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디지털 클론’이 기다려지는 이유 [광화문에서/김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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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제인간'을 만나는 건 아직 영화에나 나올 일이지만 자신의 페르소나를 가진 챗봇을 만나는 건 이미 실현 단계에 접어든 일이다.
여기에 하나를 추가하자면 자기 자신을 마치 타인처럼 만나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서 '나를 학습시킨 디지털 클론'의 효용이다.
나의 디지털 클론과 일상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자기 자신'이라는 모호한 형체가 좀 더 또렷하게 보이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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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나의 디지털 클론을 만들고 싶다’는 수요에 부응한 상품과 서비스가 부쩍 주목받고 있다고 한다. 보통 부유한 이들의 의뢰가 많은데, 자신이 세상을 떠나더라도 자신의 사고방식에 따라 AI가 대답하고 조언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이 주를 이룬다고 한다.
디지털 클론의 효용은 대체로 자기애가 강한 이들이 자신을 대신할 존재를 만들어 달라거나 세상을 떠난 이를 가상 세계에서라도 만나고 싶다는 요청을 실현해 주는 데 있는 듯하다. 여기에 하나를 추가하자면 자기 자신을 마치 타인처럼 만나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서 ‘나를 학습시킨 디지털 클론’의 효용이다.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감정을 느끼고 같은 말을 하는 존재를 접하는 것이 유쾌한 일은 아닐 것이다. “너하고 똑같은 사람 만나라”라는 말은 보통 악담으로 쓰인다. 이 말은 “네가 얼마나 피곤한 인간인지 너도 겪어봤으면 좋겠다”에 다름 아니다. 처음 거울이라는 물건을 접한 인류가 느꼈을 감정도 기쁨보다는 당혹감에 가까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디지털 클론을 만나고 싶은 이유는 후회 없는 행동을 하고 더 나은 결정을 내리는 데 디지털 클론이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잘 모른다. 자신을 성찰하는 일은 항상 객관적이라는 ‘착각’ 속에 이루어지는 주관의 영역이다. 많은 이들이 자신이 한 말, 행동의 의미를 잘 알지 못한다. 내 마음의 상태를 설명할 수 없고 정확히 어떤 상태인지 알지 못하는 일도 적지 않다. 나의 디지털 클론과 일상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자기 자신’이라는 모호한 형체가 좀 더 또렷하게 보이게 되지 않을까. 어떤 결정을 내리거나 선택을 하기 전에도 디지털 클론의 의견을 듣는다면 나의 결정이 타당한지 아닌지 좀 더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이 더 나은 성취를 이룬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심리학자 대니얼 골먼은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탁월한 성취를 거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의 차이는 기술 수준이나 인지능력이 아니라 감성지능에서 났다’고 썼다. 감성지능을 구성하는 5대 요소 중 하나가 ‘자기 인식’이다. 골먼은 자신의 상태와 감정, 강점과 약점, 욕구를 알고 그것이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아는 것이 타인과 함께 일하는 능력을 결정짓고 자신의 가치와 목표에 대한 이해로 확대되더라고 설명했다.
자신의 그림체를 학습시켜 ‘AI 이현세’를 만들고 있는 만화가 이현세 씨는 “젊은 시절 나의 힘 있는 선으로 최근 작품을, 현재 나의 원숙한 그림체로 초창기 작품을 그리면 어떨지 욕심났다”고 말했다. 젊은 시절의 나, 나이 든 나 모두를 멀찍이서 바라볼 기회를 얻는다는 건 멋진 일일 것이다. 디지털 클론과의 대화를 통해 내가 모르는 나를 발견할 날이 오길 기대하는 이유다.
김현지 미래전략연구소 사업전략팀장 n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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