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R&D 혁신 위한 ‘기업 연구소 지원법’ 통과돼야
기업을 성장시키기 위해 리더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망설임 없이 ‘미래를 꿈꾸고 혁신하는 연구 조직을 키우라’고 조언한다. 일찍이 슘페터가 규정했듯 낡은 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 기업가 정신이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방법이 R&D이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에 재직하던 시절, 나는 환경 변화에 흔들리지 않는 연구 조직을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20~30년을 내다봐야 하는 R&D가 단기 경영 성과에 일희일비하면 미래를 준비할 수 없기 때문이다. 1980년대 중반 국산 엔진 개발에 나섰을 때 ‘일본 기술을 활용하면 큰 이익을 보장받는데 왜 굳이 모험을 하느냐’는 핀잔을 받았다. 1990년대 초 친환경 자동차 개발에 나섰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그때 손익 계산만으로 기술 혁신을 포기했다면 한국 자동차 산업의 상징인 알파엔진이나 수소자동차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튼튼한 연구 조직과 혁신을 존중하는 기업 문화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오늘날 K테크의 신화도 이런 노력이 뒷받침되어 탄생했다. 1990년대 1000개 남짓이던 기업 연구소가 30여 년 만에 4만5000개를 넘어서고, 4만명이던 연구원은 40만명으로 늘어나면서 우리 기업의 기술력도 획기적으로 성장한 것이다. 지난해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상표를 달고 전 세계에 팔린 휴대폰 2억5900만대와 230만대의 자동차가 그 증거다. 대한민국이 세계시장에서 거래되는 메모리 반도체 10개 중 6개, 이차전지 4개 중 1개를 만들어내는 기술 대국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도 우연이 아닌 것이다.
이제 ‘판’이 바뀌는 대변혁의 시기가 도래했다. 기업이 처한 환경은 가혹하다. 탄소 감축 등 시대적 요구는 더욱 커졌고,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 기업의 견제도 심화되고 있다. 환경 변화를 반영해 우리의 준비도 달라져야 한다. 기업 연구소는 최첨단 연구 주제를 다뤄야 하고 연구 방법도 질적으로 성장해야 한다.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할 수 있는 수준의 연구 역량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하려면 안정적인 재원과 우수한 인재가 확보되어야 한다. 일차적으로 기업의 노력이 우선되어야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정부와 사회의 지지와 응원이 절실하다.
그 첫 번째 신호탄으로 관련 법의 정비가 이뤄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국회가 기업 연구소를 종합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기업의 연구 개발 활동 관리 및 지원에 관한 법률(기업 연구소 지원법)’을 발의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기업들은 시대의 요구에 맞게 기업 연구소 관련 법을 정비하고, 기업 R&D를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다. 여야의 국회의원이 모처럼 뜻을 모아 기업의 요청에 답했다고 하니 기대가 크다.
무엇보다 이 법은 기업 연구소를 국가 차원에서 육성한다는 의지를 재확인한다는 측면에서 그 의미가 있다. 이를 통해 기업 내에서 연구소의 위상과 역할이 더 커지고, 미래를 준비하는 힘도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40만 기업 연구원의 사기를 북돋기 위한 ‘기술 개발인의 날’ 제정이 포함된 것은 환영할 일이다. 국가 경제에 이바지한다는 각오로 한평생 산업 기술 혁신에 몸담아온 많은 이가 이 법안의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대한민국은 새로운 시대를 향한 출발점에 서 있다. 산업의 판도가 바뀌는 이 전환기는 기회의 시기이기도 하다. 지난 반세기 동안 끊임없는 노력으로 기술 빈국을 기술 강국으로 변화시켰듯, 다음 반세기에는 기술 선도국으로 성장해야 한다. 기업이 좀 더 많이 기술 혁신에 투자하고 R&D를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 꿈꾸는 기업이 미래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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