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엔 ‘공감’ 양보는 ‘난감’…여전히 평행선 달리는 미·중
‘탈동조화’ 대신 ‘위험 제거’
기후 문제 등에서 협력 강조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 관련
핵심 쟁점서 입장차 못 좁혀
미 언론 “긴장 완화엔 한계”
미국과 중국의 경제당국이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의 방중을 계기로 대화 채널 복원 필요성에 공감했다. 그러나 핵심 갈등 현안인 미국의 첨단기술 수출통제와 중국의 광물 수출제한 조치 등에선 예상대로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옐런 장관은 9일 베이징 미국대사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은 (중국과의) 디커플링(탈동조화)을 추진하지 않는다”면서 “디커플링은 (미·중) 양국에 재앙이 될 것이며, 세계를 불안정하게 만들 뿐 아니라 실행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6일부터 나흘간 중국 방문을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미국이 디커플링이 아닌 핵심 산업의 공급망 다변화를 통한 디리스킹(위험 제거)을 추구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옐런 장관 방중은 반도체 규제 등을 둘러싼 미·중 간 긴장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이뤄져 주목됐다. 옐런 장관은 방중 의미에 대해 “중국 새 경제팀과의 탄력적이고 생산적인 대화 채널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중국 측과의 논의에 대해선 “직접적이고 실질적이며 생산적”이었다고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옐런 장관이 8일 카운터파트인 허리펑 국무원 부총리와 7시간가량 만나 현안을 논의했다고 전했다. 옐런 장관은 허 부총리에게 “우리는 신흥 시장 및 개발도상국들의 부채 문제와 기후 문제 같은 중요한 지구적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며 기후 대응, 부채 탕감 등에서 중국과의 공조 필요성을 강조했다. 옐런 장관은 리창 총리, 류허 전 부총리, 류쿤 재정부장, 판궁성 중국 인민은행 당 위원회 서기 등 핵심 인사들을 두루 만났다.
그러나 주요 쟁점에서 양측은 평행선을 달렸다. 옐런 장관 방중이 중국 당대회 이후 교체된 새 경제팀과의 상견례를 넘어 미·중 대치를 해소할 계기를 마련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옐런 장관은 대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 조치 등과 관련, “미국은 우리 국가안보를 지키기 위해 표적 조치들(targeted actions)을 취할 것”이라고 했다. 또 “최근 미국 기업들을 겨냥한 강압적 조치가 늘어난 데 대해 엄중한 우려를 표명했다”며 중국의 지식재산권 문제, 비시장적 관행에 대해서도 논의했다고 했다. 이에 허 부총리는 “국가안보를 일반화하는 것은 정상적인 경제·무역 왕래에 이롭지 않다”고 맞섰다고 신화통신은 전했다.
미국 언론들은 옐런 장관의 방문이 미·중 간 긴장 완화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진단 했다. NYT는 “옐런 장관은 양국 간 지속적 균열을 개선하기 위한 어떤 돌파구나 합의를 발표하지 않은 채 워싱턴으로 돌아갔다”며 “중국과 미국의 많은 전문가는 많은 변화를 기대하지 말라고 경고했다”고 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옐런이 중국 지도자들과의 경제 회담에서 이득을 약간 얻었다”면서도 추가 분쟁이 곧 닥칠 것이라고 보도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옐런 장관의 방중에 대한 중국 관영 매체들의 보도는 일반적으로 조용했다고 지적했다.
미·중이 핵심 쟁점에서 양보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면서 기술 패권 경쟁으로 인한 마찰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광물 수출제한 확대를 시사한 가운데 조 바이든 행정부는 이르면 이달 내로 중국 첨단산업 부문 해외투자 제한, 저사양 반도체에 대한 수출통제 등을 추가로 도입할 준비를 하고 있다.
다만 블링컨 장관과 옐런 장관에 이어 존 케리 기후특사가 다음주 방중할 것으로 알려지는 등 표면적으로 미·중 간 고위급 대화는 활발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옐런 장관은 “미국과 중국은 중대한 이견이 있다”면서도 “바이든 대통령과 나는 미·중관계를 강대국 분쟁의 틀로 보지 않는다. 우리는 양국이 모두 번영하기에 충분할 만큼 세계가 크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고 했다. 미·중 경쟁이 충돌로 치닫지 않도록 관리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워싱턴 | 김유진 특파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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