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아 유기, 대부분 “출산 사실 주변에 알려지는 게 두려워 범행”
‘경제난’ ‘생부 불명’도 동기
산모 연령 10·20대가 75%
“피고인은 연인과의 사이에 임신했으나 헤어졌고, 출산 준비를 하지 않던 중 주거지 화장실의 변기에 앉아 출산했다. 영아를 8시간가량 자신의 방 침대에 눕혀두었다. 이후 서랍장에 넣어 유기함으로써 사망에 이르게 했다. 임신 및 출산 사실이 부모에게 알려지는 것이 두렵다는 이유였다.”(수원지법 평택지원 2018년 판결)
영아 유기 범행 동기로 “출산 사실을 주변 사람에게 숨기기 위해”라고 진술한 경우가 가장 많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경제적 어려움이나 생부와 함께 양육하기 어려운 환경 등 구조적 요인도 영아 유기 범행의 동기가 된 것으로 나타났다.
조선대 의대 법의학교실 김윤신 교수팀은 지난 5월 발간된 대한법의학회지에 ‘영아유기·치사 범죄의 법의학적 분석’을 제목으로 이런 내용의 논문을 게재했다. 김 교수는 2013~2021년 영아 유기와 영아 유기치사 판례 91건을 모은 뒤 상·하급심 중복이거나 세부 정보가 부족한 사건을 제외하고 1세 이하 영아가 피해자인 판례 20건(유기치사 10건·유기 10건)을 추려 분석했다.
논문에 따르면 피고인의 범행 동기로 ‘출산 사실이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는 게 두렵다’(12건)는 이유가 가장 많았다. ‘경제적 사유’(8건), ‘영아 생부를 알 수 없어서’(4건), ‘영아를 키울 자신이 없어서’(4건) 등도 이유로 꼽혔다.
영아 유기 당시 산모 연령은 10·20대가 15건(10대 2건·20대 13건)으로 75%를 차지했다. 30대가 3건, 40대 1건, 미상 1건이었다.
영아를 유기한 친모가 출산 사실을 가장 숨기고 싶어했던 대상은 자신의 부모(7건)인 것으로 집계됐다. 가족(1건), 계부(1건), 배우자(1건) 등에게도 출산 사실을 알리기 싫어했다. 연구진은 “난처하고 절박한 상황에서 가장 먼저 도움을 요청해야 할 대상인 부모가 출산을 비밀로 남겨두기 위해 가장 멀리해야 할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이 영아 유기 범죄 이면에 자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진이 들여다본 판결문에는 산모가 임신과 출산을 주변 사람에게 숨기려 했다는 내용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20대 후반 피고인은 지적장애 3급으로, 주변에 임신 사실을 숨겨오던 중 자신의 직장 화장실에서 출산했다. 갑자기 아이를 낳게 된 사실이 주변에 알려지면 창피할 것 같다는 생각에 유기하기로 마음먹었다”(광주지법·2020년 판결), “부모님이 알게 되는 것과 타인의 시선이 두렵다는 이유로, 산부인과 진료를 한 번도 받지 않던”(대구지법·2018년 판결) 등이었다.
산모는 결국 집·공원·직장 화장실이나 폐가 등 인적이 드문 곳에서 아이를 낳았다. 몇몇 아이는 친모가 출산한 장소와 가까운 지하철역 입구 벤치, 헛간, 보일러실, 화단, 원두막 등에 유기됐다.
생부가 양육 책임을 다하지 않아 영아를 유기하게 된 경우도 있었다. “20대 초반 피고인은 연인과의 사이에서 임신해 낙태나 출산 준비를 하지 않던 중, 연인은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 군에 입대했다”(수원지법·2018 판결), “20대 초반 피고인은 지적장애 3급으로, 유부남과의 동거 중에 임신하게 됐으나 동거남이 경제적 능력이 없어 영아를 양육하기 어렵다고 생각됐고, 아이를 유기하기로 마음먹었다”(청주지법·2016 판결) 등 내용이 판결문에 적시됐다.
연구진은 “성행동을 위한 교육과 경제적 여건까지 고려한 근본적인 정책적 대안 마련이 시급한 과제”라며 “임신과 출산의 노출을 꺼리는 산모들을 위한 위기 개입이 적극적으로 지원돼야 하고, 거기에는 청소년상담복지센터, 해바라기센터, 아동보호전문기관과 전문입양기관 연계를 통해 출산과 출산 후 대책까지를 종합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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