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차르트’ 김희재, 가사 전달력은 강점·감정 전달은 숙제 [고승희의 리와인드]
트로트 창법 버리고 넘버 소화
가사 전달력 엄청난 강점
입체적 캐릭터 연기 숙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숨 막히는 두려움 이 운명의 무게, 질문에는 침묵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구나” (‘내 운명 피하고 싶어’ 중)
1막의 엔딩을 장식하는 ‘내 운명 피하고 싶어’. ‘천재 음악가’와 ‘평범한 인간’ 사이에 놓인 모차르트의 고뇌가 폭발한다. 갈등하고 갈망하면서도, 받아들일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숨 막히는 운명’을 토로하는 극적인 장면. 가수가 아닌 뮤지컬 배우로의 ‘대담한 도전’이었다. ‘희차르트’(김희재+모차르트를 합쳐부르는 말)는 무난히 한 회 한 회를 넘기고 있다.
베테랑 배우와 K-팝 스타들이 주역으로 이름을 올렸던 뮤지컬 ‘모차르트!’(8월 22일까지, 세종문화회관)가 막을 올렸다. TV조선의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미스터 트롯’을 통해 얼굴을 알린 김희재의 첫 뮤지컬 도전작이다. 그는 일곱 번째 시즌을 맞는 ‘모차르트!’의 향후 10년을 이끌어갈 새 얼굴로 낙점됐다.
뮤지컬은 그간 김희재가 서온 무대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다. 색깔이 확실한 트로트 창법을 버리는 것은 물론 대규모 오케스트라를 뚫고 나올 풍부한 성량과 연기까지 더해야 하는 무대다. 사실 이번 시즌 ‘모차르트!’는 꽤나 도전적이다. 김희재를 비롯해 엑소 수호, 엔플라잉 유회승이 합류했고 뮤지컬 배우로는 유일하게 이해준이 이름을 올렸다. 2010년 이 작품을 통해 뮤지컬 무대로 데뷔했고, 누구보다 ‘모차르트!’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낸 김준수의 그림자가 워낙에 큰 작품이다.
캐스팅 공개 이후 ‘초미의 관심’이 쏟아진 주인공은 김희재다. 수호, 유회승도 ‘모차르트!’는 처음이지만, 이미 여러 편의 뮤지컬을 통해 탄탄한 실력을 입증래왔기 때문이다. 김희재는 ‘미지의 세계’였다. 트로트 가수라는 편견으로 인해 ‘위태로운 승부수’가 되리라는 의심도 적잖았다.
뚜껑을 연 김희재의 ‘모차르트!’는 무난하다. 어색함이나 이질감이 없다는 것만 해도 높은 점수를 줄 만하다. 특히 김희재는 유연한 흡수력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무대를 만들어가고 있다.
김희재의 가장 큰 장점은 놀랍도록 정확한 ‘가사 전달력’이었다. 노래 가사가 곧 스토리이자, 인물의 내면을 전달하는 수단인 만큼 뮤지컬에서 배우들의 전달력은 필수다. 딕션을 신경써야 하는 배우 출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김희재는 정확한 발음으로 노랫말을 또렷이 전달했다.
이미 가수 활동 시절부터 트로트는 기본, 록 발라드 팝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울렀던 김희재의 뮤지컬 넘버 소화력도 놀라웠다. 뮤지컬 무대에 첫 발을 디딘 가수들이 팝 발성과 성악을 기반으로 한 뮤지컬 발성 사이에서 헤매일 때, 김희재는 팝 발성으로 방향을 잡고 한 곡 한 곡을 신중히 불렀다. 어쩌면 많은 관객들이 우려했을 이른바 ‘뽕필’은 완전히 사라졌다. 각각의 넘버에서 익숙한 트로트 창법은 배제하고, 뮤지컬의 스토리와 감정선에 맞는 노래를 들려줬다.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과 그 이후 넘치는 끼와 가창력을 익히 확인해왔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라이브로 움직이는 무대에서 김희재는 다시 한 번 ‘노래 잘 하는 가수’라는 것을 증명했다는 점은 또 하나의 성과다.
다만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첫 도전’인 만큼 모든 면이 만족스러울 수는 없다. 신인 뮤지컬 배우 김희재가 스스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아직은 많다.
가장 큰 아쉬움은 성량이다. 오케스트라와 함께 하는 뮤지컬 무대에서 김희재는 악단을 뚫고 나올 만한 충분한 성량을 들려주진 못했다. 특히 성악 발성을 기반으로 하는 다른 배우들과 주고 받는 넘버에선 가장 부각돼야 할 모차르트의 음색이 파묻혀 주인공의 감정이 전달되지 않았다.
뮤지컬 무대에서의 폭발적인 고음은 인물의 스토리와 내면에 쌓인 고뇌를 터뜨리며 객석에 카타르시스를 안기는 역할을 한다. ‘희차르트’는 모든 노래를 안정적으로 소화했지만, ‘내 운명 피하고 싶어’를 비롯해 일부 곡에선 음정이 떨어졌다. 이 과정에서 무대 위 김희재의 조심스러움이 전달됐다. 실수 없이 무대를 마치고자 하는 긴장 탓인지, 희차르트의 노래는 때때로 새장 안에 갇힌 모차르트처럼 날개를 펴지 못했다. 게다가 호흡이 길지 않아 노래는 여운을 살리지 못했고, 그로 인해 배역의 감정을 오래 끌고 가지 못했다.
굵직한 연기들에선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모차르트의 복잡한 내면을 폭넓게 보여주지 못했다. 어머니의 죽음을 마주한 장면이나 고뇌를 딛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때 섬세한 감정의 전달이 부족해 캐릭터는 다소 단조롭게 남았다. 보다 입체적인 캐릭터로 만들어가야 하는 것은 신인 뮤지컬 배우 ‘희차르트’에게 주어진 숙제가 됐다.
김희재는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이다. 업계에선 “뮤지컬 배우는 하루 아침에 완성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국내 굴지의 대형 뮤지컬 제작사 관계자는 “배우들은 적어도 10여년의 숙성 기간을 거쳐야 무대 위에서 원숙한 연기와 노래, 감정을 전달한다”고 말했다. 김희재 역시 이제 시작일 뿐이다. 첫 술에 배부를 순 없다. 그는 “연습 중 (김문정) 음악감독님이 당시 클래식의 시대에서 본인만의 음악세계를 펼친 모차르트처럼 뮤지컬에 처음 도전해 새로운 음악을 펼쳐나갈 수 있도록 몰입해보라 조언해주신 것이 큰 도움이 됐다”며 “음악을 사랑하는 모습만큼은 모차르트와 닮았다”고 했다. 분명한 것은 어제보단 오늘이 나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김희재의 출연으로 인해 그간 2030 여성 관객들이 장악했던 뮤지컬 ‘모차르트!’의 객석엔 40~60대의 관객들이 들어찼다. 게다가 뮤지컬 공연장에선 보기 힘들었던 중년 남성 관객까지 만나게 됐다. 공연장에서 만난 박수철(56) 씨는 “‘미스터 트롯’을 보고 난 뒤 팬이 돼 아내, 친구와 함께 보러왔다”며 “뮤지컬 무대에서 보니 너무나 다른 사람 같고, 이전에는 듣지 못한 노래를 들을 수 있어 좋았다. 김희재님 덕분에 뮤지컬이 이렇게 재밌는 공연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대주교 역할을 한 민영기 배우도 노래를 너무 잘해 감탄하게 됐다”는 후기를 들려줬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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