안 등 16건은 상임위에 남아 있는 상태다.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이후에도 25건이 발의됐지만, 스토킹 범죄에 ‘피해자보호명령’ 제도를 도입하는 법안 등 11건은 여전히 상임위에 남아 있는 상태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직후에도 여야는 35건의 법안을 쏟아냈지만 이 중 14개 법안의 핵심 내용이 ‘지방자치단체장이 안전관리계획을 수립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으로,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민주당 소속 한 보좌진은 “당장 여론이 집중된 이슈와 관련해 법안을 발의해야 이목을 끌기 쉽다”고 했다. 이슈를 선점하기 위해 내용에 공을 들이기보다는 ‘속도전’을 벌이는 경우도 많다. 한 보좌진은 “헌법재판소에서 위헌판결이 난 지 한 시간 만에 법안을 만들어 발의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 ‘정순신법’ ‘김남국법’ 與野 공세에도 활용

이 같은 레커법 발의는 거대 양당 간 공세에도 주로 활용된다. 올해 2월 정순신 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이 아들의 학교폭력 논란으로 낙마하자 민주당에서만 학교폭력 관련 법안이 22건 발의됐다. 법안 제안 이유에 “정순신 전 검사는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된 지 하루 만에 낙마했다”며 실명을 거론한 경우도 있었다.

국민의힘도 올해 5월 민주당 출신 김남국 의원의 ‘코인 투자’ 의혹이 불거지자 13건의 관련 법안을 냈다. 법안 내용은 대부분 가상자산을 공직자나 국회의원 등록 대상 재산에 포함하겠다는 것으로 유사했다.

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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