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 발언대] “여기 사람이 살고 있다” 되살아나는 아우성
혹한기나 혹서기를 앞둔 계절마다 빈곤사회연대 사무실로 ‘날씨 때문에 한층 더 어려워진 분들’을 찾는다는 연락이 온다. 지난해 여름 반지하 수해 참사 이후에는 반지하 거주자를 찾는 연락도 이어진다. 비슷한 요청을 반복해서 받다 보면 활동가들은 ‘빈곤층 성수기가 돌아왔다’는 쓴 농담을 서로 건넨다.
연락의 목적은 취재부터 후원 연결, 빈곤층에게 부업을 제공해 경제적 곤궁을 해결해주겠다는 의심스러운 제안까지 다양하다. 가장 응하기 까다로운 것은 당사자 인터뷰 요청이다.
대부분 방송사는 빈곤 당사자의 집에서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을 선호하는데, 인터뷰에 참여한 이로서는 사적 공간까지 열어가며 사정을 말할 결심을 하기가 쉽지 않다. 어렵게 용기를 내도 정작 방송에서는 ‘살기 너무 힘듭니다’ ‘좀 도와주시면 좋겠습니다’라는 5초짜리 호소로 편집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용기가 처량함으로 돌아오면 괜한 일을 했다는 상처가 남곤 한다.
보도에 생기를 더하기 위해 사례를 활용하는 문법은 언론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정치권 역시 자신을 드러내는 데 빈곤층을 동원한다. 윤석열 대통령과 오세훈 서울시장이 내세우는 ‘약자와의 동행’이 대표적이다. 이 동행은 특정 이해관계를 침범하지 않는 수준에서만 작동한다. 서울시는 쪽방 주민들에게 ‘동행 식권’이라는 식사 쿠폰은 발행하지만 주민들이 요구하는 쪽방 지역 공공 임대주택 추진은 방임한다. ‘말할 수 없는 자가 진정한 약자’라는 대통령의 말은 요구를 가진 사람들을 약자에서 분리한다. 이는 가난한 이들이 겪는 취약함을 강조하는 주장과 공명한다. 취약함을 강조하면 시혜적인 차원의 도움에 대해서는 동의를 이끌어내기 쉽지만, 구별짓기는 더욱 강화되기 때문이다.
다시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고 있다. 지난해 여름 서울시장은 서울시에만 23만개 존재하는 반지하를 ‘후진적 주거유형’이라 불렀다. 반짝이는 구두를 신고 수해 참사 현장을 내려다보던 이들은 재발방지 대책을 세우겠다고 공언했지만 공공 임대주택 예산마저 대폭 삭감했다. 반지하주택 거주자들의 이주는커녕 차수판 설치조차 진행률이 22%(서울)에 그쳤다. 건물주들은 수해 건축물로 보이면 건물값이 떨어질까 염려했다고 한다.
수해 참사도, 쪽방 거주민의 어려움도 모두 시급히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다. 그러나 취약함만 강조하다 보면 “여기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누락하게 되지 않나 돌아볼 때다. 자극적인 말들로 열악한 주택만을 문제로 지목하면 가난한 이들의 거주지는 대안 없이 사라지기 쉽다. 이로 인해 마을과 이웃 관계를 잃는 것은 위험한 집만큼이나 해롭다. 가난한 이들을 취약하게 만드는 것은 반 층 낮은 집이 아니라 보편적 주거권을 박탈해온 우리 사회다. 동행도, 주거권 보장도 동정이 아니라 존중과 연대에서 출발한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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