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을 초월한 韓男·日女의 로맨스… 김기영, 한국 첫 ‘글로벌 작가주의’ 감독
김기영 재조명 국제학술대회 열어
“유엔군 묘지를 앞에 둔 이곳은 한국전에서 파괴된 폐차들의 무덤이 돼 있습니다. 나는 이곳에 버림받은 망가진 트럭입니다.”
8일 서울 마포구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에서 고(故) 김기영(1919~1998) 감독의 초기 다큐멘터리 ‘나는 트럭이다’(1954)가 상영됐다. 주한 미국 공보원(USIS)에서 리버티 뉴스를 제작하던 시절 만든 단편 영화로 2010년까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 보관됐던 작품이다.
이날 한국·미국·호주의 영화학자 8명은 ‘김기영 영화의 재조명’을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열고 대표작인 ‘하녀’(1960) 이전의 영화와 1980년대 사전 검열로 3분의 1이 잘려나간 ‘반금련’ 등 주목받지 못했던 영화들을 소개했다. 이들은 지난 4월 영국 에든버러대학 출판부에서 김기영에 관한 최초의 영문 학술서도 발간했다. 저자 중 한 명인 김청강 한양대 연극영화학과 교수는 “봉준호 감독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이후 에든버러대에서 한국 감독에 관한 학술서를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왔다”고 했다.
한국 영화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한국영화학에 대한 국제 사회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특히 김기영 감독은 봉준호·박찬욱 감독이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감독으로 꼽기도 했고, 배우 윤여정 또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뒤 데뷔작 ‘화녀’(1970)를 연출한 그에게 감사를 표하면서 세계적으로도 잘 알려졌다. 할리우드의 ‘호러 마스터’라 불리는 아리 에스터 감독도 최근 내한해 “김기영 감독의 팬”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번 학술대회에선 김기영 감독을 국경과 규범을 넘어섰던 “한국 최초의 글로벌 작가주의 감독”으로 재조명했다. 러셀 에드워즈 호주 RMIT대 교수는 조선인 학도병과 일본 여성 간의 로맨스를 그린 ‘현해탄은 알고 있다’(1961)를 연구했다. 그는 “영화 내 일본어 사용과 일본인 배우 고용이 금지된 시기에 재일교포 여배우를 기용해 일본 여성과의 로맨스를 다뤘다”면서 “주인공이 ‘난 일본이 싫다’고 하자 여주인공이 ‘나는 일본이 아니고, 히데코라는 여자’라고 반박하는데 이는 민족주의 영화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강렬한 장면”이라고 했다.
미국 LA에서 온 영화학자 아리엘 슈드슨은 김기영 감독의 얼굴을 새긴 문신을 보여주며 “스릴러 영화 ‘텔 미 썸딩’으로 한국 영화에 입문해 유튜브에서 김기영의 ‘이어도’를 발견하고 그의 팬이 됐다”고 했다. 그는 “김기영의 영화엔 당시로선 드물게 자신의 욕망을 긍정하는 강한 여성들이 등장했다. 여성 캐릭터의 관점과 목소리가 뚜렷하게 드러난다는 점에서 그는 시대를 앞선 감독이었다”고 평했다.
영화 ‘기생충’의 영어 자막 번역가 달시 파켓도 관객으로 참석했다. 그 역시 김기영의 오랜 팬으로 ‘이어도’를 역대 최고의 한국 영화 중 하나로 꼽기도 했다. 그는 “김기영의 영화엔 기이한 것들과 아름다운 것들이 섞여 있다”면서 “과학자가 동물의 행동을 관찰하듯 캐릭터와 거리를 두면서도 격정적인 영화를 만들어내는데 그 조화가 굉장히 흥미롭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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