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짜 지휘자’ 진주, “다같이 둘러앉아 공진단, 값진 은메달” [인터뷰]
강릉 세계합창대회 은메달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비장했어요. 아침밥으로 순두부를 먹고 나서, 영화 ‘대부’처럼 자리에 앉아 공진단을 나눠먹었어요. (웃음) 가수할 때도 먹어본 적이 없는데…. ”
전 세계에서 몰려든 쟁쟁한 실력파들이 겨루는 ‘합창 올림픽’. ‘초짜 지휘자’인 가수 진주가 이끄는 빅콰이어 합창단의 경연 과정은 영화 한 편을 방불케 했다. 지난 4일 열린 강릉 세계합창대회 팝앙상블 부문 경연. 모든 것은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워밍업도 15분, 경연도 15분으로 정해져 있었어요. 한 팀씩 워밍업 공간에 들어가는데, 지휘자가 입장할 때부터 딱 15분만 목을 풀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어요.”
진주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서울장신대 실용음악과 제자들과 함께 강릉 세계합창대회에 참가, 은메달을 목에 걸고 ‘금의환향’했다. 대회를 마치고 돌아온 그는 헤럴드경제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긴박했던 지난 이야기를 들려줬다. 진주는 “참가만으로 큰 경험이라고 생각했고, 준비 과정에서 교육적 목적을 달성해 결과는 내려놨는데, 메달까지 받을 줄 몰랐다”며 웃었다.
세계합창대회는 리허설부터 ‘본격적인 게임’이 시작됐다. 다른 팀의 연습과정, 경연 모습조차 볼 수 없도록 철저하게 통제된 부문이 ‘팝 앙상블’ 경연이었다. 빅콰이어 합창단을 진두지휘한 진주의 ‘차별화 전략’은 이번 대회에서 2위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비결이다.
‘팝 앙상블’ 부문의 경우 클래식 발성을 하는 합창단과 대중가요 발성을 구사하는 합창단으로 양분된다. 빅콰이어는 후자의 경우였다. 10여년 이상 합창 활동을 해온 베테랑 단체인 ‘빅콰이어 합창단’엔 진주의 제자들이 단원으로 활동 중이었고, 이들과 함께 장신대 실용음악과 학생들이 팀을 이뤄 대회에 나갔다.
진주는 “우리가 잘하는 것을 부각하자는 생각으로 곡의 선정부터 편곡 방향성을 정했다”고 말했다. 이 모든 과정은 지휘자 진주의 손에서 태어났다. 합창대회 주제인 ‘평화와 번영’에 맞춰 ‘격려과 위로’의 노래인 ‘린 온 미(Lean on me)’, ‘가능성’을 깨워주는 ‘아이 윌 서바이브(I will survive)’, ‘사랑’을 노래하는 ‘더 그레이티스트 러브 오브 올(The Greatest Love of all)’, ‘인류의 번영’을 위한 ‘핸드 인 핸드(hand in hand)’ 등을 선곡했다. 네 곡의 머릿글자를 따서 ‘캄(CALM)’이라는 키워드로 만들었다. “평화를 노래”하는 팀이라는 의미에서다.
팝 앙상블 부문의 경연은 까다로웠다. 지휘자의 등장부터 노래, 퇴장까지 15분 이내에 준비한 네 곡을 부르되, 반드시 아카펠라 곡을 포함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다. 진주는 “아카펠라가 어디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편곡의 방향성이 완전히 달라진다”고 말했다.
“중간에 들어가면 흐름이 끊기는 단점이 있어요. 만약 직전 곡에서 에너지가 컸다면, 무반주 합창이다 보니 숨소리까지 다 새어 들어 음정의 정확도가 떨어질 수 있어요. 그래서 시작부터 리스크 관리를 하자는 마음으로, 아카펠라를 시작부터 선보였어요. 그 뒤로 에너지를 폭발하는 구성으로 곡의 순서를 잡았죠.”
아카펠라로 부른 곡은 ‘린 온 미(Lean on me)’. 진주는 “전쟁의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위안을 주는 노래인 만큼 아카펠라가 잘 어울렸다”며 “랜딩 기어를 먼저 넣고 시작한 전략이 괜찮았다”며 웃었다.
‘평화’를 키워드로 삼은 빅콰이어 합창단 선곡은 ‘올드 앤 뉴’로 방향성을 잡았다. ‘린 온 미’로 시작해, IMF 당시 국내에서도 많은 위로를 준 ‘아이 윌 서바이브’로 다양한 세대를 겨냥해 “파워풀한 힘”을 보여줬다. 세 번째 곡은 무하마드 알리의 전기 영화 주제가인 ‘더 그레이티스트 러브 오브 올’이었다.
“경연에선 세 번째 곡부터 에너지 분배를 적절히 하지 않으면 피로도가 올라가 음악이 무너져요. 성대, 후두, 호흡 관리가 필요했죠. 그래서 이 곡을 세 번째로 넣었어요. 알리처럼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준비했어요. 학생들은 세대가 달라 제가 한 명언인 줄 알더라고요.(웃음)”
대미를 장식한 곡은 88올림픽 주제가로 한국인에게도 익숙한 ‘핸드 인 핸드’였다. “가장 웅장하고 임팩트를 주는 곡”이다. 진주는 “‘인류의 번영’이 대회의 아젠다인 데다, 이 곡을 통해 합창올림픽의 정신도 살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마지막 곡인 만큼 심사위원들을 사로잡는 화려한 전개와 율동도 필요했다. 지휘자 진주가 가장 분주했던 시간이었다. 그는 한 손으로는 지휘를 하며, 다른 손으로는 수신호로 율동 타이밍을 일러줬다.
“1분 1초라도 타이밍이 틀리면 안되니 온갖 수신호를 써가면서 천을 꺼내 흔드는 시간, 율동하는 타이밍을 알려줬어요. 기승전결을 짜서 지루하지 않은 노래를 들려주고자 했어요.” 가장 기발한 아이디어는 ‘손에 손 잡고 벽을 넘어서’라는 가사를 중국어, 스페인어, 독어, 영어 등의 다양한 언어로 부른 것이었다. 그는 “다양한 국적의 관객과 심사위원을 겨냥했다”고 귀띔했다.
진주는 올해 처음 생긴 장신대 실용음악과의 교수로 임용되며 ‘대회 출전’을 한 학기 강의와 과제로 삼았다. 그는 “팬데믹 동안 학생들 간의 정서적 유대감이 줄어 서로 배려하고 화합하는 합창을 통해 정서적 치유를 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 대회에 출전하게 됐다. 과정에 의미를 뒀지만, 결과도 좋았다. 1, 2위만을 가르는 대회에서 진주와 빅콰이어 합창단은 은메달을 받았다. 1위는 합창강국 인도네시아가 차지했다. 대회를 돌아보며 그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고, 모두에게 동기부여가 된 시간이었다”고 했다.
“사실 유튜브가 활발해지면서 노래하는 기술은 얼마든지 배울 수 있게 됐어요. 하지만 노래를 부르기 위해선 마음의 텃밭을 가꾸는 것이 중요해요. 이번 대회가 보컬리스트로서 자신이 하는 일의 가치를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됐고, 외부의 스트레스에도 털고 일어나는 회복 탄력성을 키울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마음의 근육이 생기고, 서로에 대한 존중과 응원하는 마음을 가지며 학생들이 노래하는 사람으로서 마음의 텃밭을 가꾸게 된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의미 있었어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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