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권분립이 불가능한 체제는 공포로 유지되는 專制政뿐”
국내 첫 원문 완역한 진인혜 교수
누구나 그 제목을 알고 있지만 정작 제대로 읽어 본 사람은 드문 책이라면, 그것은 고전(古典)일 가능성이 크다. 국가의 행정·입법·사법이라는 삼권(三權)의 분리를 처음으로 제시한 것으로 이름 높은 책, 바로 프랑스 사상가 몽테스키외(1689~1755)의 ‘법의 정신’이 그렇다.
불문학자인 진인혜(64) 전 목원대 교수가 4년 동안 번역해 최근 세 권, 총 1200여 쪽 분량으로 출간된 ‘법의 정신’(나남)은 국내 첫 원문 완역본(完譯本)이다. 지금까지 10종에 가까운 번역본이 있었지만 전체를 다루지 않았거나 중역(重譯)이었다. 2000여 개의 원주(原註)를 모두 번역한 책도 이번이 처음이다. ‘법치’가 화두로 떠오르는 시점이어서 더욱 주목된다.
“몽테스키외가 삼권분립을 주장한 이유는 ‘시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대전 유성구 자택에서 만난 진 교수가 말했다. 몽테스키외는 ‘시민에게 정치적 자유란 각자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데서 유래하는 정신의 평온’이라며 ‘이 자유를 가지려면 한 시민이 다른 시민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정체(政體)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영국의 존 로크가 행정부와 입법부의 분리를 주장했지만, 몽테스키외는 여기에 더해 ‘사법부의 분리’에 방점을 찍었다. 재판권이 입법권과 결합돼 있으면 시민의 생명과 자유를 좌우하는 권력은 독단적인 존재가 될 것이고, 재판권이 집행권과 결합됐다면 재판관은 압제자의 힘을 갖게 될 것이라는 이유였다.
진 교수는 “우리가 몽테스키외에 대해 오해하기 쉬운 것이 있다”고 했다. ‘법의 정신’은 삼권분립이 민주주의의 정치 체제라고 주장했던 것일까? 그렇지 않다. 몽테스키외는 덕성으로 유지되는 ‘민주정’, 절제로 유지되는 ‘귀족정’, 명예로 유지되는 ‘군주정’을 모두 삼권분립 적용이 가능한 정치 체제로 봤다. 삼권분립이 불가능한 체제는 오직 공포로 유지되는 ‘전제정(專制政)’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훗날 프랑스 혁명의 사상적 기반과 미국 연방주의 헌법의 이론적 토대가 됐다는 점에서 ‘법의 정신’이 민주주의의 고전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몽테스키외는 결코 엄벌(嚴罰)과 혹형(酷刑)의 법치를 주장한 인물이 아니었다는 점도 중요하다. ‘법의 정신’의 부제는 ‘각 정체의 구조, 풍습, 풍토, 종교, 상업 등과 법이 맺어야 하는 관계에 대하여’였다. 그는 풍부한 인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세계의 다양한 기후·풍토와 종교·풍습을 언급하며 그에 따라 법을 유연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했다. 진 교수는 “법이 고정불변·무소불위의 존재가 아니라는 주장은 현재에도 큰 시사점을 남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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