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좀 더 푸른 도시에 대한 희망
도쿄 도심 속의 푸른 녹지 부러워
도시 성장할수록 나무·풀 소중함 커져
서울 생태재창조 프로젝트 지켜봐야
살고 있는 신주쿠의 집 주변에 나름대로 정해둔 몇 개의 산책 코스가 있다. 그중 하나는 20여분 정도 골목길이 이어진다. 단독주택이 어깨를 맞대고 줄지어 있는 이 길에서는 집주인들이 가꾼 정원과 화분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다지 크지도 않은 정원에다 우람한 나무를 심어 격조를 높인 집들이 있고, 창가나 대문 주변에 자랑하듯 화분 여러 개를 놓아 아기자기함을 더한 곳이 많다. 잡초가 섞이고 나무가 시든 낡은 화분이 더러 있긴 해도 보는 재미를 해칠 정도는 아니다. 주로 단독주택에 해당하는 이야기이긴 해도 집집마다라고 해도 좋을 정원, 화분이 만드는 산책로의 이런 풍경에 꽃, 나무에 기울이는 일본인들의 정성은 민족성인가 하는 생각까지도 든다.
이런 문화, 역사를 갖고 있다 보니 오래된 나무를 베어내는 것을 전제로 한 메이지신궁 외원(外苑·바깥 정원) 재개발계획이 주민들의 반대로 오랜 시간 논란이 되는 것이 당연한 일처럼 보인다. 도쿄도는 메이지신궁 인근을 재개발해 도심 구장 등을 재건축하고 초고층 빌딩을 새로 지을 계획이다. 재개발계획으로 700그루 이상의 나무를 뽑아내야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 중 한 명인 무라카미 하루키는 지난달 자신의 라디오방송에서 “(재개발 사업을) 개인적으로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며 “초록빛이 넘실대는 기분 좋은 조깅 코스를, 멋진 신궁 구장을 부디 이대로 남겨 달라. 한번 부순 것은 원래대로 되돌릴 수 없다”고 호소했다. 한국에도 많은 팬이 있는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는 지난 3월 세상을 떠나기 직전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 등에게 재개발 재검토를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다.
도시가 발달할수록 나무와 꽃, 풀의 소중함은 커진다. 고층건물, 넓은 도로로 상징되는 게 발달한 도시의 풍경이지만 그것을 중심에 두고 발달해 온 도시에는 사람들이 쉬어 갈 공간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 작은 화분들이 즐비한 골목길, 사람이 아닌 우람한 나무들이 주인인 듯싶은 공원을 가진 도쿄는 그래서 부럽다.
지난달 오세훈 서울시장이 도쿄를 찾아 “서울에서 시민들이 즐길 수 있는 녹지공간을 만들기 위해 녹지생태도심 재창조 프로젝트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녹지율을 높여 진행 중인 도쿄 도심 개발지역도 둘러봤다.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고, 어떤 결과를 거둘지야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의욕에는 기대를 가지게 된다. 서울뿐이겠는가. 지금보다 좀 더 푸른 도시는 삶의 기반을 도시에 두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이 가진 희망이다.
강구열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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