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범에 신분증 등 건넸다 기소유예…헌재 “자의적 검찰권 행사” 전원일치 취소

김희진 기자 2023. 7. 9.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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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범에게 속아 계좌 개설에 필요한 정보를 건넸다가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검찰이 기소유예 처분한 피의자가 헌법재판소에서 구제받았다.

헌재는 A씨가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낸 헌법소원심판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검찰의 처분을 취소했다고 9일 밝혔다.

A씨는 2021년 인스타그램 광고를 통해 알게 된 성명불상자로부터 “투자금을 입금해 수익금이 발생하면 돌려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총 1100만원을 보냈다. 이들은 보이스피싱 일당이었고 수익이 발생했다고 속인 뒤 출금을 위해 필요하다며 A씨에게 개인정보를 요구했다.

A씨는 신분증과 신용카드 번호, 휴대전화 인증번호 등을 보냈다. 그러나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했다. 보이스피싱 일당은 A씨한테 건네받은 정보로 계좌를 개설해 범죄에 이용했다.

검찰은 A씨가 돈을 대가로 개인정보 등을 건넨 것으로 보고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2021년 7월 기소유예 처분했다. 기소유예란 혐의가 인정되지만 여러 정황 등을 고려해 검사가 피의자를 재판에 넘기지 않는 처분을 뜻한다.

A씨는 “송금한 돈을 출금하기 위해 인증번호 등을 보낸 것이지, 계좌 개설을 위해 보낸 게 아니다”라며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해달라고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또 자신은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헌재는 “A씨의 혐의를 인정해 기소유예 처분한 것은 자의적 검찰권 행사로 청구인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이 침해됐다”며 검찰의 처분을 취소했다. 헌재는 “A씨에게는 접근매체(전자금융거래에 필요한 전자정보) 전달에 대응하는 경제적 이익이 있다고 인정하기 어렵고, 대가를 요구하면서 접근매체를 전달한다는 인식이 있었다고 인정하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A씨가 접근매체를 전달하는 데 대응하는 대가가 없고, 대가관계를 인식하지 못했다면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죄가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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